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보러 다녔다.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역사와 미래가 만나는 땅, 사적지를 찾아 나섰다.
하동 옥종면 옥종유황불소온천을 지나 옥종면사무소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자 이순신 백의종군로 이정표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자 정수리(正水里) 영당마을에 이르자 청수역과 강정 쉼터가 나온다.
1597년(선조 30)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위해 권율 도원수부가 있는 합천(율곡)으로 가는 길에 잠시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하동읍성에서 이틀간 머문 뒤 다시 길을 떠나 6월 1일 청수역 시냇가 정자(강정)에서 말을 쉬게 했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이날 장군은 몸이 매우 불편함에도 하동현을 일찍 떠나서 비를 맞으며 이동하다가 청수역 냇가의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현재 청수역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여기 농경지 일대로 전해온다. 역 근처 냇가에는 역에 딸린 정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재현한 것이다.
강정에 앉아 지나는 바람에게 인사하며 당시를 떠올렸다. 강정 옆에는 포은 정몽주(鄭夢周) 선생을 기리는 옥산서원(玉山書院)이 있다. 포은 선생을 봉안한 서원이 전국에 16개가 있는데 경남에서는 유일하다.
하마비가 밭 사이에서 어서 오란 듯 당차게 서 있다. 커다란 은행나무를 뒤로하고 서원 앞 텃밭에서 일하는 분에게 서원 구경을 허락받고 관리사를 통해 서원 옆으로 들어갔다.
서원에 들어서자 역사가 덮쳐 온다.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옥산서원이라 편액 걸린 옥산당 마루에 앉았다. 지나는 구름을 보며 목숨도 바꾼 선생의 충절을 잠시 떠올렸다.
문화재자료 제47호인 옥산서원은 1830년(순조 30) 후손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65년 사림(士林)과 자손들에 의해 다시 이곳에 이전·복원했다.
포은 선생의 문집판각(文集板刻) 500여 판을 보관한 3칸의 장판각(藏板閣)을 지나 내삼문인 광계문으로 향했다. 선생의 위패를 모신 3칸의 묘우(廟宇) 문충사 앞에서 선생께 예를 올렸다. 문충사 바로 옆에는 선생의 영정을 모신 1칸의 영각(影閣)인 은생당이 있다.
서원을 나와 단풍나무 아래 평상에 잠시 누워 올려다보자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듯 푸르다. 가져간 물로 목을 축이고 주위를 둘렀다. 잠시 눈을 감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되었다. 고려와 조선 시대 충신을 만났다. 오늘 만난 과거는 각기 문(文)과 무(武)로써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라를 위해 다한 셈이다.
바람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지난다. 바람 따라 역사가 펄럭인다. 역사를 품은 시간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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