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 배양리에는 ‘형제투금의 전설’ 주인공도 있어
여행의 매력은 목적지가 아니라 달리는 그 자체만으로 즐겁다. 더구나 뜻하지 않게 목적지 이외에서 보물을 만나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 그러했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무명베 짜기 재현 축제에 들렀다가 목화시배지 뒤편에서 백범 김구 선생과 중국의 변법운동가인 강유위, 형제 우애를 지키기 위해 금덩이를 도로 버렸다는 형제투금의 전설을 만났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목화시배지 뒤편에 홍살문이 서있다. 이곳은 문익점 선생의 장인인 정천익 선생과 그의 부친 정유 선생의 효우사적비와 신도비가 있다.
무명베 짜기 축제가 끝날 무렵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게 아쉬워 뒤편 소나무를 만나러 돌아 나왔다. 축제장 뒤편에 홍살문이 서있다. 홍살문 앞에는 ‘고려 공민왕 때 퇴헌 정천익 선생의 목면을 처음 심어 재배에 성공해 온 나라에 퍼트린 곳이다.’로 시작하는 안내문 서있다. 정천익 선생 사적보존회 회장이자 후손이 세운 안내표지 석에는 ‘문익점 선생의 장인으로 목화씨를 처음 재배해 성공해 온 나라에 퍼트린 퇴헌 정천리 선생의 설단과 신도비가 있다. 또 그 옆에는 정천익 선생의 부친으로 고려사열전 효우편 정유란에 형제투금 설화의 주인공으로 기록된 고려 의조상서 양천 정유 선생의 설단과 효우사적비가 있다’고 새겼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배양리 마을 입구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 아래에는 마을 신을 모시는 ‘배양동신(培養洞神) 제단’ 있다.
형제가 길에서 금덩이를 주웠으나 우애를 지키기 위하여 도로 버렸다는 ‘형제투금 설화’의 주인공이 양천 정유 선생이다.
‘고려 공민왕 때 형제가 길을 가다가 황금 두 덩어리를 얻어서 나누어 가졌다. 양천강(陽川江, 지금의 경기도 김포군 공암진 근처)에 이르러 형제가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별안간 아우가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졌다. 형이 그 이유를 물으니 아우는 “내가 평소에는 형을 사랑하였으나, 지금 금덩어리를 나누고 보니 형이 미워 보입니다. 따라서 이 물건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차라리 강물에 던지고 잊어버리려고 그랬습니다.” 고 대답하였다. 형도 “네 말이 과연 옳구나.” 하며 역시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졌는데, 그 이후 이 강을 투금뢰(投金瀨)라고 부른다는 설화이다. 형제투금설화 [兄弟投金說話]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4남매 중 셋째인 나는 어릴 적 덩치가 나보다 작은 형에게 곧잘 대들었다. 또한, 아랫동생을 함부로 대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형제가 화목하게 지내는 것만큼 기쁜 것이 없음을 느꼈다. 요즘 롯데그룹의 형제 난을 보면서 다시금 형제 우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금 느낀다.
마을 입구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 아래에는 마을 신을 모시는 ‘배양동신(培養洞神) 제단’ 있다. 제단 앞으로는 긴 의자며 야외헬스기구들이 숲 사이로 놓여 있고 넓은 평상이 쉴 곳을 마련해준다. 배양 마을 숲은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아 2010년 전통 마을 숲 복원사업으로 오늘날 온전한 숲으로 거듭났다.
산청 배산서원 전경.
제단을 나와 마을 쪽으로 가면 ‘마을의 수호신 망해봉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마을 지키고 가람 건너 절벽 엄혜산은 밤낮 가림없이 마을 파수꾼 역할을 하며~’로 시작하는 <배양(培養)마을> 유래를 적은 비석이 갈림길에 나온다. 비석 옆으로는 코스모스들이 무리 지어 한들거리고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가을 색을 빚었다.
중국의 변법자강운동을 펼친 정치가이며 사상가인 강유위가 쓴 편액이 걸린 배산서원
제단을 나오면 야트막한 동산 앞에 홍살문이 서 있다. 홍살문 뒤로는 기와집이 여러 채 남쪽을 향해 있다. 배산서원(培山書院)이다. 인근 문익점 선생 위패를 모신 도천서원이 사액서원이 되면서 청향당 이원과 죽각 이광우의 위패를 따로 모셔와 덕연사를 세웠는데 대원군 때 헐렸다가 1919년 문묘와 도동사(道東祠) 강당을 지으면서 배산서원이라고 했다.
홍살문 뒤로는 노랗게 농익어가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아래에는 ‘복원유교지본산(復元儒敎之本山)’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청일전쟁 패배 이후 중국 내에서 양무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사회전반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변법자강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을 벌인 이가 강유위다. 강유위의 유일한 손자가 배산서원을 방문해 쓴 글을 새긴 글이다. 중국의 변법자강운동을 펼친 정치가이며 사상가인 강유위가 쓴 편액이 배산서원에 있기 때문이다.
산청 배산서원 강당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낙성축문 현판이 걸려 있다.
서원의 정문에 해당하는 숭인문(崇仁門)은 잠겨 있어 옆으로 들어갔다. 강당의 강유위가 쓴 도산서원 현판을 지나 대청마루에 오르면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이시영, 조완구, 박은식의 낙성 축문 현판이 걸려 있다. 백범 선생의 쓴 친필을 살펴보며 뜨문뜨문 선생의 삶을 떠올렸다. 대청 왼쪽 담장 너머로 소나무 한 그루 외로이 서 있다.
산청 배산서원 내 도동사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햇살이 곱게 드리웠다.
담장에는 무환자나무의 열매가 노랗게 익어 떨어져 있다. 강당 뒤 도동사로 계단을 올라갔다. 햇살이 곱게 드리웠다. 붉은서나물이 말라비틀어진 채 계단 한쪽에 꼿꼿하게 서 있다.
산청 배산서원 도동사는 이원, 이광우와 함께 친분이 두터웠던 이황, 조식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도동사는 이원, 이광우와 함께 친분이 두터웠던 이황, 조식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도동사를 나와 공자의 진영을 모신 문묘로 올라갔다. 문묘로 오르는 길에 길쭉한 소나무들이 시원하게 양산을 받쳐 든 모양새로 반긴다.
산청 배산서원 문묘에서 바라본 풍경.
한 서원에 문묘, 도동사와 같이 2개의 사당이 있는 것이 여느 서원과 다르다. 문묘 앞에 서자 남강 건너편 엄혜산(226m) 만권의 책을 포개 놓은 듯한 절벽 풍경이 아름답다. 엄혜산 절벽에 있는 너덜바위가 마을이 비치는데 이 바위가 마을에 비치면 좋지 않다는 풍수 사상에 따라 이를 가리기 위해 마을 앞 언덕에 기다란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산청 배산서원 뒤편으로 미끈한 소나무들이 신나게 흔드는 모양새가 유쾌한 숲이 있다.
문묘 옆으로 난 담장을 넘자 도깨비바늘들이 온통 붙었다. 도깨비바늘들이 담장 옆으로 줄지어 서 있고 그 옆으로 나팔꽃처럼 생긴 둥근잎유홍초가 땅을 이불처럼 덮듯이 가득 피어있다. 배산서원 뒤편에 서자 적벽산과 백마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온 길을 돌아가지 않고 미끈한 소나무들이 신나게 흔드는 모양새가 유쾌한 숲 사이로 걸었다. 5분여 걷자 마을이 나왔다. 낯선 이를 발견한 흰 개 한 마리가 사정없이 고요한 동네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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