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논개는 진주 기생이 아니다! 사후는 만들어진 역사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5. 4. 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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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6일 빌린 5권을 책을 반납하고 3권을 빌렸다. 빌린 책들과 함께하는 동안 즐거웠다.

    

정동주가 쓴 논개는 논개가 진주 기생이 아니라고 했다. 논개에 관한 최초의 문헌인 유몽인의 어우야담이 논개를 진주 관기로 잘못 알고 적었다고 했다. 이후 혼돈을 가져왔다고 하면서 논개를 기생으로 볼 수 없는 3가지를 밝혔다.

 

첫째, 1748년 의정부 좌참찬을 지낸 권적이 최경회에게 좌찬성 벼슬을 추증해야 한다며 올린 상소문 (최경회)의 부실(논개)이 공이 죽던 날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강 속 바위 위에 노닐다가 적장을 유인해 끌어안고 함께 죽으매...”에 근거한다. 둘째, 1800년 호남절의록 논개는 장수 사람으로 공의 소실이다. 진주에 입성할 때 공을 따라갔다고 기록과 1722년 경상우병사의 첩보문과 비변사관문에서 논개가 진주 출신이 아니라고 밝혀진 바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1650년 민순지의 임술록에서 논개가 적장을 죽일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화장을 곱게 하고 예쁘게 꾸미고 있었다는 기록에 따른 것이다.

 

논개를 관기로 단정한 글들에 대해서는 천한 신분의 여자가 행한 일치고는 제법 가상하다는, 글쓴이의 우월감과 차별적 감정이 짙게 드러나는 내용들이다. 당시의 사회가 남성 중심의 유교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윤리란 여성을 사회의 필요한 구성원 또는 사회를 함께 이끌어가는 동반자로는 여기지 않는 것을 뜻한다. 논개의 신분이 여성인데다 천민으로 분류되는 관기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데는 어려움이 컸을 것이라고 했다.

 

글쓴이 정동주는 논개는 죽은 지아비를 따라 자결함으로써 열녀가 되고, 가문과 문중에 영예를 안겨주는 것보다는 기생 신분으로 위장까지 하여 적장을 죽음으로써 적극적인 충을 실천했다. 논개는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받게 될 오해 따위 때문에 적장을 죽이는 목적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적장을 죽여 남편의 원수를 갚고, 나라를 지키려 했던 더 큰 목적을 위해서는 가문과 본인에게 치욕이 되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논개의 순국은 혁명적이라고 평했다.

    

이에 상반된 글이 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중에서 <역사의 진실 그리고 덧붙여진 이야기 논개>편이다. 나 역시 논개의 죽음을 둘러싼 기억들을 찾고 싶었기 때문에 정동주가 쓴 논개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를 빌렸다. 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중에서 논개 편은 컴퓨터로 필사를 했다. 진주문화연구소에서 펴내고 김수업 전 경상대학교 교수가 쓴 논개 (진주문화를 찾아서 1)는 소장해 읽고 저자의 강의와 역사 현장도 따라 간적이 있다. 나는 김수업 교수의 논개 (진주문화를 찾아서 1)에 동의한다. 따라서 김 교수의 책을 인용한 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에 더 공감한다.

 

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역사의 진실 그리고 덧붙여진 이야기 논개>에 따르면 논개는 사후에 더 새롭게 채색된 만들어진 역사라고 역사라고 했다.

 

논개(論介,?~1593)는 진주 관기로 1593(선조 26) 임진왜란 중에 진주성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자,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장렬한 죽음을 맞았다. 15936월에 벌어진 진주성 2차 전투는 성이 짓밟히자 군사는 패하고 백성은 모두 죽었다고 할 만큼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중에서도 조선인의 희생이 매우 컸던 처절한 전투였다. 일본군은 620일부터 29일까지 열흘 동안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당시 성안에는 군사 3,500여명과 일반 백성 6만여 명이 있었다고 한다. 끈질기게 항전했지만 진주성은 함락되고 말았고 김천일을 비롯한 여러 장수가 남강에 투신해 최후를 마쳤다. 이때 군사와 백성 대부분도 진주성과 운명을 함께했다.

 

동북아국제전쟁 후 광해군과 삼남 지역을 돌아본 유몽인은 어우야담에서 논개에 관해 이렇게 적었다.

