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제사 일체를 지내지 않기도 했다. 어머니의 결심은 지난해 추석 때 있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설이나 추석 연휴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던 건의를 어머니는 무던히 버티다 결정을 내린 셈이다. 덕분에 2024년 설을 맞아 합천 드라마세트장으로 나들이를 다녀왔고 올 추석은 당일치기가 아닌 1박2일로 가족 나들이를 나섰다.
추석 연휴 중인 9월 15일부터 16일까지. 먼저 숙소 예약부터. 10명 정도 간다고 가정하고 알아봤지만, 넓은 공간을 빌리는 게 쉽지 않았다. 값이 비싼 것도 있고 이미 많은 이들이 나들이를 계획하며 선점한 탓이기도 했다.
휴양림 중에서 골랐다. 원래는 2박3일 일정이었지만 여의찮아 1박 2일로 하고 그나마 전남 고흥 팔영산 휴양림으로 날을 잡고 예약했다. 우리네 아이들은 반강제적으로 모두 데리고 갔지만 형님네 아이들은 함께하지 않았다.
드디어 9월 15일, 쉬는 날이라 모두가 나른한 시간을 보낼 때지만 나들이 가는 날이라 다들 분주했다. 더구나 이번 가족 나들이에 어머니께서는 사돈도 모시고 가자고 한 까닭에 장모님 챙길 준비물 등이 많았다. 휴양림은 소파와 의자가 없어 캠핑용 의자와 접이식 의자 2개를 챙겼다.
출발 예정 시각보다 30분 정도 늦었다. 세탁기에 넣은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가려니 예상 시각보다 늦어졌다. 일정이야 조정하면 되니까. 남해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쉬는 것 없이 곧장 여수 이순신대교로 향했다.
실버카에 의지해 걷는 어머니와 휠체어에 의지해 이순신대교 홍보관으로 향하는 장모님. 각각의 걸음으로 올라 지나온 다리를 보았다.
전망대 창너머풍경은 아파트 내에서만 갇혀 사는 장모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시원하다. 전망대를 내려와 홍보 전시실을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점심을 겸해 여수 엑스포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은 크고 넓다. 덩달아 주차장도. 2대의 차량은 서로 나뉘었다. 넓은 곳에서 각각 떨어져 잠시 서로를 찾는 시간을 가졌다. 12년 전 여수 엑스포 장을 왔던 아이들은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나 역시 조형물 하나만이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공원 내 한식뷔페는 모두에게 불평을 받았다. 폭염 특보가 내려진 추석 연휴에 그늘이 곳곳에 있고 휠체어 등 접근하기 쉽고 공원을 식사 전후로 둘러보자고 들렀다. 뷔페라는 이름보다는 그냥 백반집이 나았을 뻔했다. 가족 나들이의 즐거움을 위해 먹거리 선정에 좀 더 고민해야겠다.
식후 커피. 공원 내 커피숍에 들어갔다. 각자 마실 것을 주문했지만 둘러보는 오는 길이 각기 달라 한꺼번에 모이는 데 시간이 잠시 걸렸다.
식후 커피를 마시고 본격적으로 나들이에 나섰다. 여수에서 고흥군으로 이어지는 섬섬백리길을 드라이브하듯 지나가며 주위 풍광을 구경하는 코스였다. 섬섬백리길은 남해 창선도와 사천 삼천포항을 잇는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중 하나라는 창선-삼천포대교처럼 조발도, 낭도, 적금도, 팔영도 등 4개의 섬을 잇는 길이다.
먼저 조발도 전망대가 있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아내는 무장애 산책로 S자 길을 휠체어 없이 장모님 운동시킨다고 손 맞잡고 걸었다.
굽이굽이 나무 테크길을 걸어가면서 바닷가의 바람을 맞았다. 장모님이 걷는 동안 휠체어를 큰 애가 타고 막내가 밀었다. 바닷바람보다 햇볕이 더 뜨거웠다.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면 한낮의 태양과 맞서기에 어려웠을지 모른다.
전망대에서 탁 트인 경치를 구경하고 아래층 카페에 들러 음료로 숨을 골랐다.
“때론 쉼표가 필요하다”라는 카페 ‘더 섬’의 문구가 우리에게 와 닿는다. 우리가 숨을 고는 사이 장모님과 아내가 도착했다. 장모님은 어머니의 실버카가 부러운 모양이다.
윤슬이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는 잔잔하다. 호수 같다. 덕분에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를 바라보는 나 역시 물들었다.
팔영대교를 건너자, 여수시를 뒤로하고 이제는 고흥군으로 들어섰다. 팔영대교를 건너고 우리는 고흥우주발사전망대로 향했다.
하늘 향해 우뚝 솟은 로켓 모양의 전망대가 목표인 듯 주차장에서 내린 모든 이들이 모여들었다. 7층 전망대는 입장료를 받았지만, 경로 할인과 인근 지역민(진주시 등) 할인을 통해 절반 가까운 돈만 지급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랐다.
로켓처럼 급하게 올라가지는 않지만, 풍경은 로켓처럼 쓔웅하고 창 너머로 우리에게 날아왔다.
인근 남열 해돋이 해수욕장에 몰려든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하얀 파도를 일으키는 바닷물결이 시원하다.
동생과 아이 몇은 계단을 타고 무려 7층까지 걸어 올라왔다. 전망대는 반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데 사람들이 많아 테이블과 의자에 앉기에 어려웠다. 어머니께서는 서 있는 우리에게 전망대 카페에서 먹거리를 사서 앉으라고 했지만, 먹거리와 별개로 자리 자체가 이미 사람들에게 점령당한 뒤였다.
