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망해 가는데 선비가 어디에 쓰일 것입니까”
- 백산 안희제 생가를 찾아서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삼성 그룹 창업주 이병철 생가만 들렀다 가면 안 됩니다.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1885. 8. 4∼1943. 8. 3) 선생 생가도 꼭 들렀다가 가야합니다. 삼성 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생가에서 승용차로 1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의령 부림면 입산리에 실업가이자 독립투사였던 백산 선생이 태어난 곳이 있습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가 있는 의령 부림면 입산리 입구애는 선생의 순국비를 비롯해 수파 안효제 선생 행적비, 항일애국지사 송은 안창제 선생사적비, 우국지사 고헌 안여상 선생 행장비 등이 나란히 함께한다.
마을 입구에 비석들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지헌 안기종 장군의 유허비각인 이충각(移忠閣) 옆으로 백산 선생의 순국기념비가 있습니다. 옆에는 수파 안효제 선생 행적비, 항일애국지사 송은 안창제 선생사적비, 우국지사 고헌 안여상 선생 행장비 등 예사롭지 않은 비석들이 마을로 이끕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가 있는 의령 부림면 입산마을 입구
본격적으로 선생 생가가 있는 입산마을에 들어서면 커다란 나무 한 쌍이 일주문처럼 서서 반깁니다. 그 앞에 마을 빛낸 인물들이란 표지석이 눈길을 끕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주차장과 화장실.
생가 이정표를 따라 생가에 이르면 넓은 주차장이 나옵니다. 주차장 한쪽에는 화장실이 있습니다. 주차장을 한쪽 담벼락에는 활짝 핀 무궁화 사이로 태극기를 힘차게 들고 만세를 부르는 이들 사이로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근처 담벼락에 그려진 태극기와 무궁화
태극기가 향하는 곳이 선생 생가입니다.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93호인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부속사 등 2동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농가주택입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대문
문을 들어서면 초가지붕의 사랑채가 나옵니다. 그 뒤로 바짝 붙은 안채가 보입니다. 마당 한쪽에 있는 우물 앞에서 선생의 살아온 흔적을 찾아 사랑채며 안채를 천천히 둘렀습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내 우물.
“국가가 망해 가는데 선비가 어디에 쓰일 것입니까”
1905년 선생은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통치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되자 집안 어른들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하며 신학문을 공부할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사랑채
햇살이 드는 마루에 앉아 선생이 집안 어른들에게 했다는 말씀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안채
“고서(古書)를 읽고 실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무식자만 같지 못합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학문은 오히려 나라를 해치는 것이니, 내일 당장 경성으로 올라가 세상에 맞는 학문을 하여 국민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가위 공맹(孔孟)의 도라 할 수 있는데, 어찌 산림간(山林間)에 숨어서 부질없이 글귀만 읽고 있겠습니까!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안채 햇살이 곱게 드는 마루에 앉으면 실업가이자 독립투사였던 선생의 살아온 삶을 되뇌기 좋다.
이후 선생은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잡기 위해 부산에서 백산 상회를 경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나중에는 만주로 망명, 발해농장과 발해학교를 설립해 민족정신 배양에 힘썼습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안채
1943년 만주 대종교단 사건으로 구금되었다가 출옥 4시간만인 1943년 9월 2일에 순국하셨습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열린 방문 사이로 선생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기분이다.
열린 방문 사이로 선생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기분입니다. 우리가 잊지 않고 그분의 생가를 찾아 흔적을 되뇐다면 선생은 죽어서도 죽지 않고 우리 가슴 속에 살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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