경남이야기

불볕더위에 방전된 마음을 녹색으로 충전하는 곤양 비자나무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8. 8. 1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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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충전해달라고 보채는 스마트폰처럼 내 몸도 불볕더위에 지쳐 충전을 원한다. 토닥토닥 위안받고 싶었다. 여름 속에서 온전한 위로를 위해 느릿하게 오래 받고 싶어 떠난 곳은 사천시 곤양면사무소다.

 


사천시 곤양면사무소 앞에 있는 이순신 장군 백의장군로 안내표지석

 

작은 시골 면 소재지인 곤양으로 가는 길은 바람을 가르며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길이다. 곤양면사무소 앞에 이르면 초록길이 열린다. 정확하게는 면사무소 바로 정문 앞에서부터 커다란 나무 두 그루의 환영을 받았다. <비자나무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안내석이 눈에 들어온다.

 


사천시 곤양면사무소 앞에 있는 역대 군수 비석들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길목인 곤양은 연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거점으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 장군이 곤양에서 하룻밤 묵으며 도원수부에 보낼 장계 섰다고 한다.

 


사천시 곤양면사무소 앞에 있는 의사(義士) 최원형 선생의 기적비

 

작은 시골 동네가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바로 지척에 있는 면사무소 앞으로 걸었다. 비석들이 여럿 서 있다. <역대 곤양군수> 비석들이다.

 


사천시 곤양면사무소로 가는 길에 커다란 나무들이 마치 배웅을 나온 듯 반긴다.

 

곤양군은 1419년 남해현과 곤명현을 합해 곤남군으로 승격되어 오다 1437년 남해현이 분리하고 금남현을 병합해 곤양군으로 개칭되어 1914년까지 495년간을 군으로 존립해 있었다.

 


사천 곤양면사무소 앞에 있는 <사천 곤양면 성내리 비자나무>

 

인근에 세종과 단종의 태실지가 있었던 까닭에 동네가 작아도 곤양군의 지위를 가졌다. 비석들 옆에 의사 최원형 선생의 기적비가 이웃해 있다. 선생은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 31독립만세혁명에 참여했다. 이로 인해 퇴학을 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지속하다 잡혀 194528, 옥중 순국했다.

 


<사천 곤양면 성내리 비자나무>는 조선시대 곤양군청 앞에 심은 수령 300년이 넘은 나무다.

 

비석들을 뒤로하고 하늘 높이 솟아 반기는 나무 사이로 다가가자 <사천 곤양면 비자나무> 두 그루가 반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는 조선시대 곤양군청 앞에 암수 두 그루를 심었던 것으로 나이가 300년이 넘는다.

 


<사천 곤양면 성내리 비자나무>는 키가 21m, 가슴높이 둘레 3.8m, 밑동 둘레 6.3m로 비자나무로는 국내에서 드물게 오래되고 크다고 한다.

 

키가 21m, 가슴높이 둘레 3.8m, 밑동 둘레 6.3m로 비자나무로는 국내에서 드물게 오래되고 크다고 한다.

 


사천 곤양면사무소 앞은 초록 구름이 떠 있는 듯 아름드리 나무들의 나뭇잎이 싱그럽다.

 

20m가 넘게 자란 나무가 초록으로 물든 가지를 뻗어 하늘을 가린 풍광은 초록 구름이 떠 있는 듯하다. 근처 긴 의자에 앉아 책을 봐도 좋다. 음악을 들어도 좋다. 마음을 고스란히 앗아가는 비자나무의 넉넉한 품성 덕분에 급속 충전되는 기분이다.

 


사천 곤양면사무소 앞 야트막한 언덕으로 가는 길.

 

비자나무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작은 정자가 나온다. 정자에서 걸음을 멈추고 바람에 장단 맞추는 나무의 춤사위를 재미나게 구경했다.

 


사천 곤양면사무소 뒤에 있는 언덕은 대나무 숲길.

 

정자 뒤로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는 대나무 숲길을 따라 걸으면 면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천 곤양면사무소 뒤에 있는 언덕에서 바라본 곤양면 소재지 전경

 

녹색 물이 뚝뚝 떨어지는 풍광 속에서 혼탁한 두 눈이 맑게 씻긴다. 여름에 지쳐 방전된 마음은 녹색기운으로 가득 채웠다. 무거웠던 몸은 한결 가볍다.

 


사천 곤양면사무소에 뒤쪽 언덕에서 바라본 하늘은 구름과 함께 청량감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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