회전하는 전망대에서 15분 정도 멍때리듯 발아래 파노라마를 구경하는 데 자리가 빈다. 어머니와 장모님 등이 앉았다. 몇몇은 2층 전망대 도서관으로 벌써 갔지만 느긋하게 천천히 회전하는 전망대에 의지해 두 눈에 꾹꾹 눌러 담듯 경치를 담았다.
저만치에 나로우주센터가 보인다.
우주 발사 전망대를 나와 차로 20여 분 더 달려 과역면에서 저녁 먹거리를 샀다. 과역면에 있는 기사식당 중 한 곳인 과역기사님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지만 다들 점심 식사의 후유증인지 배고프지 않다며 사양했다.
숙소로 정한 팔영산 휴양림으로 향했다. 휴양림은 산 중턱에 자리한 까닭에 십수 번의 커브 길을 돌고 돌아 산막에 이르렀다. 별채 같은 산막 12동에 이르러 씻고 천천히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가져온 캠핑용 의자와 접이식 의자가 유용하다. 앉은 생활보다 이제는 다들 의자가 있는 입식이 편하다. 아이들은 방 한쪽에서 스마트폰과 한 몸을 이루었다. 아이들과 달리 거실에서 늦은 시각까지 TV를 함께 보며 술잔을 기울였지만, 알람도 끄는데도 몸은 새벽 4시 무렵에 반응한다.
샤워하고 한쪽 구석에서 스마트폰으로 세상 구경하다 6시 무렵 산책하러 가자는 마나님 말씀 따라 휴양림을 거닐었다. 차로 올라올 때 느꼈던 가파른 길. 걸어도 마찬가지다. 그런 와중에도 마나님은 씩씩하게 걷고 운동한다. 요즘 6시마다 집 근처 폴리텍대학 운동장을 산책하는 습관이 이런 모양새인 듯하다.
잠시 팔영산의 봉우리를 담고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라면과 함께 먹었다.
밥보다는 라면이 더 맛나다.
추석 맞아 KBS 아침마당 프로그램에서는 외국 며느리와 사위 등이 등장했다. 덩달아 추석을 즐기는 기분이다.
오전 9시가 넘어 길을 나섰다. 어제 전망대에서 보았던 나로우주센터로 향했다. 1시간 정도 고흥반도를 가로지르고 섬을 건너 도착했다. 우주센터 한쪽에 우뚝 솟은 로켓이 반갑게 맞이한다. 전시실을 둘러보는데 다들 각자의 걸음으로 본다.
어머니는 전시물에 바짝 붙어 빨려들 듯 구경하신다. 둘러보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휴게실에 들러 간단히 군것질했다. 고흥유자빵이 달곰하다.
당을 충분한 덕분인지 실내 실물 전시장으로 향하는 걸음은 가볍다.
앞선 전시장보다 여기는 실물 크기의 로켓이라 더 즐겁게 둘러봤다. 단체 사진은 없지만 따로 똑같이 각자 인증사진을 남겼다.
우리나라 육지 끄트머리에 붙은 녹동항으로 향했다. 국립소록도병원이 지척인 곳이다.
바지락 칼국수와 제육을 인원수에 나눠 주문했다. 셀프바에서는 김치전을 구워 먹을 수 있었는데 먹을 것을 달라는 제비 새끼처럼 연신 구운 김치전을 다들 맛나게 먹었다.
커피믹스를 마치 보약처럼 한 약봉지에 담아 제공해 종이컵에 따라 어머니께 드렸다. 보약 같은 커피믹스. 색다른 시도가 좋다. 맛은 커피믹스지만.
근데 2개의 테이블에 나눠 앉은 우리 일행에게 제육과 칼국수가 한 테이블씩 나왔다. 칼국수가 한꺼번에 나오고 제육이 나왔으면 했는데…. 주문과 조리가 서로 소통이 달랐는지 각기 테이블당 따라 나오는 바람에 코스 요리를 먹듯 천천히 나온 음식 따라 느긋하게 먹었다.
녹동항을 벗어나 소록대교를 건너 거금대교를 지나 거금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거금대교는 차가 다니는 2층과 자전거와 보행이 가능한 1층으로 이뤄져 있다. 차로 지나온 다리 아래를 걸어서 건널 수 있다.
거금도에서 소록도까지 2.2km.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다. 바람이 달곰하게 불어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고 돈다. 우리가 거니는 거금도는 조선시대 절이도였다. 동아시아 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조명 연합군이 일본 수군을 싸워 이긴 절이도 해전지다. 명량 대첩을 이끈 이순신 장군과 명나라 진린 제독이 연합(?)해서 일본 수군을 무찌른 곳이다.
300m쯤에서 대부분 돌아갔지만, 어머니와 형, 동생은 700m까지 걸었다. 실버카에 의지하지만, 걸을 수 있는 어머니가 고맙다.
휴게소로 돌아와 ‘꿈을 품다’라는 커다란 거인상 같은 조형물을 마주했다.
우주의 별에 손이 닿는 형상처럼 우리 일행도 어제오늘 저마다의 별을 손에 담았는지 모르겠다.
짧은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댁에서 연어회와 족발, 치킨 등으로 저녁을 먹었다. 내년에는 일본으로 가자는 다짐과 함께 우리 가족의 올해 추석 나들이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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