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니 먹어야 일하지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4. 9.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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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니 먹어야 일하지

손 베이고 가슴에 바늘 꽂힌 듯 아프고 불편한 책<섬과 섬을 잇다>을 읽고

 

섬과 섬을 이어? 그럼 이 책은 부산과 경남 거제를 이은 거가대교처럼 우리나라 다리 건설과 관련된 이야기인가. 아니다. <섬과 섬을 잇다>는 섬처럼 고립되어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상상해본 적 없는 엄청난 일이 자기의 문제로 닥쳤을 때, 도망가거나 아닌 척하며 고개 숙일 수 없었던 사람들. 세월호가 침몰할 때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처럼 가만히 있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거부했던 사람들 이야기다.

 

 

‘분향을 두려워하는 사회, 쌍용자동차 이야기’를 비롯한 ‘제발 이대로만 살게 해달라는 밀양 송전탑 이야기,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라고? 재능교육 이야기, No Worker No Music 콜트 콜텍 이야기, 너에게서 평화가 시작되리라 제주 강정마을 이야기, 같은 일을 하고 다른 대우를 받는 사람들, 현대차 비정규직 이야기, 우리가 끝까지 싸우는 이유, 코오롱 이야기’다.  각 이야기에 앞서 다큐멘터리 같은 만화가 먼저 시작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든지 ‘모난 돌 정 맞는다.’라는 말로 나서기 싫어하고 체념하는 우리에게 책은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베게한다. 읽는 동안 가슴은 주사를 맞을 때처럼 뜨끔뜨끔했다. 읽기 참 불편한 책이었다.

 

 

“우리가 돈을 달라고 하나, 쌀을 달라나, 밥을 달라나, 우리 재미있게 오순도순 엎드려 사는데 이대로만 살게 해달라. 이대로만”

밀양 송전탑 이야기 속의 사람들 육성은 참 듣기가 거북했다. 내가 일하는 사회복지시설에도 송전탑(?)이 있다. 내가 일하는 복지시설의 송전탑은 '효율성'이다. 복지시설 내 송전탑은 공간 효율성과 건강 등을 이유로 시설 내 생활인들을 이리저리로 옮기게 했다. 결혼해 지금 사는 집까지 나는 5번 정도 이사를 했다. 포장 이사를 한다고 해도 이사를 앞두고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비록 도시 내의 같은 행정동에서 옮길지라도 낯선 환경은 스트레스다. 그런 나조차도 근무하는 복지시설 내 생활인들에게 공간 효율성을 내세우며 옮겨가도록 했다. 공간 효율성은 생활인들의 건강 등으로 얼무 버렸다.

 

마치 전력 자급률 1%인 도시에 전기를 보내기 위해 자급률 190%인 영남권이 발전소와 송전탑을 받아들여야 한 것처럼 생활인들에게 이사와 이동을 강요했다. “전기가 그리 좋으면 송전탑을 서울로 다 가지고 가라.”는 외침은 여름철 예사로 에어컨을 돌리며 원활한 전기 공급에만 관심을 둔 나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

 

‘거리 농성 2,267일’째이던 2014년 3월 5일 <한겨레21> 20002호 기념특집 인터뷰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싸우는 이유가 뭐냐?”라는 질문에 “기본을 지킨 것밖에 없어요. 그래서 인터넷 아이디도 ‘답게 살자’예요”라고 답한 재능교육 노동자. 법과 원칙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기본을 지킨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저렇게 오랫동안 농성을 해야하다니. 나는 아마도 지쳐서라도 포기했을 것이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목숨을 걸어도 안 되는 일이 있다”고 절망하는 일이 없는 나라. 노동자들이 계속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노동운동의 전통을 이어가는 일은 더 이상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되는 일에 남은 힘을 보태겠다고 감히 다짐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포기를 모르는 바보였다.

 

올해 마흔넷인 나는 생각해왔다. 내가 사장이면 당연히 직원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다고. 과연 그럴까. 누굴 자르기보다는 잘리는 처지에 설 대부분 나와 같은 처지의 아빠들과 아이들. 해고를 단순히 경쟁에서 도태한 개인 능력의 문제로 보았기에 해고노동자의 외침에 귀를 닫고 눈을 감았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혀 미안하지 않다고 한다. 미안하다면 함께 투쟁하면 되지 않느냐는 당연한 말에 나는 미안해하고 있었다. “‘비’자 하나 더 붙었을 뿐인데 왜 이토록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에 나와 우리가 답할 차례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폐휴지를 줍는 노인들···.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또 다른 얼굴이다.

 

나는 아침 6시 30분에 집을 나서 저녁 7시 무렵 집에 돌아오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깊고 아픈 고민을 묻었다. 나는 피곤하다. 힘들다. 그러면서도 내 아이를 위해 과외를 시키고 학습지를 풀도록 한다. 아이들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내가 바란 내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은 정리해고 당할 걱정 없고 노동자라고 무시당하지 않는 세상이다. 오히려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사장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왔다.

 

코오롱에서 정리해고 당해도 열심히 복직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일배 씨도 나처럼 아이 세대를 위해 고민하고 행동했다. 그러나 고민과 행동은 나와 달랐다. 그는 ‘정리해고는 언제나 가능하다.’라는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그의 자식 또래 아이들이 전부 비정규직이 되거나 정리해고의 아픔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을 알기에 자신의 복직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땅에 사는 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든든한 연대감을 나누고 싶다.’라고 저자들은 바란다. 그 바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내 마음에 빈틈을 만들 생각이다. 빈틈이 있어야 바람이든 물이든 통할 수 있기에.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한다.’ 그러나 먹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 우리의 바람을, 꿈을 굶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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