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딛는 곳마다 초록이 묻어납니다. 시선 닿는 곳마다 연둣빛이 하나씩 고개를 내미는 4월 2일 “시 한잔하시겠어요?”라며 시 낭송가 김태근 시인은 훅하고 우리 곁에 다가왔습니다. 매주 1번씩 산청 성심원 강당에서 <찾아가는 마음 치유 시 낭송> 프로그램을 시작해 6월 18일까지 12주의 과정을 끝내는 발표회를 했습니다.
산청도서관(관장 오순희)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과 독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역 내 독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산청도서관은 산청성심원(원장 엄삼용)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4월 2일부터 <찾아가는 마음 치유 시 낭송>프로그램을 6월 18일까지 진행했습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운영하는 산청성심원은 한센병에 관한 무지와 오해, 편견으로 사회에서 등 떠밀려 오랜 세월 격리된 채 살아야만 했던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사회복지시설로 올해 설립 65주년을 맞았습니다. 한센 마지막 세대인 평균 연령 80세 74명의 어르신과 점차 인원이 늘고 있는 43명의 장애인이 생활하는 공동체입니다.
눈 깜짝할 새 시 낭송 프로그램은 끝을 내달렸지만 시를 통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가슴 뛰는 경험을 했습니다.
6월 18일 오후 2시, 제13회 경상남도교육청 산청도서관이 주최하고 산청성심원이 주관한 <찾아가는 마음 치유 시 낭송>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표회로 기억되리라 믿습니다.
이날 발표회를 앞두고 오전에 강당에 좌석과 마이크 등을 설치하자 어르신들이 찾아와 마음을 가다듬고 실전 같은 발표 연습합니다. 물론 이날을 위해 집에서도 텃밭에서도 시를 읊으며 내 안에 받아들이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드디어 발표회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성심원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한국문화예술교육원 시 낭송협회 회원들도 함께하는 꽃자리가 펼쳐졌습니다. 무대 앞쪽 양동이에 담긴 수국들의 향내가 은은하게 퍼집니다.
오순희 산청도서관장과 엄삼용 산청성심원장의 인사말이 끝나고 본격적인 시 낭송이 이어졌습니다. 수국 향내에 더해 시 향기가 강당을 채웠습니다.
시(時)로 일어나는(立) 대학생(大)이라며 시립대(時立大)라 칭한 어르신들의 시 낭송은 작지만, 여운은 넘실거렸습니다.
아흔둘의 최영임 어르신은 발표회를 앞두고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이날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고령의 어르신이 낭송할 시는 <토닥토닥>이었습니다.
“나는 너를 토닥거리고 / 너는 나를 토닥거린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고 / 너는 자꾸 꽨찮다고 말한다.//~다 지나간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 토닥거리다가 잠든다.//”
아마도 모진 세월을 이겨내며 살아온 자기 삶과 우리 이웃에게 건네는 위로였을 텐데….
어르신들과 시 낭송을 하며 호흡을 맞춘 최영호 부원장도 김태근 시인의 ‘다시’를 낭송했습니다. “‘다시’라는 말 속에는 무한한 꿈이 들어있다.~ 다시 다시 시작하자”
이어서 시립대 반장이신 김용덕 어르신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시인)’가 스스로 살아온 삶의 독백처럼 울렸습니다.“~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오성자 어르신은 김태근 시인의 ‘성심원의 봄’을 읊었습니다. 봄기운이 성심원 뜨락을 감싸는 기분입니다,
정 안젤라 수녀는 김춘수 시인의 <꽃>을 낭송했습니다. 마법처럼 꽃자리에 모인 모두가 꽃이 되었습니다.
김희분 어르신의 ‘희망가(문병란 시인)’는 또 어떻습니까?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 긴 고행길 멈추지 말라 //~” 내일의 희망을 노래합니다.
시 낭송 차례를 앞두고 무대 뒤편에서 심호흡을 가다듬기도 한 시립대 부반장이기도 한 박후경 어르신은 프로그램에 한 번도 빠진 적 없이 참가했습니다.
“길이 끝난 곳에도 / 길이 있다//~”며 우리의 시립대가 영원하리라는 뜻인 양 정호승 시인의 ‘봄길’을 들려줍니다.
“시 낭송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시의 맛을 음미하는 시간이었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시 낭송이 울려 퍼지는 강당은 한 박자 늦추고 한 호흡 가다듬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주위를 돌아보게 합니다.
어르신들의 시 낭송 사이사이로 시 낭송협회 회원이신 오순희 관장 ‘해바라기 연가’, 박삼범·장양순 부부 낭송 ‘늦게 온 소포’, 반해경 한예원 부원장 ‘그대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최성영 한예원 회원 ‘가난한 사랑 노래’가 찾은 이들의 가슴을 울립니다. 어르신들과 시 낭송협회 회원들이 번갈아 가며 더불어 시 낭송으로 화음을 맞췄습니다.
‘돌아보면 모두가 사랑이더라’
시인이자 시 낭송가인 김태근 시인은 장시하 시인의 시를 마지막으로 낭송했습니다. “~가도 가도 세상은 눈부시도록 아름답기만 하더라 / 가도 가도 세상은 눈물겹도록 사랑스럽기만 하더라 / 돌아보면 모두가 사랑이더라//”
시 낭송 발표회 참가자들의 입에서 우리 곁에 다가온 시어(時語)들은 물고기인 양 우리 가슴 속을 헤엄쳐 다닙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잎들의 속삭임처럼~.
※ 사진은 참가 어르신들의 동의를 구해 공개합니다. 시 낭송가 김태근 시인의 시를 인용했습니다. 성심원 시립대 1기생들이 펼친 꽃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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