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문득 떠나고픈 곳이 여기였으면 좋겠네, 통영 삼칭이해안길
여름이 좋습니다. 색다른 아름다움이 넘실거리는 밤 풍경을 산책하기에는 여름이 제격이기 때문입니다. 통영은 다양한 볼거리가 많습니다. 이 중에서도 삼칭이해안길을 저녁 무렵에 동네 마실 가듯 둘러본다면 깊어져 가는 여름의 정취를 느끼기 좋습니다.
▣ 삼칭이해안길
통영시 산양읍 영운리(永運里)의 토박이 지명 ‘삼칭이’에서 유래된 해안 길 이름이다. ‘삼칭이’는 조선시대 옛 통제영의 권관(權管, 종9품의 무관)이 예하 수군을 거느리고 이곳 해역을 지켰던 삼천진(三千鎭)이 설치된 포구라 하여 삼천포(三千浦), 동네 이름을 삼천진리(三千鎭里)라 칭했던 것에서 유래된 토박이 지명이다.
수륙해수욕장 한쪽에 차를 세웠습니다. 오후 7시인데도 주위는 환합니다. 오늘 해넘이 시각은 오후 7시 40여 분. 해안 길을 걷기 전 화장실에 들러서 내 안에 든 것을 비웠습니다.
아름다운 해안 자전거길이기도 한 삼칭이길은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통행이 금지된 곳입니다.
해는 아직도 서녘에서 자신의 열정을 토해내고 있는지 바다는 푸른 빛의 위엄을 잃지 않습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우리 뇌에게 잠시의 쉼을 줄 수 있는 멍때리기 명소가 여기입니다. 어느 곳에 자리를 잡아도 넋 놓고 물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와 바다의 빛을 담은 하늘을 바라보는 자체로 내 안의 찌꺼기를 비워내기 그만입니다.
저만치에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을 형상화한 초록 등대로 향하는 280m의 다리가 보입니다. 등대낚시공원입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 폭의 풍경이 따로 없습니다. 산수화 속 주인공처럼 걷습니다. 다른 이를 비교할 필요도, 의식할 까닭도 없이 내 속도 걷습니다.
그러다 벤치가 보이면 육중한 몸을 앉혀서 병아리처럼 바다 한번 하늘 한번 바라보며 숨고르기 합니다.
다시 힘을 얻어 걸으면 각종 해양 생물들을 알려주는 전시물이 나옵니다. 이 바다와 더불어 사는 다양한 생명체에게 알은체하며 인사 할 기회입니다.
걸음은 더욱 가벼워집니다. 부부가 바다를 벗 삼아 걷는 모습이 그저 평화롭습니다. 파도가 쓸고 간 흔적은 동굴이 되어 움푹 패 있습니다.
마치 바다를 무대로 삼은 객석 같은 방파제에 앉습니다. 바다가 펼치는 공연을 감상합니다. 바람도 곁에 와서 함께합니다.
바다 공연을 뒤로한 채 좀 더 걸으면 바닷가에 홀로 뚝 떨어진 바위인데 남자 거시기를 닮은 남근을 닮은 바위가 나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30여 분입니다.
전설에 마을의 한 아낙이 집 앞 바다를 바라보는데 남근같이 생긴 바위가 바다를 가로질러 뭍으로 오는 것을 보고 놀라 고함을 쳤더니 지금의 자리에 멈춰 섰다는 복바위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한 부부가 섣달그믐날 새끼줄을 꼬아 복바위에 두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아이 낳기를 소망하기보다는 잠시 두 손을 모아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바람에 실어 보냈습니다.
아늑한 주위 풍광을 두 눈에 꾹꾹 눌러 담고 휴대전화에 담아 함께하지 못한 가족에게 보냈습니다.
복바위를 반환점 삼아 왔던 길을 돌아갔습니다. 물살을 가로질러 여러 척의 배들이 고기를 잡으러 줄지어 나서는 모습이 개선장군 같습니다.
오후 8시가 가까워져도 주위는 사물을 분별할 정도로 밝습니다. 그저 뭍사람들이 사는 동네에만 등대처럼 전등 빛이 새어 나와 저녁의 훈기를 전해줄 뿐입니다.
끝 모르게 펼쳐진 평야 같은 넉넉한 통영 바다. 구름이 잔뜩 껴 고개 내민 달님을 구경할 수는 없지만 거친 도시 생활에 마음이 메말랐다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줍니다.
밤이 깊어 좋은 이 여름, 문득 떠나고픈 곳이 여기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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