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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견딘 은은한 보석 진주 같은 박경리를 만나다
- 통영 박경리기념관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 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종 기울어질 무렵이라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소설 <토지> 1부 1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도서관 등에서 드문드문 쥐 파먹은 듯 읽은 책을 벼르고 벼르다 전부를 구매해 읽었습니다.해가 두 번 바뀐 올해 초에야 겨우 다 읽었습니다.
‘~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끝>’
‘5부 5권 7장 빛 속으로’을 마지막으로 읽은 뒤 날숨을 길게 내밀었습니다. <토지>는 1897년 음력 8월 15일에서 시작해 1945년 양력 8월 15일까지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긴 호흡의 책을 쓴 작가 박경리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래서 더욱더 설렜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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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시내를 지나고 통영대교를 건너자 차 창문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가는 통영 바닷바람이 연신 차 안으로 들어와 묵은내 나는 일상에 찌는 내음을 날려버립니다. 기분 좋게 박경리기념관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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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세우고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2층으로 향했습니다.1층에는 북카페 등이 있어 관람을 마치고 쉬어가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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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기념관 입구에 이르자 작은 거인 박경리 선생의 동상이 햇살에 샤워 중입니다. 동상 곁에서 덩달아 햇살에 몸을 정갈하게 씻고 본격적으로 기념관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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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자 모양의 기념관에 들어서자 정면에 작은 화단과 함께 선생 흑백 사진이 어서오 라는 듯 반깁니다. 오른쪽 선생의 연대기부터 찬찬히 걸음을 옮기자 시간을 거슬러 선생의 삶으로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1926년 10월 28일 통영시 문화동에서 박수영씨의 장녀로 출생한 선생의 본명은 박금이입니다. 박경리는 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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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월 30일 김행도씨와 결혼, 딸 김영주 출생이라고 빛바랜 사진과 함께 당시를 보여줍니다. 이후 선생의 고달픈 삶이 이어집니다. 좌익으로 몰려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은 배우자를 대신해 생계를 꾸려나간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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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혼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수예점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갈 때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 총각 음악선생의 구애에 재혼했지만 주위의 질시에 결혼 생활은 오래지 못했고 다시금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 후 선생은 50년 동안 고향을 찾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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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죽기 전 고향을 찾았고 죽어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는지 내밀한 속살 이야기는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아픔이 고향을 떠나게 하고 찾는데 50년의 세월이 걸렸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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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보다도 더 치욕스러운 궁형을 당하고도 <사기>를 썼던 사마천처럼 선생은 내 안의 아픔을 한자, 한자 종이에 찍어내지는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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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 글을 썼던 사람 / 육체를 거세당하고 / 인생을 거세당하고 /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던가 //’
문득 사마천에서 선생의 모습이 투영됩니다. 덩달아 선생은 보석 진주(眞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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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조개가 체내에 들어온 이물질에 견디기 위해 만들어 감싼 무기체 덩어리입니다. 진주의 은은한 아름다움 뒤에는 조개가 시련을 견디는 매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선생의 글들은 이런 진주 같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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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토지>뿐 아니라 <김약국의 딸들> 등에서도 선생은 고향 땅을 50년이나 밟지 않은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문학에 자신을 내몰지는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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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작품 속 이야기가 등장하는 통영 시내를 재현한 모형도는 문학 속 현장으로 한달음에 내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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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실에서 선생의 삶과 문학을 다시금 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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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실을 나와 자료실에서 선생의 책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하얀 종이에 필사하면 좋습니다. 마음도 덩달아 평온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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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끝자락에는 ‘생명의 아픔’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사랑은 가장 순수하고 밀도 짙은 연민이에요. 연민. 불쌍한 것에 대한 연민. 허덕이고 못 먹는 것에 대한 설명 없는 아픔. 그것에 대해서 아파하는 마음이 가장 숭고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있다면 길러주는 사랑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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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 나와 다시금 동상 곁에 섰습니다. 작지만 큰 거인이 곁을 내어줍니다. 통영 바다가 넉넉한 품을 내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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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선생의 말에 일상 속 묵은 찌꺼기를 덜어냅니다. ‘~달 지고 해 뜨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우리 모두 함께 사는 곳/ 허허롭지만 따뜻하구나/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선생의 시 <삶>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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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뒷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는 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고향은 선생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결국 고향에 와서 잠들었습니다. 아마도 고향은 그런 곳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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