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 시민들에게 한 몸 같은 남강댐

‘아,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남강과 진주는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변영로 시인의 <논개> 구절처럼 남강은 진주 도심을 에둘러 흘러갑니다. 진주의 역사와 문화도 덩달아 남강을 따라 흘러갑니다.

아울러 남강댐과 남강도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1969년 10월 7일 남강댐이 준공되었습니다. 남강댐으로 인공호수인 진양호가 만들어졌습니다. 진주 시민들에게 나눌 수 없는 한 몸 같은 남강댐을 찾았습니다.

1969년 10월 8일 자 조선일보는 당시 1면 머리기사로 남강댐 준공식을 알렸습니다.
‘남강(南江)댐 준공식이 7일 오후 진주판문동(晋州板門洞)에서 거행됐다. 박대통령(朴大統領)을 비롯,김학렬(金鶴烈)경제기획원,조시형(趙始衡)농림,이한림(李翰林)건설,신태환(申泰煥)통일원장관등 관계장관과 건설관계자,현지(現地)주민들이 참석했다.낙동강의 홍수를 막고농(農)—공업용수(工業用水)를 공급하면서 1만2천㎾(㎾)의 발전(発電)도 겸하는 이다목적(多目的)댐은 진주판문동(晋州板門洞)와 진양군내동면(晋陽郡奈洞面)사이9백75m를 늪이 21m의 둑으로 연결하고 길이 11㎞(㎞)의 인공방수로(人工放水路)와 10㎞(㎞)의 방파제를 만든것이다. ~’

그 당시의 흔적은 오히려 남강댐보다 위쪽에 자리한 노을공원과 남강댐 물문화관에서 찾기 쉽습니다.

노을공원에서 남강댐을 바라보는 쪽에 준공 기념탑이 있습니다. 현재의 남강댐은 2001년 보강한 댐입니다.

뒤편에 남강댐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쓴 <진양호>라는 친필을 세긴 비석이 있습니다. 곁에는 진양호 등에서 사는 수달을 캐릭터로 형상화한 <하모>가 오는 이들을 맞이합니다.

잠시 이곳에서 찬찬히 호수를 둘러봅니다. 하늘을 담은 풍광이 곱습니다. 야트막한 언덕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올라가면 남강댐물화관이 나옵니다.

전시 공간으로 바로 걸음을 옮길 수 없습니다. 남강댐 발전소에서 퇴역한 커다란 수차발전기로 만들어진 사랑열차 ‘롱롱’이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먼저 끕니다.

수차발전기 옆에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다시금 전망대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댐을 봅니다. 잔잔한 호수가 일상 속 찌꺼기를 씻어 갑니다.

숨을 고르고 물문화관으로 걸음을 옮기자, 남강 따라 흘러간 삶의 이야기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남강이 흘러가듯 걸음을 옮기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은 물속에 가라앉은 당시의 논과 밭은 물론이고 마을들과 그 속에 두고 온 사람들의 고향 이야기가 가까이 다가와 들려줍니다.

지리산에서 흘러서 거창과 함양, 산청을 거쳐온 남강이 남강댐에서 모여 숨을 고르고 다시금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러다 창녕 남지에서 낙동강과 한 몸을 이루고 비로소 부산을 거쳐 남해로, 태평양으로 갑니다.

진양호에 사는 수달무리가 우리에게 고개를 내밀어 인사를 건넵니다. 비록 조형물이지만 들어오기 전에 먼저 캐릭터로 만난 하모라 친근합니다.

하모가 바라보는 한곳에는 남강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와 빨래하는 아낙의 모습이 평화롭게 우리를 이끕니다.

이들 곁을 지나면 남강댐을 비롯한 국내의 19개 다목적댐과 세계의 댐을 만나고 배웁니다.

남강댐 건설 이전인 1920년, 1925년, 1933년 진주는 큰 홍수와 맞았습니다. 1936년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쏟아진 집중호우와 강한 태풍으로 진주 읍내 5천5백 호의 가옥이 물에 잠겼습니다. 중앙시장에서 구인회 상점을 열고 포목점을 하던 LG그룹의 창업주 구인회 회장도 그때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오늘날 진주 사람들은 홍수와 물 부족을 상대적으로 덜 합니다. 이 모두가 남강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지금의 남강댐보다 더 일찍이 남강댐을 건설해 홍수를 조절하자고 건의한 자가 나옵니다. 정조 20년(1796년) 5월 8일을 보면 ‘장재곤이 경상도 13개 읍의 농지화 가능성을 말했으나, 거짓말이 드러나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실록에는 ‘장재곤(張載坤)이 남강 상류에는 진주의 광탄(廣灘)과 지소두(紙所頭)라는 곳이 있는데, 양쪽 강안이 가파른 절벽이고 지세가 좁고 낮으며 중앙에 우묵한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부터 물길을 뚫어 강물의 방향을 돌려 사천(泗川)의 바다로 흘러가게 한다면, 그 형세가 마치 병을 거꾸로 세워 쏟아붓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곳은 바다와의 거리가 25리에 불과하고 뚫고 소통시킬 곳도 한 마장(馬場)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길을 뚫은 뒤에 지소두 아래에 제방을 쌓아 물이 범람하지 못하게 한다면 13개 읍(함안(咸安)·창원(昌原)·초계(草溪)·영산(靈山)·양산(梁山)·현풍(玄風)·김해(金海)·칠원(漆原)·의령(宜寧)·창령(昌寧)·밀양(密陽)·진주(晉州)·성주(星州) 등의 허다하게 침수되던 곳이 장차 훌륭한 농지가 될 것’이라고 상소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에 경상도 관찰사 이태영(李泰永)은 ‘허황되다’라고 보고했습니다.

당시의 기술로는 건의 내용대로 실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시대를 앞선 발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도 시도하려 했으나 태평양전쟁 등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969년 준공되었고 2001년 보강을 거쳐 오늘에 이릅니다.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시대를 앞선 발상을 만납니다.

걸음은 어느새 2층으로 올라갑니다. 남강의 풍경과 삶을 담은 사진을 구경합니다. 사진이 이끄는 대로 걸음 하다 보면 물빛 정원 전망대로 향합니다. 높은 그곳에서 바라보는 진양호 풍광이 곱고 아름답습니다.

남강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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