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시 진주댐 밑 남강변 산책하며
추운 겨울이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 스키를 타서도, 눈썰매를 타서도 아니다. 겨울 철새들의 방문을 즐기며 철새 도래지를 찾는 사람들이다. 멀리 주남저수지와 같은 유명 철새도래지를 찾지 않아도 도심 가까운 곳에서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다른 유명 철새도래지와 견주면 개체 수가 적다. 그럼에도 철새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최적지를 찾아 경남 진주 도심의 아파트 숲을 나와 진주댐 밑 습지원을 찾았다.
경남 진주 평거동 남강 건너 편 칠봉산 벼랑이 병풍처럼 남강을 에워싼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는 걸음은 심심하지 않았다.
진주의 새로운 주거지역으로 아파트로 숲을 이루는 평거동과 판문동 지역. 햇살이 곱게 드는 2일 오후 3시 무렵 남강을 찾았다. 해는 동지를 지나 점차로 밝아 오지만 짧다. 정오를 넘긴 해는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울었다. 판문1교를 지나 습지원 안내판을 따라 강변을 걸었다. 해를 안고 걸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자전거와 보행자 전용도로에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내게 다가왔다. 3분여 걷자 남강에 하얀색의 자태를 뽐내는 새들이 날갯짓도 하고 첨벙첨벙 수심 얕은 강가를 거닐고 있다. 요즘 남강의 자연환경이 좋아져 고니들이 많이 볼 수 있다고 하더니 고니인가 싶지만 확신을 못 했다. 아는 새라는 게 몇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져간 카메라도 망원이 아니라 아쉬웠다.
진주 남강의 자연환경이 좋아져 고니들이 많이 볼 수 있다.
강 건너 칠봉산이 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한다. 봉우리가 일곱 개라 칠봉산은 산등성이를 따라 소나무 숲 속을 걸으면서 남강을 비롯해 진양호와 시가지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산이다. 강 건너 편 칠봉산 벼랑이 병풍처럼 남강을 에워싼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는 걸음은 심심하지 않았다. 건너편 남강 절벽 쪽으로 금이 많이 나와서 ‘독고미’라고 불렸던 지명도 있었다. ‘강 건너편 내동면에는 옛날에 돌미륵이 있었다고 한다. 그 돌미륵 때문에 독산마을에는 힘센 장사가 많이 태어난다고 전해지자 강 건너 평거 사람들이 밤에 몰래 돌미륵을 부수니 붉은 피가 흘러내렸고 그 뒤로는 장사가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진주지명사> 중에서)
진주 평거지역 남강 습지원.
습지원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잡풀과 나무로 이루어져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웠다. 습지원이 만들어지면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까이에서 구경할 수 있도록 비포장 흙길, 냇돌이 깔린 강변길, 자갈길, 징검다리 등의 산책로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이곳에서 좀 더 시내 쪽으로 백사장으로 걸어서 소풍을 오기도 했다.
30m 거리에서 논병아리 2마리가 부부애를 자랑이라도 하듯 나란히 물살을 가르며 무리 속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30m 거리에서 논병아리 2마리가 부부애를 자랑이라도 하듯 나란히 물살을 가르며 무리 속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수를 잘해서 잠수함이라는 별명을 가진 논병아리는 텃새다. ‘다리가 몸의 뒤쪽에 붙어있어 보행에 능숙하지 못할뿐더러 날개 또한 작아서 나는 것도 보기에 시원찮아 보이지만 물속은 제 세상이다. 잠수하고 있을 때는 발을 사용하여 전진하며 목만 수면 위로 내놓고 잠망경처럼 주변을 살핀다.’고 한다. (<우리 고장의 자연을 찾아서> 중에서)
문득 초등학교 때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걸어서 1시간여 거리인 이곳까지 전교생이 소풍을 왔다. 수풀 사이로 메추라기 알을 찾으면 보물을 찾은 듯 날아갈 듯 즐거웠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또한, 여름에는 이 근처에서 멱을 감고 놀았다. 멱감기가 지루해질 무렵이면 수풀을 뒤적이며 새 알을 찾으러 다녔다. 그때면 절뚝거리며 나타난 새가 있었다. 그 새를 쫓느라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면 알 찾기는 잊어버리곤 했다. 지금에서야 그 새가 우리나라 하천, 논, 해안, 호수, 늪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여름 철새인 꼬마물떼새라는 것을 알았다. 꼬마물떼새는 알 근처에 사람이나 다른 침입자가 나타나면 부상당한 것처럼 다리를 절뚝거려 침입자를 유인해 새끼를 보호하는 자식 사랑이 매우 깊은 새이다. 부모되어서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했던가.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나 역시 부모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처지가 되었다. 여름 철새인 꼬마물떼새를 겨울인 지금 찾을 수야 없겠지만 설사 만난다 해도 이 마음은 전하고 싶다. 이제는 네 알을 가져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징검다리를 재미삼아 깡충거리며 건넜다. 저만치 아파트 숲에 손에 잡힐 듯 보였다.
징검다리를 재미삼아 깡충거리며 건넜다. 저만치 아파트 숲에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불과 10분 정도의 거리에 사람들은 시멘트로 만든 숲에서 살고 있다. 징검다리 옆으로 횃대가 보였다. 물 가운데에 새들이 날아와 쉬도록 만든 횃대를 보았다. 휴식의 의미를 생각하며 들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름다운 바위 주위에 벌개미취라는 작은 표지판이 보였다. 이미 꽃은 지고 녀석의 흔적은 마른 풀 사이에서 찾기가 어렵다. 새롭게 꽃 피울 때를 기다리며 차가운 땅속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바위 주위에 벌개미취라는 작은 표지판이 보였다. 국화과에 속하는 이 꽃은 6~10월에 피는데 습지에서 자란다고 한다. 이미 꽃은 지고 녀석의 흔적은 마른 풀 사이에서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새롭게 꽃 피울 때를 기다리며 차가운 땅속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산에 걸려 있는 시뻘건 불덩이를 뒤로하고 다시 돌아왔던 길을 걸었다. 달은 저만치 푸른 하늘에 떠올랐다.
나 역시 봄을 맞기 위해 이 겨울, 알차게 보내고 있는지 되물으면서 강변을 걷다 보니 어느새 진주댐 밑까지 왔다. 산 위로 큰 날개 펼쳐 바람에 자신을 맡긴 독수리들이 푸른 하늘을 즐기고 있었다. 댐 주위에는 먹을 것이 많은지 더 많은 새가 자맥질에 한창이다.
산에 걸려 있는 시뻘건 불덩이를 뒤로하고 다시 돌아왔던 길을 걸었다. 달은 저만치 푸른 하늘에 떠올랐다. 강바람은 차다. 몸은 으슬으슬하다. 겨울이 깊다. 겨울이기에 더욱 좋은 풍경이 함께하는 이곳을 거닐면 차가운 겨울 한나절을 거뜬하게 이겨낼 시원한 국물을 마신 듯 기분은 상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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