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다 녹차의 향기를 품고, 눈길마다 초록 물결이 넘실거린다
- <2023 하동 세계 茶 엑스포> 제2 행사장
봄이 저만치 갑니다. 5월, 벌써 초록빛 여름을 향해 내달립니다. 녹차 향 그윽한 그곳에서 초록으로 몸과 마음을 개운하게 씻고 왔습니다. 5월 4일부터 6월 3일까지 31일간 열리는 <2023 하동 세계 茶 엑스포> 제2 행사장에서 지리산 차 한잔으로 고단한 일상의 묵은내를 떨쳐버렸습니다.
<2023 하동 세계 茶 엑스포>는 경남 하동군 적량면 하동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제1 행사장과 화개면 야생차박물관에서 열리는 제2 행사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제1 행사장이 이른바 차 관련 산업 위주라면 제2 행사장은 차 본연의 의미와 맛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제1 행사장과 제2 행사장은 거리가 있어 셔틀버스가 운행 중이며 승용차로 30~40분 정도입니다. 화개장터를 지나고 쌍계사 벚꽃 십리 길을 갑니다. 벚꽃은 졌지만, 벚나무들이 뿜어내는 벚나무 초록 터널이 눈과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해 줍니다.
야생차박물관으로 가려면 화개천을 건너야 합니다. 인근에 차를 세우고, 다리를 건넙니다. 속세를 벗어나 선계(仙界)로 들어서는 기분입니다.
입구에 이른 시각은 5월 14일 오전 9시 55분, 입장을 위해 긴 줄이 우리 앞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각 10시가 되자 그 줄은 금방 꼬리를 감췄습니다.
먼저 영상관이 우리를 반깁니다. 하동 녹차의 싱그러움이 영상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행사장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야생차박물관 앞 뜨락에는 상징 캐릭터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길과 발길을 끕니다.
사람들의 물결에 자연스럽게 이동하다 멈춘 곳이 <천상의 이슬차> 무료 시음장입니다. 한 방울만 마셔도 영원히 기억되는 차라는 문구가 인상 깊었습니다.
효월(새벽달) 이기영 명인의 아들이 우리에게 시음을 권합니다. 차잎을 따서 살청부터 마지막 향 첨가 처리까지 솥안에서 찌고 말리기를 아홉 번 거듭해(구증구포·九蒸九曝) 만든 차입니다. 기존 뜨거운 물을 식혀 80~90도로 우려낸 녹차가 아니라 그저 미지근한 물(시음장에서는 삼다수를 사용) 그대로를 부어서 3분 정도 우려냅니다. 방울방울 정성과 집중을 다해 내려주셨습니다. 안 그래도 작은 잔에 몇 방울이 모였지만 정말 양이 작습니다.
“능히 이 한 방울로 천 잔을 대신할 지어니 가히 천상의 이슬이로다”라고 한 스님의 말씀을 자랑하며 따라주는 이의 말이 결코 헛말이 아닙니다. 커피의 에스프레소처럼 녹차의 맛과 향이 진하게 농축된 맛입니다. 떨떠름한 듯 단맛이 나고 입안에 향이 가득합니다.
정말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찻물을 아주 작은 찻잔에 따라줍니다. 이렇게 2번에 걸쳐 우려낸 맛은 잊을 수 없습니다. 곡우전 1주일만 채엽한 어린 녹차잎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려내고 난 차 잎을 돌아가면 먹어봤습니다. 살짝 데친 시금치나물처럼 고소하고 달곰합니다.
지리산에서 음미하는 차 한잔의 여유가 좋았습니다. 덕분에 행사장을 둘러보는 걸음은 더욱더 가벼워집니다. 곳곳에 녹차 체험 부스는 마셔보라 권합니다. 여기서 한잔, 저기서 한잔, 차향에 취합니다. 입안을 초록 물로 채우고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기분입니다.
앙증스러운 귀여운 다기들은 다시금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습니다. 조심조심 아기 다루듯 만져보고 감상합니다.
중국, 한국, 일본, 영국 차 체험관이 있습니다. 별도의 체험료를 내고 예약 시간에 정해진 이들만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 체험관에서 <일본 다도>를 체험했습니다.
다다미 4장 반 정도의 공간에 체험생 5명과 안내자 1명이 함께 일생에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일기일회·一期一會)으로 정성을 다해 차를 마셨습니다.
도코노마라 불리는 한쪽 벽면에는 족자와 화병이 있었습니다. 그 앞에 화로가 있었습니다.
먼저 다식으로 나온 화과자를 먹고 가루 형태로 정제된 찻잎(가루차)을 찻사발(우리의 막사발)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대나무로 된 막대로 저어서 거품 내어 마셨습니다. 차사발을 어떻게 들고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하나하나 예의범절이 있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마신 뒤 찻사발을 들여다보며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마신 찻잔은 오사카성과 벚꽃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벚꽃 진 뒤의 봄 내음이 녹차의 아름다운 색으로 다시금 봄을 느끼게 합니다.
즐거운 체험관을 뒤로 하고 여기저기를 거닐다 주 무대 앞에서 펼쳐지는 찻상 차리기 경연대회에서 절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초록 언덕길 따라>라는 작품처럼 야외 테이블에 차려진 찻상은 한 폭의 그림처럼 우리에게 초록 언덕을 거닐게 하고 찻잔에 빠진 노란꽃은 태양처럼 빛났습니다.
다양한 찻상 차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맛보기 전에 먼저 눈으로 향을 느끼는 행복한 기분입니다.
곳곳에는 쉬어가기 좋은 그네 의자와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그늘에서 숨을 고릅니다.
걸음마다 녹차의 향기를 품습니다. 눈길마다 초록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녹차 향 그윽한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초록빛으로 개운하게 씻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갈 건강한 에너지를 한가득 충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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