 

논개는 진주의 관기였다. 만력 계사년(1593)...... 마침내 성이 짓밟히자 군사는 패하고 백성들은 모두 죽었다. 논개는 몸단장을 곱게 하고 촉석루 아래의 가파른 바위 위에 서 있었는데 바위 밑은 깊은 강물이었다. 여러 왜병이 (논개를) 바라보고 좋아했지만 감히 접근하지 못했는데 왜장 하나가 당당하게 앞으로 내달았다. 논개가 웃으면서 맞이하니 왜장도 그를 꾀어내려 하는데, 논개가 드디어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로 몸을 던져 함께 죽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광해군은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를 발간하여 임진왜란 시기에 활약한 효자, 충신, 열녀의 행적을 기렸다. 그런데 이 책의 구성을 검토해보면 효자 94, 충신 54, 열녀 436건으로 전체 75%의 지면을 열녀에게 할애했다.

 

그것은 이 책이 겉으로 삼강(三綱, ,,)을 표방하고 있으나, 그 속내에는 전쟁 중 일본군에 대항해 정절을 지킨 여성들을 표창해 전쟁으로 무너진 사회 윤리를 바로잡고자 했던 위정자들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더 주목한 만한 사항은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논개의 순국 사실이 누락되었다는 점이다. 유교 윤리에 젖어 있던 일부 편집자들이 기녀를 의사(義士)로 표창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몽인은 논개를 옹호하면서 조정의 결정을 비난했으나 결국 논개는 심사과정에서 탈락해 열녀에 끼지 못하고 말았다.

 

논개는 그 인물 자체보다는 사후에 죽음을 둘러싸고 펼쳐진 이야기가 더 풍부한 편이다. 덧붙여진 이야기는 시대에 따라 또는 논개를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새롭게 채색되고 엮어졌다는 점에서 만들어진역사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이후 논개에 관한 이야기는 18세기 이후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그 행적도 새롭게 창안되기 시작했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논개의 이야기는 여러 방면으로 증폭되었다. 20세기 초반에는 논개가 양반가의 딸이었으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집이 가난해 기녀가 되었다는 기록도 등장한다. 이 주장들은 1960년대 논개를 소재로 한 소설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심지어 논개와 함께 남강에 빠져죽은 일본 장수의 이름까지도 구체적으로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기녀였기에 국가로부터 의열(義烈)’을 떨친 인물로 인정 받지 못하다가, 시대가 변하자 한 지역을 빛낸 구국의 인물로 추앙되고 다시 순애보를 간직한 여인으로 변모하는 논개를 통해 과거의 역사란 그 시대 사람들이 되살리려고 애쓰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글 맺었다.

 

논개에 관한 상반된 기억이다. 지어낸 이야기인 춘향전이 마치 사실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대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이 만든 허구와 진실이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요즘이다. 그런데도 분명한 것은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 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고 했듯이 매년 논개를 기리는 그 마음은 진주에서 의암별제로 이어져 오고 있다. 올해는 524일부터 26일까지 진주성 일대에서 논개제가 열린다.

    

식물의 인문학꽃은 스트레스의 산물이라는 구절에 강하게 인상 남았다. 책에서는 모든 식물은 타고난 유전적 약점이 있단다. 약점은 주로 기온과 햇빛의 변화에서 드러난다. 개나리, 산수유, 매화, 목련은 급상승하는 기온에 민감해 이른 봄에 꽃을 피운다. 이런 식물은 한겨울에도 날씨가 따뜻해지면 스트레스를 받아 꽃을 피운다. 식물이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자태를 뽐내는 듯하지만, 사실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라는 글쓴이의 말에 책을 정독하게 했다. 그래서 샛노란 산수유 꽃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산수유는 내게 간절하게 살아왔는지 노란 몸짓으로 묻는 듯 했다.

    

지리산 역사문화사전은 지리산에 관한 특화된 인문사전과 같다. 하나하나 읽으면서 미처 몰랐던 지리산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에는 드라마 <징비록>을 위해 내가 먼저 빌렸지만 아내가 읽는 덕분에 세 번에 걸쳐 다시 빌린 징비록. 아내가 바쁜 탓인지 중간에서 읽기를 멈춰 오늘 그냥 반납했다.

 

 

그리고 빌린 책은 유성룡(역사의 아침, 이덕일 씀),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잔손북스, 송기엽 담고 이유미 씀), 대웅전(미술문화, 사진 관조스님) 3권이다.

 

유성룡은 드라마<징비록>의 영향으로 당분간은 관심을 가지고 관련 책들을 읽을 예정이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이덕일 선생이 쓴 책이라 더 애정이 간다.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은 봄기운으로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봄꽃과 함께 즐거운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골랐다. 대웅전은 우리나라 절을 알기 위한 공부다. 반납예정일은 41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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