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대신 총 들고 목숨을 바친 역사 현장-하동 화개전투 학도병 추모공원
하동 화개장터를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화개전투를 모르는 이는 많습니다. 1950년 7월 25일 북한군이 1개월 남짓 만에 38선에서부터 섬진강까지 밀고 오자 화개전투에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학도병을 추모하는 공원이 화개파출소 뒤편에 야산에 있습니다.
화개장터 뒤편 야트막한 언덕으로 올라가면 나무 데크 산책로가 있습니다.
영호남 화합의 다리가 저만치에서 보입니다. 지리산 자락을 휘감아 바다로 흘러가는 섬진강이 보입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너머에 전라남도 각처에서 참여한 중‧고등학교 학생 183명이 학도병으로 가방 대신 군 배낭을 짊어지고 여기를 올랐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이들은 펜 대신 총을 들고 꽃다운 목숨을 바쳤습니다.
추모공원 정상으로 올라가는 곳곳에는 쉬어가기 좋은 쉼터가 많습니다. 숨을 고르며 올라가며 그날 펜 대신 총을 든 학도병을 떠올립니다.
정상에 이르자 돌들을 쌓아 올린 참호들이 나옵니다. 경남 진주를 점령하기 위해 전차를 앞세워 섬진강변을 따라 통과하려던 북한군 6사단을 소총으로만 대항해야 했던 학도병들이 몸을 맡겨 싸워던 참호를 복원한 것입니다. 당시 상황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참호마당 너머로 보이는 섬진강을 말없이 흘러갑니다. 참호마당에서 잠시 아래로 내려가자 둥근 바위 위에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학도병 전적비>라 적힌 빗돌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산화한 넋을 잊지 말라고 일러줍니다.
다시금 참호마당으로 돌아온 뒤 아래로 내려가자 정자가 나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내려가자 안내판이 나옵니다. 당시 전투를 기록한 전투약사입니다.
1950년 7월 13일 전남 여수와 순천, 광양, 보성, 고흥, 강진 등 17개 중학교 15~18세의 학생 183명은 순천에 임시 주둔하던 국군 15연대에 자원입대했습니다. 183명은 6개 소대의 독립 학도중대로 편성돼 9일간 기초훈련만을 받은 후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급히 지급받은 M1 소총의 실탄사격도 제대로 못해 본 상태였다고 합니다.
부산으로 진격하던 정예 6사단 선봉대대에 맞서 12시간가량 치열하게 전투하며 183명의 학도병 중 70여 명이 전사 또는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전투 약사 안내판을 지나 좀 더 아래로 내려가자 충혼탑이 나옵니다. 옆으로 산화한 넋을 기리는 무덤이 나옵니다. 행방불명된 이들의 넋이라도 이곳에서 기리는 듯합니다.
위령비에는 영혼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영혼을 기립니다.
추모공원은 평화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호국영웅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화개장터에 온다면 꼭 마음에 담았으면 하는 풍경이 함께합니다. 걷기 좋은 그늘이 드리운 공원에서 역사를 만나고 자연을 거닐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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