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 뜨고 있는데도 한 해의 절반이 훅하고 저만치 지나간다. 다시, 처음 마음먹었던 다짐을 잡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남해고속도로 진교나들목에서 빠져나와 바로 면소재지로 향하지 않았다. 운전 연습을 했던 옛 남해고속도로를 들어갔다 나왔다. 시간이 멈춘 듯 흐르는 그곳에서 운전대를 처음 잡았던 심정으로 잠시 시간 여행을 보냈다.
시간여행을 보내고 옛 남해고속도로 진교나들목에서 빠져나왔다. 비릿한 갯가 냄새가 살포시 열린 창 너머로 밀려온다. 민다리길을 따라가다 삼거리 근처에서 차를 세웠다. ‘민다리공원’에서 가져간 캔커피를 마시며 작은 공원을 산책했다.
민다리라는 말은 ‘진교’의 순우리말이다. 민은 용을 뜻하는 ‘미르’와 같고 이것이 진(辰)이 되었고, 하평마을 앞을 통과하는 고룡천을 건너 다녔던 돌다리(石橋)가 있어 진교라 했다고 전한다. 사천시 곤명면과 하동군 북천면, 진교면 일대에 걸쳐 있는 ‘이명산(理明山)을 조산(祖山, 용의 봉우리)으로한 용 한 마리가 쫓겨 와 교룡천의 용소(龍沼)에 살았다고 한다. 지금 하평마을 천주교 성당 쪽이 용의 머리부분이라고 한다. 그 앞에 있는 동산인 똥메산을 여의주라 칭하는 사람도 있다. 진교리 우회도로가 개설된 지점에 용의 발자국 형상이 각인되어 있다 하여 일제강점기에 철조망으로 보존하기도 했다고 한다.’(하동문화원 발간 <하동문화 즐겨 읽기>중에서)
용의 기운을 느끼듯 거닐다 멈춘 곳이 있다. 1965년 43세의 일기로 요절한 고 김경(金耕, 1922년~1965년) 화백의 화비가 세워져 있다. 화비 곁에는 ‘따스하면서 꿋꿋하기 쉽지 않은데/ 이 빗돌 앞에 서는 자/ 옷깃을 여미고// ~오만한 순정의 외침을 들으리라//’라는 추모 시가 새겨진 빗돌이 있다. 앞에는 그를 추모하는 신문기사가 새겨진 안내판이 함께 한다. 옷깃을 여미고 그의 예술혼을 안내판에서 엿본다.
민다리 공원에서 나와 면사무소로 향했다. 중심가에서 약간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면사무소가 나온다.
면사무소 한쪽에는 ‘보아라 동쪽으론 선 마산이마/ 이명산 수려할 손 뒤를 감싼 곳/ 그 아래서 관곡벌로 냇물 흐르고/ 우러러 서남방에 솟은 금오산/ 광개바다 물결 소리 귀에 어린다//~’라는 설창수 선생의 시‘내 고향 진교’가 새겨진 시비가 먼저 반긴다. ‘
들어오는 오른편 나무 아래 탑으로 향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진교리 3층 석탑’이다. 원래 이명산 절터에 방치되었던 것을 1960년에 현재의 위치에 옮겨 복원했다.
4장의 평평한 돌을 짜 맞춘 이중 받침의 삼층석탑으로 처마의 끝부분만을 살짝 들어 올린 곡선이 간결하면서도 깔끔하다. 고려 시대 석탑으로 추정한다. 꼭대기 부분(상륜부)은 용의 여의주를 닮은 둥근 모양 수연(水煙)를 제외하고는 남아 있지 않다.
기단에는 까만 버찌가 마치 정성을 다한 마음인양 올려져 있다. 여름이 깊게 다가왔다. 소박한 석탑 옆 긴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햇살이 멈추고 바람이 머물다 간다. 아직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을 시간이다. 괜스레 복잡한 머리가 맑아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다짐을 한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편안하게 다녀온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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