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봄날의 추억 하나 간직한 사천미술관 ‘청춘(淸春)’전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3. 3. 1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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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추억 하나쯤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도 몸과 달리 마음만은 청춘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기도 합니다. 봄이 밀려오는 사천에서 청춘을 이야기하는 전시회 청춘(淸春)326일까지 사천미술관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봄 구경을 핑계 삼아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창선-삼천포대교가 있는 곳으로 한달음에 내달렸습니다.

진주에서 사천으로 가는 길은 바다와 함께합니다. 푸른 바다의 시원한 풍경이 차창을 열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합니다. 창을 열면 푸르고 파란 바다를 닮은 바람이 묵은내를 날려버릴 듯 쏟아집니다.

 

목적지인 사천미술관이 있는 삼천포대교공원에 내려서는 바로 미술관으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실안낙조로 유명한 바닷가를 걸어 먼저 계절의 청춘을 온전히 느꼈습니다.

 

해상보도교에서 바다와 하나가 되면 잠시 나이를 잊습니다. 내달려온 세월의 더께는 씻어버립니다. 기분 좋게 푸른빛으로 몸과 마음을 한가득 채우고 목적지인 사천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몸과 마음은 청춘입니다.

 

미술관 앞 걸개그림은 엄지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킵니다. 손가락을 따라간 시선은 덩달아 하늘로 향하고 또다시 몸은 푸르게 물들었습니다.

 

미술관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보통은 왼쪽에서부터 관람을 시작하지만, 괜스레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 반대편부터 걸었습니다. 마치 아기가 걸음을 배우듯 아장아장 천천히 걷습니다. 짧지만 넓은 공간을 한 바퀴 돌고 본격적으로 반환점이자 전시회 본래 순서인 왼쪽에 섰습니다.

 

곤하게 잠든 고양이들이 친근합니다. 어린아이가 반듯이 누워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나비잠을 떠올리게 합니다. 작품명도 권슬기의 나비잠입니다.

한지에 색을 칠해 한지에 퍼진 고운 색이 빛으로 따사롭습니다. 덩달아 기분 좋은 한잠을 자고 난 것처럼 개운합니다.

 

나비잠을 자는 고양이들을 지나면 강순모의 <Juvenile statue 1><Juvenile statue 2> 이어서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습니다. 은빛 조각상들은 우주복을 입은 형상입니다. 배에 두 손을 올리기도 하고 두 손을 활용하며 말하는 듯합니다. 표정은 없습니다. 헬멧에 가려서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을 지나면 <With>라는 강순모의 조각이 우리를 맞는데 형태가 영~. 45도 정도 왼쪽으로 기우고 땅을 바라보며, 있는 모습이 마치 못마땅한 모양새입니다. 왜 그런지 괜스레 물어보고픈 모습입니다.

간격을 두고 이번에는 황금빛의 조각상 <Juvenile statue 4>이 배를 드러내고 옆으로 길게 드러누웠습니다. 우리가 소파와 한 몸을 이룰 때 나오는 형태입니다.

녀석(?)을 지나면 이번에는 <Juvenile statue 3>이 나오는데 한껏 고개를 숙이고 땅과 한몸을 이룬 듯 자세가 낮습니다. 낮은 자세의 조각상은 회칠을 한 듯 온몸이 허옇습니다.

 

조각상을 지나면 달이라도 떤 듯 백자 여럿이 우리 눈과 발을 유혹합니다. 윤바다의 도예들로 <분청호>라는 작품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색과 어울리지 않는 청이라는 이름이 낯섭니다.

 

하얀 항아리들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다 비친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항아리 안으로 전시장 조명빛이 들어가 반달을 만듭니다. 무심한 듯한 항아리가 만든 풍경이 정겹습니다.

 

전시장 한쪽 벽면과 통째로 3개의 조형물이 우리를 이끕니다. 120*60*30cm<스르->50*50*180cm <!>, 100*200cm <牛步(우보)>입니다. 모두가 발의 형상입니다.

 

작가 윤지영은 동물의 발 이미지를 빌어 사람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얼굴도 몸통도 없이, 감정도 없이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 규율 속에 맞추어진 사람들을 동물의 발 이미지를 착용하여 형상화했다는 작품 설명에 괜히 제 발을 견줍니다.

 

시간이 흘러가면 나무의 나이테처럼 두꺼운 비늘과 녹을 뒤집어쓰고 점점 정체성을 잃고 하나의 부품처럼 살아가는 게 다리로 우리에게 다가온 모양입니다.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내 몸통은 어디로 가고 발만 보이지 않는지, 문득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딘가 하는 어설픈 물음이 연이어 솟아오릅니다.

 

윤지영 작품들과 헤어지면 정운식의 오드리(Audrey)’가 전시장의 끝에 이른 우리가 아쉬운 듯 붙잡습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 속 오드리 헵번이 스크린 너머로 우리에게 말을 거는 기분입니다.

근데 오드리 헵번은 너머의 우리에게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횡단면으로 여러 겹 자른 듯한 흉상의 오드리 헵번은 옆모습만 보여줍니다.

 

오드리를 지나면 <뒷모습>이 나옵니다. 그네 타는 그녀의 뒷모습인데 저는 오른손 엄지손가락만 보입니다. 유독 그 부위만 좀 더 진하게 칠해져 있습니다. 마치 골무를 씌운 듯.

 

전시회 작품들은 물음표를 선물합니다. 청춘은 아직 물어볼 게 많은 모양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듯합니다. 봄날의 추억 하나쯤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봄이 익어가는 요즘이지만 겨울의 흔적이 겹쳐 보이는 듯하고 여름의 열정이 또한 섞여서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모두의 청춘을 품은 사천에서 청춘들의 맑은 봄날을 느껴보면 좋고도 좋을 듯합니다. 전시하는 사천미술관 인근의 바닷가와 사천바다케이블카 등의 명승지는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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