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산청명소,잰걸음 반복하는 하루가 힘겹다 투정하는 내게 말없이 위안을 안겨주는 산청 평지리 은행나무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8. 4. 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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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바삐 흘러간다. 잰걸음을 반복하는 하루가 문득 힘겹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은행나무를 찾으러 갔다. 산청군 신등면 소재지를 지나서도 승용차로 20여 분을 더 달려간 곳이 평지리다.

 



 

마을에 들어서는 입구에 여기가 나무리(법물,법서마을)’이라는 선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평지리는 본래 단성군 범물면의 소재지였다. 나무리, 법물 또는 평지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청군 신등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마을 너머로 합천과 경계를 이루는 부암산이 보인다. 작은 개울가에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서 있는 게 한눈에 들어온다.

 



 

 

개울을 건너 은행나무로 가는데 한옥 대문에 행자문(杏子門)’이라 적혀 있다. 은행나무의 아들이란 뜻일까, 인기척이 없어 알아보지 못하고 다리를 건너 곧장 마을 회관 앞 은행나무 앞으로 갔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15호인 평지리 은행나무는 높이 18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 4.25m이고, 수관폭(樹冠幅)은 동서로 20.5m, 남북으로 15.4m 퍼져있다. 나무의 나이는 약 500년생으로 추정한다.

 



 

안내판에 따르면 ”~이 은행나무는 원래 이 마을 앞산에서 자라고 있던 것인데 조선 초 두문동(杜門洞) 72() 중의 한 사람인 김후가 옮겨 심었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 신하로서 충절을 지키며 살아가던 선생의 꿈에 한 신선이 나타나 하는 말이 저 앞산에 있는 은행나무를 동리 안으로 옮겨 심으면 마음이 태평하고 후손이 번창할 것이다.”라는 계시를 내렸다고 한다. 꿈에서 깨어난 선생은 꿈의 계시대로 은행나무를 마을 앞 개울가에 옮겨 심었더니 과연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으로 이후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목으로 받들고 있다.“ 라고 한다.

 



 

수령 500년이 된 나무는 묵은 세월의 흔적을 지지대 3개를 지팡이 삼아 의지한다. 모든 것을 내어준 속은 시멘트로 속을 채웠다. 긴 세월을 이고서도 여전히 다정하게 말 거는 오래된 나무에게 살며시 손을 대었다. 눈을 감고 살포시 귀를 기울였다.

 



 

쏟아지는 햇살 사이로 가을이면 노랗게 빛낼 싹이 꿈튼다. 아낌없는 주는 나무처럼 넉넉한 나무 아래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며 주위 풍광을 감상한다.

 



 

돌담이 아름다워 마을 고샅을 따라 걸었다. 고샅을 한 걸음 한 걸음 느리게 걸었다. 정겨운 정취가 있는 고즈넉한 옛 마을에서 잠시 잊었던 내 안의 풍경을 발견했다.

 



 

일상의 잰 걸음을 반복하는 하루가 힘겨워진 내게 은행나무와 마을은 위안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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