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입니다. 그럼에도 슬프지 않습니다. 시간은 흘러가는 대로 그냥 두고 나만의 쉼터에서 숨을 고르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걸음은 진주 정촌면 예하리와 사천시 사천읍 두량리 경계에서 멈췄습니다.
두량저수지가 나옵니다. 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진주와 사천이 함께합니다.
저수지 한쪽에 있는 두량 생활환경 숲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저수지는 1932년 일본 제국주의 강제 점령기에 조선에서 쌀을 많이 생산해 가져가려고 지은 둑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배수문 공사가 한창이라 예전처럼 구름다리를 건너 경계 너머인 진주로 갈 수 없습니다.
숲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솔향이 바람결에 뺨을 어루만지며 지나는 기분입니다. 일상의 번잡한 묵은내가 사라집니다.
곳곳에 놓여 있는 벤치 등은 쉬어가라 걸음을 붙잡습니다. 급한 것 없고 아쉬운 것 없는 시간의 여유를 맘껏 누립니다.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울창한 나뭇잎들이 푸른빛으로 우리에게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합니다. 덩달아 몸과 마음도 푸르게 물들입니다.
걸음은 두호정(斗湖亭)에서 멈춥니다. 오가는 바람과 인사를 나눕니다. 바람이 차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쾌하다 못해 통쾌해집니다.
곁에 있는 볕 바라기 좋은 긴 의자에 눕습니다. 몸과 마음의 긴장이 스르륵 풀려나갑니다. 딱딱하게 굳었던 일상 속 긴장의 뭉친 근육이 풀어집니다.
긴장의 근육이 풀어지자 걸음은 더욱더 가벼워집니다. 소나무 잎들이 푹신푹신 카펫인 양 앞길을 따라 함께합니다. 소나무 바늘들이 지압하듯 몸과 마음을 다독여줍니다.
저만치 그네 의자에 앉습니다. 흔들흔들. 지나온 시간이, 올해가 촤르륵 스쳐 갑니다.
그네 의자에서 잠시 올해를 돌아보며 다시금 걸음을 옮기자 놀이터가 나옵니다.
놀이터 한쪽 의자 넷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날 좋은 날이면 소풍 나온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듣기 좋은 곳입니다.
숲을 따라 놓여 있는 산책로는 어디를 가도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아담한 까닭에 거대한 빌딩 숲이 주는 위압감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길을 잃는다 해도 그뿐입니다.
걸음은 숲을 벗어나 저수지로 향합니다. 옷깃 사이로 스미는 바람마저 시원합니다.
저수지를 따라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낚싯대가 햇살에 빛납니다.
시간 여유가 더 있다면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도 좋습니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는 저수지 둘레길. 우리네 인생을 닮았습니다.
겨울은 이제 시작입니다. 겨울은 내년에도 이어집니다. 올 한해도 끝이 아니라 새해로 이어지는 인생의 매듭일지 모릅니다. 그런 까닭에 두량저수지와 숲은 우리에게 올해의 끝자락을 아쉬워 말라고 합니다.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과 이어져 있다고 넌지시 일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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