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나들이

경상대학교, 흔적 찾아 흔적 남기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8. 5. 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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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퇴근 후 급하게 집에서 샤워를 마치고 택시를 탔습니다. 목적지 300여m 앞둔 경상대학교 교문 앞에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우산을 받쳐 들고 집으로 향합니다. 지리산과 펜촉을 닮은 교문에 들어섭니다. 싱그러움이 코끝을 간질거립니다.



학교는 초록을 몰아내고 녹색으로 물들어갑니다. 여기저기 푸른빛이 생글거리며 반깁니다. 교훈을 적은 ‘개척’탑 앞에서 잠시 걸음을 세웁니다.



“짧게 살고도 오래 사는 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개척자다

그이의 눈은 앞을 보는 눈이요, 그이의 가슴에는 보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대는 무슨 일을 남기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느냐?

나는 언제나 이것을 묻기 위하여 이곳에 서 있습니다.”

불과 20여 년 전에도 설렘 안고 여기를 드나들었습니다.



경상사진마을 흔적 주제사진전과 신입회원전이 열리는 중앙도서관으로 향하는데 옛적과 달리 녹색 물 뚝뚝 떨어지는 화단이 멋져 다시금 걸음을 세웠습니다.



도서관을 앞에 이르자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처럼 우뚝 솟은 기둥 속으로 지리산의 샘물이 흘러가는 양 흘러가는 모양새입니다.



도서관에 들어섰습니다. 벌써 먼저 온 도재형(흔적 5기)이 후배들과 사진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후배들에게 인사하는 둥 마는 둥 사진들을 먼저 봅니다.



흑백과 칼라의 물결이 들려주는 사진 이야기에 귀를 종끗 세웁니다. 지난해보다 올해는 신입 회원들의 사진에 스크래치가 덜 합니다. 



그런데도 사진은 난해합니다. 사진 제목과 사진이 따로 놉니다. 현장의 감동을 사진으로 옮기는 동안 감동이 차갑게 식은 모양입니다.



마치 경주를 하듯 두 개의 물방울이 향하는 ‘녹음(박태웅/환경재료과학과)’은 또한 햇살처럼 사방으로 뻗어갑니다. 덩달아 제 기분마저 눅눅한 마음 날려버립니다.



‘일탈(이동혁/경제학과)’은 창틀에 끼인 대게가 인상적입니다. 바다로 향하는 중에 틈새에 끼였을까요?



이 중에서도 제 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하게 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십여 개의 작은 구멍을 따라 흘러나오는 물줄기와 컵에 담긴 3개의 칫솔. 어느 자취생의 화장실입니다. 컴퓨터과학과에 다니는 우즈베키스탄에서온 아심의 ‘일상의 흔적(시작과 끝)’은 집에서 급하게 샤워하고 지금 여기에 참석한 제 흔적을 돌아보는 기분입니다. 제 일상을 들킨 기분입니다. 아심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그럴까요? 일상 속에서도 끄집어내는 사진을 보는 눈이 재미있습니다.



‘낯선 이방인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라는 박관빈(농업식물과학과)의 사진은 제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모양새입니다. 커다란 눈망울의 아이들 품에 안긴 강아지의 곁눈질이 그렇게 만듭니다. 녀석은 평안한 품에 안긴 채 다리도 쭉 뻗었습니다. 아주 여유로운 자세로 세상 속 사람을 구경하며 때로는 “살기 힘들제?” 물어보며 위로의 말을 건네려 합니다.



흑백필름을 감는 로더기를 찍은 김민서(세라믹공학과)는 사진 제목이 ‘흔적’입니다. 흔적 회장다운 감수성입니다. 이런 사진 앞에 서면 경상대학교 사진 동아리 ‘흔적’이라는 이름에 묻은 옛 추억을 떠올립니다. 흔적에는 시간이 쌓였습니다. 29년 전 카메라를 들고 교정을 누볐던 오늘에 2018학번 후배들의 사진이 차례로 포개져 ‘경상사진마을 ’흔적‘의 역사를 이룹니다. 잠시 눈을 감고 젊은 당시로 떠났습니다. 스무 살의 열정이 되살아나 알은체를 합니다.



또한, 전시장 한쪽에 걸린 곰 발바닥(?)처럼 생긴 사진은 흑백 인화를 하면서 귀한 인화지를 잘게 잘라 테스트한 흔적을 모아 ‘한 장의 사진이 나오기까지 우리가 남긴 흔적’이라고 알려줍니다.



열정은 단체 사진 속에서 싱그러운 모습으로 다시금 만납니다.



흔적 전‧현직 회장과 학교 앞에서 치킨과 맥주를 마셨습니다. 맥주의 가장 큰 매력은 여유로운 자유입니다. 더구나 사진을 가운데 세우고 흔적 후배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일상의 쉼표를 찍습니다.(위 사진 왼쪽부터 저와 2018년, 2017년 흔적회장, 도재형, 남유경, 아심)



‘꽃은 질 것을 두려워 피지 않는다(최갑수 시인)’는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도 벌써 스무 해가 넘었습니다. 이제는 살아온 날의 절반을 넘깁니다. 후배들 사진전을 보면서 옛일을 떠올리며 후회하거나, 앞일을 걱정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노라고 오늘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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