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10% 다짐'에서 시작한 진주 역사 골든벨 우승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7. 10. 6.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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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프로(%)~”

아내의 다짐을 받는 일부터 시작이었다. <진주역사 골든벨>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장모님 경상대학교병원에 수술받을 때도 나는 수술실 앞에서 캔커피 하나와 함께 <진주의 문화유산>이란 책을 폈다. 직장에서 보내준 23일 피정 기간 쉬는 시간에도 <진주성 촉석루의 숨은 내력>이라는 책을 읽고 메모했다.

 

마침 중간고사 앞둔 아이들이 공부한다고 부산 떨 때 덩달아 공부하는 척을 했다. 진주에서 나고 자라 누구 못지않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진주 역사와 문화였지만 문제풀이로 만나는 진주 역사와 문화 공부는 끝이 없다. 괜스레 주위에 떠벌렸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대회를 며칠 앞두고 큰 애에게 요점을 적은 종이를 건네고 문답식으로 모의고사를 보듯 점검도 했다. 추석 전날 부침개 굽고 오라는 아내 말도 한쪽 귀로 흘려버리고 동네 커피숍에 요점 정리 메모지와 책 등을 들고 다녀왔다. 커피숍은 온통 과외 등을 하는 아이들로 북새통이다. 나도 그 속에 끼여 함께한다.

 

추석 당일은 술과 TV시청 등으로 뒹굴었다. 가져간 책은 한 장도 보지 못했다. 대회 날 아침에 일어나자 마나님과 처가 식구들을 남겨두고 중간고사 시험본다는 큰애랑 처가에서 후다닥 집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요점 정리 종이를 보며 공부를 했다.

 

오후 1230. 가족 단체 카톡방에 여보 이제 집을 나서요... 좋은 소식 전하리다톡을 날렸다.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기운을 북돋웠다. 1시간전에 행사가 열리는 임진대첩계사순의단 광장에 도착, 접수하고 촉석루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온통 시험문제에 나올 문화재가 눈에 들어온다. 역사도전 골든벨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쌍충사적비 곁으로 다가가 찬찬히 보기도 했다. 남강에 띄워진 유등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출제 경향만 살피고 정작 형수만 출전한다. 주위는 온통 대회를 기다리며 책 등을 펼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선배는 형수에게 OX퀴즈 때 나를 따라 다니라고 말한다. 웃었다.

 

정각 2. 진주 시장의 축사와 함께 첫 문제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1010일 진주 시민의 날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대첩 승전일(1010)을 기리고 계사년 전투에서 순국한 선열들의 충절과 호국정신을 계승하여 진주인의 애향심을 고취하고 시민 모두 하나 되어 축제의 장으로 승화 발전시키기 위해 1995년 제정되었다.” OX퀴즈. 참가자 760여 명 중에서 100명을 추려내는 예선. 탈락자가 나왔다.

 

사적 18호인 진주성은 ~”

동네 의사 선생님은 사회자에게 사적 번호를 다시금 확인한 뒤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X로 향했다. 함정은 사적 18호가 아니라 118호였다. 많은 사람과 함께 떨어졌다. 예선전에서부터 구름 잔뜩 낀 하늘처럼 어둡다.

 

패자부활전을 기다리며 귀를 쫑긋하며 문제를 들었다. 10여 분 뒤 패자부활전. 팔짱을 끼고 두 눈은 감고 귀만 열고 연단 앞으로 나가 문제를 음미하듯 들었다. 다행히 예선전을 통과 100명이 겨루는 본선에 진출했다. 100명의 패기 넘치는 청소년들이 50문제에 도전하는 KBS 퀴즈 프로그램 <도전!골든벨>처럼 하얀 보드와 래커 펜을 받았다.

 

정답, 호국사. 정답, 촉석루...

 

OX와 달리 단답형 주관식은 어렵지 않다. 탈락자는 속출했다. 광장이 넓게 보인다.

앞으로 옹기종기 모였다. 진주성의 옛 이름인 통일신라 때 불린 만흥산성(萬興山城)’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나를 포함해 3명만 남기고 모두 탈락했다.

 

일제강점기 때 진주신사가 있던 곳에 1987년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혼들을 위무하기 위해 세운 조형물의 이름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임진대첩계사순의단이라고 담담히 적고 결과를 기다렸다. 3명이 보드에 적은 정답은 달랐다.

 

정답, 임진대첩계사순의단 맞습니다!”

시멘트 바닥에 앉아있던 육중한 나도 모르게 한 손을 치켜들고 하늘로 날았다.

살이 떨렸다.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라고 당선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말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족 단체 카톡방에 우승 소식을 전했다. 시상대에 올라 상을 받았다.

 

진주성을 빠져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시내버스를 갈아타지 않고 멀찍이서 내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잡기 위해 몇 번이나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 뺏었는지 모른다.

 

형네로 갔지만, 어머니는 어디 가셨는지 없다. 10여 분 기다리다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서는 어머니께 상장을 전해드렸다. 며칠 전 지나가는 소리로 대회 참가를 알렸는데 흘려듣지 않은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나를 위해 기원하셨다고 한다.

 

형이 구워주는 닭과 족발, 피자 사이로 대회 참가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아내는 내후년 큰애 대학등록금으로 유용하게 잘 쓸 거야. 괜히 상금 10% 준다고 했다라며 짧게 아쉬워한다.

 

이날 같은 시각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NC다이노스가 SK와이번스를 105로 완승했다. ‘거침없이 가자는 그들의 다짐을 되뇌며 집에 돌아와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고 또 보았다.


격려와 응원으로 함께해준 가족을 비롯해 여러분 고맙고 감사합니다.


사진제공: 이우기, 진주시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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