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통영 가볼만한 곳 - 통영 박경리기념관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3. 3. 23. 05:33
728x90
시련을 견딘 은은한 보석 진주 같은 박경리를 만나다

- 통영 박경리기념관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 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종 기울어질 무렵이라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소설 <토지> 1부 1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도서관 등에서 드문드문 쥐 파먹은 듯 읽은 책을 벼르고 벼르다 전부를 구매해 읽었습니다.해가 두 번 바뀐 올해 초에야 겨우 다 읽었습니다.
‘~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
 
‘5부 5권 7장 빛 속으로’을 마지막으로 읽은 뒤 날숨을 길게 내밀었습니다. <토지>는 1897년 음력 8월 15일에서 시작해 1945년 양력 8월 15일까지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긴 호흡의 책을 쓴 작가 박경리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래서 더욱더 설렜습니다.

통영 시내를 지나고 통영대교를 건너자 차 창문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가는 통영 바닷바람이 연신 차 안으로 들어와 묵은내 나는 일상에 찌는 내음을 날려버립니다. 기분 좋게 박경리기념관에 이릅니다.
 

차를 세우고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2층으로 향했습니다.1층에는 북카페 등이 있어 관람을 마치고 쉬어가기 좋습니다.

2층 기념관 입구에 이르자 작은 거인 박경리 선생의 동상이 햇살에 샤워 중입니다. 동상 곁에서 덩달아 햇살에 몸을 정갈하게 씻고 본격적으로 기념관으로 들어갔습니다.

‘ㅁ’자 모양의 기념관에 들어서자 정면에 작은 화단과 함께 선생 흑백 사진이 어서오 라는 듯 반깁니다. 오른쪽 선생의 연대기부터 찬찬히 걸음을 옮기자 시간을 거슬러 선생의 삶으로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1926년 10월 28일 통영시 문화동에서 박수영씨의 장녀로 출생한 선생의 본명은 박금이입니다. 박경리는 필명입니다.
 

1946년 1월 30일 김행도씨와 결혼, 딸 김영주 출생이라고 빛바랜 사진과 함께 당시를 보여줍니다. 이후 선생의 고달픈 삶이 이어집니다. 좌익으로 몰려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은 배우자를 대신해 생계를 꾸려나간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재혼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수예점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갈 때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 총각 음악선생의 구애에 재혼했지만 주위의 질시에 결혼 생활은 오래지 못했고 다시금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 후 선생은 50년 동안 고향을 찾지 않았습니다.
 

왜 죽기 전 고향을 찾았고 죽어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는지 내밀한 속살 이야기는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아픔이 고향을 떠나게 하고 찾는데 50년의 세월이 걸렸는지 모릅니다.
 

죽는 것보다도 더 치욕스러운 궁형을 당하고도 <사기>를 썼던 사마천처럼 선생은 내 안의 아픔을 한자, 한자 종이에 찍어내지는 않았을까요?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 글을 썼던 사람 / 육체를 거세당하고 / 인생을 거세당하고 /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던가 //’
 
문득 사마천에서 선생의 모습이 투영됩니다. 덩달아 선생은 보석 진주(眞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진주는 조개가 체내에 들어온 이물질에 견디기 위해 만들어 감싼 무기체 덩어리입니다. 진주의 은은한 아름다움 뒤에는 조개가 시련을 견디는 매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선생의 글들은 이런 진주 같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소설 <토지>뿐 아니라 <김약국의 딸들> 등에서도 선생은 고향 땅을 50년이나 밟지 않은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문학에 자신을 내몰지는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선생의 작품 속 이야기가 등장하는 통영 시내를 재현한 모형도는 문학 속 현장으로 한달음에 내달리게 합니다.
 

영상실에서 선생의 삶과 문학을 다시금 접합니다.

영상실을 나와 자료실에서 선생의 책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하얀 종이에 필사하면 좋습니다. 마음도 덩달아 평온해집니다.
 

전시실 끝자락에는 ‘생명의 아픔’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사랑은 가장 순수하고 밀도 짙은 연민이에요. 연민. 불쌍한 것에 대한 연민. 허덕이고 못 먹는 것에 대한 설명 없는 아픔. 그것에 대해서 아파하는 마음이 가장 숭고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있다면 길러주는 사랑을 하세요.’
 

기념관에 나와 다시금 동상 곁에 섰습니다. 작지만 큰 거인이 곁을 내어줍니다. 통영 바다가 넉넉한 품을 내어줍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선생의 말에 일상 속 묵은 찌꺼기를 덜어냅니다. ‘~달 지고 해 뜨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우리 모두 함께 사는 곳/ 허허롭지만 따뜻하구나/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선생의 시 <> 중에서)’

기념관 뒷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는 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고향은 선생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결국 고향에 와서 잠들었습니다. 아마도 고향은 그런 곳인가 봅니다.

#박경리기념관 #박경리 #박경리묘소 #북카페 #소설토지 #김약국의딸들 #통영전망좋은곳 #통영여행 #통영가볼만한곳 #통영나들이 #통영시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