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합천여행-천 년 시간이 멈춘 곳, 합천 옥전고분군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7. 12.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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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옥전 M3호분(합천박물관 제공)

 

순간 내가 연어가 된 기분이다. 경남 합천 쌍책면에 가면 연어가 힘차게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듯 1000년 전 시간 속으로 간다. 1127, 고대왕국 다라국으로 찾아갔다.

 


합천박물관

 

황강교를 건너 만나는 작은 회전로에도 지배자의 상징과도 같은 용봉 문양 고리자루 큰 칼(龍鳳文環頭大刀)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동네는 온통 가야 시대의 한 나라였던 다락국의 생활상이 담긴 벽화로 순간 가야시대로 온 듯 착각하게 한다. 다라국 당시의 나루터와 저잣거리, 마을을 지키는 무사의 모습 등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근처 합천 박물관에 차를 세웠다. 내가 찾은 1127일은 월요일이라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매주 월요일과 11, 설날, 추석은 정기휴일). 그런데도 찾은 이유는 가야인들의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합천박물관 용봉문양 고리자루 큰 칼(龍鳳文環頭大刀) 분수대

 

주차장에서 나와 박물관 쪽으로 향하다 먼저 만난 조형물이 마음에 정원이다. 한때는 이곳은 다라국의 신성한 정원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경건해진다. 박물관 정면에 용봉문양 고리자루 큰 칼(龍鳳文環頭大刀) 분수대가 반긴다. 찬찬히 살펴보는 재미가 색다르다.

 


합천박물관 뒤편 옥전고분군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다라국의 뜰

 

마치 내가 용봉문양 고리자루 큰 칼을 찬 듯 당당하게 걸어 올라가는 데 사라, 가라, 아라 등과 같은 순우리말 나라이름인 다라캐릭터가 어서오라고 인사를 건넨다. 옆에는 옛날 구슬밭이라 불리던 곳을 한자로 바꾼 옥전 고분군의 특징을 드러내는 구슬이캐릭터 조형물이 웃는다.

 


합천고분군 뒤편에 복원된 삼가고분

 

박물관 뒤편으로 걸음을 옮기자 언덕 위 다라국의 무덤들이 봉긋봉긋 모습을 드러낸다. 급한 마음에 바삐 걸음을 옮기려는 데 다락국의 뜰이란 표지판이 걸음을 붙잡는다. 천년이 넘는 시간을 한순간에 가려한 성급함이 후회스럽다. 숨을 골랐다.

 

삼가면 도로 확장 공사에서 발견한 삼가 고분을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봉분 안에 돌덧널무덤이 서로 잇닿아 만들어졌거나 겹쳐서 만들어진 삼국시대 대형 봉토분으로 토기류와 철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합천 지역 내 또다른 가야 세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합천박물관 주위 산책로

 

박물관 뒤편으로 난 산책로를 빽빽하게 채운 나무들이 그런 나를 다시금 붙잡는다. 나무 가지에 벌레 한 마리가 꽂혀 있다. 일용할 양식으로 잡은 벌레를 저장한 것인지 모르겠다.

 


합천 옥전고분군에서 바라본 쌍책면 일대

 

가야는 김해의 옛 국명인 가락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가락의 어원으로는 개간한 평야라는 뜻의 남방 잠어 kala유래설, 갓나라 유래설, 가람()유래설, ‘의 나라유래설 등이 있는데 어원적으로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는 셈이다. 지금까지 국명(혹은 지역명)으로 사용되어 온 가야(加耶)는 흔히 사용되고 있는 고구려·백제·신라와 같은 당대의 국명은 아니라 중국 역사서에 일관되게 기록되어 있는 가라(加羅)’라는 명칭이 가야 당대에 사용된 것(합천박물관 홈페이지)’으로 보고 있다.

 


황강 변 야산의 정상부에 위치한 옥전고분군은 복원된 고총고분(高塚古墳) 28기를 포함, 고분의 총수는 약 1,000여기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언덕 위에 올랐다. 천 년 전 시간 앞에 섰다. 황강 변 야산의 정상부에 위치한 옥전고분군은 복원된 고총고분(高塚古墳) 28기를 포함, 고분의 총수는 약 1,000여기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여기 유적은 1985년 겨울부터 1992년 봄까지 5차에 걸쳐 경상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시행되었다.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구분은 모두 146기인데, 유물은 토기를 비롯하여 철제의 갑옷과 투구, 각종 무기, 말갖춤, 귀걸이 등 무려 2,500여 점이 출토되었다.

 


합천 옥전고분군

 

여기 옥전고분군의 주인공은 양직공도(梁職貢)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전하는 다라국의 지배자였을 것이다. 고분군에서는 최고 지배자를 상징하는 봉화문 고리자루 큰 칼(龍鳳文環頭大刀)과 금동제의 말안장, 금 귀걸이가 나왔다. 아라비아 계통의 로만그라스를 통해 당시 활발했던 대외 무역의 흔적을 알 수 있다. 연꽃무늬 목관장식을 통해 불교문화 유입도 확인할 수 있다.(합천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다라국 최전성기 왕의 무덤인 옥전M3호에 이르자 머리 위로 독수리 한 마리가 두 날개를 펼쳐 푸른 하늘을 맴돈다.

 


합천 옥전고분군에서 만난 목련 겨울눈이 꽃필 봄을 기다리듯 무덤은 우리에게 천 년 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보라 권한다.

 

무덤은 그대로 있지만, 사람만 바뀌었다. 목련 겨울눈이 꽃필 봄을 기다리듯 무덤은 우리에게 천 년 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보라 권한다.

 


합천 옥전고분군 나무에 벌레 한 마리가 꽂혀 있다. 어느 누구의 겨울에 일용할 양식일까.

 

여기에서는 시간이 머문다. 천 년의 역사가 여기 다 모였다. 숨이 멎을 듯 말을 잃게 한다. 우리가 알던, 잊고 있던 가야···. 가야는 아직 건재하다. 신라에 멸망했지만 지금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옥전고분군에 한 걸음을 더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천 년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은 오늘 우리에게 평안한 안식처를 안겨준다. 겨울 문턱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가야를 찾았다.

 


합천 옥전고분군 여기에서는 시간이 머문다. 천 년의 역사가 여기 다 모였다. 숨이 멎을 듯 말을 잃게 한다.

 

무덤 사이를 거닐면서 천 년 전 당시를 떠올리는 나는 걸음을 쉽사리 옮길 수 없었다.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고운 햇살은 무덤 하나하나를 무대의 주인공인 양 비춘다.

 

도움 글 : 합천박물관(http://mus.h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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