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이순신? 이순 장군!!! -사천 쾌재정 터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0. 3. 1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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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만 기억한다면 억울한 이순 장군의 흔적

 




고려 충신 이순 장군이 세운 사천 쾌재정은 지금 흔적도 없지만 500년 넘은 포구나무가 당시를 증언하듯 서 있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순 장군을 모르는 사천 시민들도 많습니다. 고려 충신인 이순 장군은 북에서는 홍건적을, 남에서는 왜구를 물리친 분입니다. 이순 장군의 흔적이 사천 쾌재정 터에 있습니다.

 


사천 쾌재정 터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축동면 구호리 운희식당 앞에 차를 세우면 금방이다.

 

쾌재정 터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비게이션 등에서 쉽게 검색하기 어렵습니다. 사천 축동면 구호마을 회관에서 남해고속도로 쪽으로 내려가면 윤희식당이 나옵니다. 식당 앞 공터에 차를 세웠습니다.

 


사천 쾌재정 터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매화가 은은한 매향을 흩뿌린다.

 

활짝 핀 매화가 먼저 반깁니다. 매향을 가슴 가득 담아 고속도로 옆으로 난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라갔습니다.

 


사천 쾌재정 터로 가는 야트막한 언덕.

 



사천 축동면 구호마을 노인회관

 

구호마을 노인회관에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운치 있게 서 있습니다. 회관 옆으로 고속도로 곁에 홀로 우뚝 선 나무 한 그루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500년이 넘은 포구나무입니다.

 


사천 쾌재정 터 앞에 있는 500년 넘은 포구나무

 

고려 말 도병마사를 지낸 이순 장군이 지은 정자인 쾌재정이 있던 곳입니다. 최영 장군과 함께 홍건적을 물리쳤던 이순 장군은 유배당해 이곳에 오면서 쾌재정을 세웠다고 합니다.

 


사천 쾌재정 터 사이로 보이는 축대가 당시 정자가 있던 곳임을 느끼게 한다.

 

야트막한 언덕 사이 밭들이 있습니다. 밭 사이로 보이는 축대가 당시 정자가 있던 곳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사천 쾌재정 터에서 바라본 남해고속도로. 이곳은 예전에 배가 드나들었다.

 

지금 남해고속도로가 지나는 길은 예전에는 바닷물이 들고난 자리입니다. 축동면은 조선말까지 진주목에 속했던 곳입니다. 구호리는 남쪽으로 남해바다가 펼쳐져 있으며 마을 가운데로 중선포천이 바다로 흘러듭니다.

 


사천 쾌재정 터에 핀 유채꽃

 

나룻배가 드나드는 자리였기에 서울로 실어 나를 바칠 곡식과, 무명, 특산물을 보관하던 창고, 조창(漕倉)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설치한 일명 해창이라고도 하는 조창이 있었습니다.

 


사천 쾌재정 터는 예전에 서울로 실어 나를 바칠 곡식과, 무명, 특산물을 보관하던 창고, 조창(漕倉)인 해창이 있던 곳이다. 지금도 도로명에 흔적이 남아 있다.

 

서부 경남지역 8개 고을 조세를 거둬들여 서울로 옮겼던 곳이던 곳이 1760(영조 36)에 가산리로 옮겨간 후 이곳을 구해창이라 불렀습니다.

 


사천 쾌재정 터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포구나무와 표지석

 

지금은 쾌재정의 흔적은 없습니다. 사천문화원에서 세운 표지석이 당시를 떠올리게 할 뿐입니다.

 


사천 쾌재정 터 포구나무에 세운 사천문화원 표지석.

 

곤양곤수를 재임한 관포 어득강은 당시의 쾌재정 풍경을 시로 읊었습니다.

 

龍山飛翠渡江來 용산의 물총새 강 건너 날아 와서

訪古歸龍洞幾回 옛날의 귀룡동을 몇 번이나 찾았드뇨

會是麗朝豊沛地 일찍이 고려 때 풍패의 땅이었으니

千年王氣尙佳哉 천년의 왕의 기운 아직도 아름답네

 

당시 이곳은 조선 선비들이 지리산으로 유람하던 출발지이기도 합니다. 쾌재정 앞에서 배를 타서 곤양 바다를 지나 하동 섬진강을 거슬러 화개에 이르러 내려서는 지리산 자락인 쌍계사로 향했습니다.

 


사천 쾌재정은 조선 선비들이 지리산 유람을 떠난 출발지이기도 하다.

 

지리산을 닮고 싶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은 57세가 되던 해인 1558(명종 13)에는 음력 411일부터 25일까지 사천에서 배를 타고 섬진강을 거슬러 하동을 거쳐 지리산을 다녀왔습니다. 이때 지은 선생이 쓴 기행문이 <유두류록(遊頭流錄)>입니다.

 

“14일 인숙(이공량의 자()과 함께 강이(剛而구암 이정의 자)의 집에서 묵었다. 강이가 우리를 위해서 칼국수단술생선회찹쌀떡기름떡 등을 마련했다.

15일 또 강이와 함께 장암(場巖, 사천만의 가장 안쪽으로 사천강과 길호강이 합쳐지는 곳이다)으로 향하였다. 강이의 서제(庶弟)인 백()도 따라왔다. 먼저 옛날 고려조 장군이었던 이순(李珣)의 쾌재정에 올랐다.

~ 이날 밤에 달이 낮같이 밝고 은() 같은 물결이 거울을 닦은 듯하여 천근과 옥초가 온통 궤연 위에 놓여 있는 듯했다.

~ 홍지(김홍의 자)의 담요와 겹이불은 그 폭이 매우 넓어서 내가 처음에는 그 한 쪽을 빌려서 누워 잤는데, 점차 나머지 부분을 차지하여 홍지를 자리 밖으로 밀어냈다. 이는 아마도 꿈속에 깊이 빠져서 스스로 자기 물건이 문득 남의 소유가 되는 줄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에서 펴낸 남명집<유두류록>중에서)”

 


사천 쾌재정 터 앞 500년 포구나무에서 지리산으로 유람 떠난 남명 조식 선생을 떠올린다.

 

달빛 안내 받으며 지리산 찾아 나선 남명선생이 떠오르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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