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자의 여름 휴가 후반전
글 써서 납품해 먹고사는 글로자(?)를 꿈꾸는 직장인이다. 정년퇴직을 기다리며 글로자로 온전한 하루를 보냈다. 휴가는 복잡한 업무 생각을 떨치고 몸과 마음의 피로를 덜어내는 충전의 시간이다. 나에게 휴가는 축구처럼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두 번 있었다. 8월 8일부터 10일까지 장모님을 모시고 가족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8월 12일부터는 사흘은 나만의 개인 휴가다. 아침에 출근하듯 집을 나서 진주시립 연암도서관으로 향했다.
노트북실에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욕심이 많아 보조가방까지 가져왔다. 미처 읽지 못한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각종 사보 등. 먼저 수첩을 열어 주간 일정을 점검한다. 글로자로 납품해야 할 글들이 몇 개 있고 글에 앞서 취재해야 할 게 보인다.
잠시 긴 숨을 들이마셨다. 며칠 전에 다녀온 함안박물관과 말이산고분군에 글쓰기를 했다. 햇살에 샤워하며 다닌 말이산고분군의 땀이 떠오르고 박물관 3층 카페에서 마신 카페라테도 생각났다. 3시간여 시간이 지나 글 한 편을 완성해 경상남도공식블로그 담당자에게 메일 전송했다.‘함안박물관·말이산고분군은 과거로 떠나는 타임머신’이라고 초고를 썼지만, 제목이 영 아닌 듯해서 도입부에 추가하며 제목도 바꿨다. ‘인디아나 존스처럼 떠나보자, 함안박물관·말이산고분군으로’
도서관 내 연암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신다. 쌉싸른 커피가 얼음에 녹아 목을 타고 넘어오면 온몸이 시원하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오전 글 한 편으로 끝내고 부랴부랴 통영 한산대첩 축제를 맞아 열리는 세미나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앱에서 주문한 도시락을 편의점에서 픽업해서 먹었다. 불맛이 나는 불고기. 맛이 괜찮다.
식사를 하면서 편의점 창 너머를 바라보는데 초등학교 4학년부터 가능하다는 서울대학교 탐방 안내 걸개가 눈길을 끈다. 맛난 도시락이 씁다. 잘 놀아야 잘 크는데. 초등학생부터 대학을, 서울대라는 이른바 개천에서 용을 만들려는 모습이 안쓰럽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고 용이 될 필요도 없다. 용이 되려고 얼마나 많은 고통과 희생을 강요할지 눈에 선하다. 용을 만들기 위해 들러리로 사는 개천의 미꾸라지들. 이제는 미꾸라지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점심을 먹고 통영으로 향하는데 내비게이션에서 빠른 길보다 무료인 길을 선택했다. 고속도로로 가면 50분, 무료 우선도로로 가면 1시간 20분이 걸리지만 시간 사치를 누릴 셈이라 넉넉하게 나섰다.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게 많다. 아름다운 주위 경관뿐 아니라 간혹 왜 가는지도 모르고 속도에 취할 수 있다. 지금 나는 휴가다. 쉼이다.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기자고 마음먹자, 마음이 더욱 넉넉해진다.
고성 대가면과 상리면 경계에서 멈췄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양산처럼 그늘 드리운 자리에 정자가 있다. 오가는 구름을 멍때리듯 바라본다. 지나온 길들이 발아래에 걸쳐 있다.
숨을 고르고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앞 통영 역사홍보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세미나가 하기 전 40분의 시간 여유가 있다. 근처 통영 공예관에 들러 화려하게 아름다운 공예품을 둘렀다. 하나하나의 작품 같은 상품들에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마실 하듯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세미나 시간에 맞춰 '두룡포 통제영 설치 420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전남 여수와 미묘한 관계에 있는 최초의 통제영은 어디냐를 두고 노승석 동국대 교수는 학술지 '태동고전연구'에 실린 논문에서 "최초의 통제영은 통영 한산도"라고 밝혔다. 역시 세미나 끝에 전남 여수에서 참석한 시민들이 반발하는 질문도 세미나 있었다. 이런 논란은 좋다. 서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마치 재생속도 1.5의 속도로 세미나가 2시간여 만에 끝나자, 본격적으로 한산대첩 축제 현장으로 향했다. 인근 통영 중앙시장을 가로질러 강구안으로 향했다. 정박한 거북선을 중심으로 일본 수군의 깃발과 조선 수군의 어선들에서 펄럭인다. 당시의 함성이 울려오는 듯하다. 강구안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귀가했다.
긴 문장 사이의 쉼표는 문장의 속도를 조절한다. 우리 삶도 그렇다. 일상 속 쉼표,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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