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나들이

사진을 사포질하고 싶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7. 11. 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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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이 거칠다.

사포질하고 싶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전체를 보고 찍거나 오히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 찍었으면 하는 사진이 많다.



급하다.

마치 투수의 유인구에 헛방망이질을 크게 휘두르고 물러나는 타자 같다. 숨을 고른 뒤에 다음 장면을 기다려 찍었다면 이야기가 될 터인데 서둘러 사진에 담았다. 피사체를 두려워하지 마라. 기다려서 원하는 장면이 나오면 셔터 누르기를 주저하지 마라. 그러나 때가 아니면 기다려라.



사진보다 제목이 저만치 앞서간다.

사진 밑에 있는 제목을 보지 않고도 떠오르는 제목과 일치한다면 나는 감히 좋은 사진이라고 여긴다. 제목들이 사진을 이끌려고 손을 내민다. 그럴 때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제목에 맞는 사진을 찍거나 찍은 사진에 맞는 어울리는 제목을 붙일 때다.



제목은 시급을 다투는 듯 붙여놓았지만, 사진은 태평하게 여유롭다.

흑백 사진, 과거로 여행 떠난 기분이다. 100피트 흑백필름을 감았고 암실에서 알싸한 약품 냄새 맡아가며 현상하고 인화했던 그때로 시간 이동한다.


스마트폰으로도 우리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긴다.

모두가 사진가인 시대다. DSLR카메라, 흑백...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진이었으면 더 좋겠다.



그럼에도 몇몇 사진은 눈에 띈다. 원예학과에 재학 중인 박관빈의 사진 ‘설렘’은 얼굴을 꽃으로 완전히 가렸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수줍어 카메라를 바로 응시하지 못한 탓인지. 연인에게 받은 꽃이라 설렜을까? 사진 너머 이야기가 궁금하게 만든다.



손예민(수학과)의 ‘런던키친’도 재미나다. 부엌 한쪽에 있는 꽃이 담긴 바구니를 담았다. 바구니에는 빛이 은은하게 들어와 창너머로 나가는 시선을 붙잡는다. 저녁 식탁이 궁금해지는 사진이다.



아심(컴퓨터공학과)의 ‘BLUES'도 하늘과 하나 된 검푸른 바다에 주황불빛 드러낸 상선이 경계를 만든다. 사진은 덧셈이 아니라 빼기라는 말을 실천한 사진이다.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행복했던 기억들이 당신의 식도를 타고 흘러들어온다’고 했던 박찬일 셰프의 말처럼 내게 ‘경상사진마을 흔적’ 사진전은 추억이다. 위로다. 


전시장 한켠에 내가 좋아하는 캔커피을 한 봉지 놓고 왔다.



까칠한 이 맛에 사진전을 찾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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