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마실가듯, 소풍 가듯 가볍게 사부작사부작 마음 비우고 오는 곳 - 해인사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8. 5. 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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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가야산

 

봄은 소풍의 계절이다. 묵은 마음을 비우고 오기 좋을 때다. 흐르는 물이 있어 고민을 흘려버리고 맑은 공기로 퍽퍽했던 마음을 다시 촉촉하게 적셔주는 곳.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있어 기분 전환하기 좋은 합천 가야산 해인사로 4월의 마지막 일요일, 길을 떠났다.

 


합천 가야산 홍류동 계곡

 

교통이 좋아 근처 해인사 나들목에서 불과 30분 이내면 도착하는 곳이 해인사다. 해인사로 가는 길은 또한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길이다. 홍류동 계곡에서 해인사로 가는 길을 '소리길'이라 하는 까닭을 알려주려는 듯 계곡의 맑은 물소리와 바람 소리가 차창을 내리게 만든다. 자연이 들려주는 생명의 소리가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가야산 해인사 내 성보박물관 앞뜰에 있는 청동으로 만든 안성금의 부처의 소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 내로 들어가자 먼저 성보 박물관이 두 눈 가득 들어온다. 박물관 앞뜰에 청동으로 만든 안성금의 부처의 소리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내 안의 불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반쪽 불상 사이로 내 마음을 잠시 내려놓았다.

 

박물관에서 경내로 들어가는 첫 번째 다리인 허덕교를 지나자 본격적으로 절로 향했다. 계곡물이 흘러가고 묵은 마음을 씻어 흘려보냈다. 요즘은 승용차로 편하게 오지만 예전에는 여기까지 오느라고 허덕허덕했다고 허덕교일리는 없지만 뜻을 찾지 못했다.



가야산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경내로 들어가는 첫 번째 다리 허덕교에서 바라본 계곡

 

물소리 바람 소리 길어서 멈추는 곳/ 건너면 불국이고 돌아서면 속이니/ 승과 속 갈라 나누는 엄정한 외다리// 경허 성철 선사 섰던 깨달음 잡고 싶어/ 핏줄도 세간도 던지고 들어서/ 날 찾아 나를 지우려 이 악물고 드는 문// 속인은 소문에 하루를 맡기고/ 발 저린 먼 길 와 웃으며 건넜다/ 불심은 스치고 대장경만 눈에 담고 나오네//

 


가야산 해인사는 사부작사부작 산책하기 좋다.

 

지석동 시인의 허덕교를 인터넷에서 불러내 읊조리며 불국으로 들어섰다. 허물을 벗는 나무처럼 내 안의 허물도 벗었다. 벗은 허물을 씻으라는 듯 작은 연못이 나온다. 금강굴과 보현암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지만 바로 해인사로 향했다. 스승을 찾아다니는 방랑자는 카페 선전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잠시 목을 축인다.

 


고려 팔만대장경을 한국전쟁 때 수호한 김영환 장군의 공적비

 

근처 고로쇠나무 앞에는 도선국사에 얽힌 전설을 들려준다. 두 번째 연못에 이르기 전에 고려 팔만대장경을 한국전쟁 때 수호한 김영환 장군의 공적비가 먼저 나온다. 공적비를 읽으며 근처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 아래에서 다리도, 머리도 쉬었다.

 


성철스님 사리탑. 둥근 돌 테두리 사이에 있는 분수대 같은 둥근 탑(작품명 선의 공간’) 위로 둥근 하늘이 내려다 본다.

 

초록 물결 일렁이는 길을 따라가자 부도들이 나온다. 오랜 나무에도 생명이 움트 새싹이 돋았다. 성철스님 사리탑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둥근 돌 테두리 사이에 있는 분수대 같은 둥근 탑(작품명 선의 공간’) 위로 둥근 하늘이 내려다 본다. “자기를 바로 보라고 늘 말씀하신 스님의 가르침이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땅에서 살포시 어른 키만큼 떠 있는 해인사 구름다리가 초록 샛길을 만들었다.

 

부도를 나오자 비석거리가 나온다. 사적비를 비롯해 각종 공덕비가 즐비하게 서서 반긴다. 비석거리를 지나자 당간지주가 나오고 길상탑이 나온다. 탑을 지나자 땅에서 살포시 어른 키만큼 떠 있는 구름다리가 초록 샛길을 만들었다. 다리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가야면 야천리 반야사 터에 있던 원경왕사비가 나온다. 비가 얇다. 매끈하다.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가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자 정진 중인 왕자들의 모습이 비쳤다는 영지(影池)

 

일주문을 앞두고 가야산 정상이 연못에 비친다는 영지(影池)가 나온다.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가 장유화상을 따라 가야산 칠불봉으로 출가한 입곱 왕자를 그리워하여 가야산을 찾았으나 산에 오를 수 없어 아들 그림자라도 보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자 정진 중인 왕자들의 모습이 이 연못에 비쳤다고 한다.

 


일주문 옆으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 새겨진 돌기둥

 

일주문 옆으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 새겨진 돌기둥이 나온다. 서방정토에 계신 부처님인 아미타불을 진심으로 염하면 극락세계에 온다는 말처럼 나지막하게 나무아티타불을 여러번 읊조리며 일주문에 들어섰다.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과 봉황문 사이 오른쪽에 있는 고사목. 1200년 동안 해인사와 함께 했던 나무였지만 1945년 수령을 다했다.

 

일주문 너머는 우뚝 솟은 나무들이 나를 반기는 듯 쭉 서서 반긴다. 기분마저 상쾌하다. 일주문과 봉황문 사이 오른쪽에 고사목이 나온다. 1200년 동안 해인사와 함께했던 나무였지만 1945년 수령을 다 해 지금은 둥치만 남았다고 한다. 손을 살며시 나무에게 내밀었다. 눈을 감았다.

 


가야산 해인사에 최근래에 만들어진 소원나무

 

고사목에게 인사를 건네고 봉황문을 지나자 소원나무가 오른편에 나온다. ‘이곳에 소원을 적고 국사단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소망하시는 일을 이루어 질것이라는 안내판에 그저 웃었다.

 


가야산 해인사 종루에서 법고를 두드리는 스님

 

쓴웃음을 머금고 해탈문을 지나자 북소리가 들린다. 일주문에서 해탈문까지 33계단을 거쳤다. 수행하는 스님인 듯 차례로 법고를 두드린다. 짐승 세계의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두드리는 북소리가 마치 내 안에 남은 더러운 성질을 마저 버리라는 듯 외친다.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大寂光殿) 앞뜰에는 연등이 바람에 하늘하늘한다.

 

종각을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구광루로 향했다.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大寂光殿) 앞뜰에는 연등이 바람에 하늘하늘한다. 정중탑(庭中塔)이 마치 등을 뚫고 솟구친 모양새다. 대적광전에는 염불 올리는 소리와 기도하는 중생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고려 팔만대장경을 모신 장경판전

 

대적광전 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대장경을 모신 장경판전으로 향했다. 장경각의 터에 숯과 횟가루, 찰흙을 넣어 여름 장마 때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할 때 습기를 내보내 자연적으로 습도 조절할 수 있게 한 선조들의 슬기를 엿보았다. 법보전 창을 통해 대장경을 보면서 국난 극복의 염원을 담은 고려 민중의 뜻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였다.

 


한점 바람에 풍경 소리가 일렁인다.

 

한점 바람에 풍경 소리가 일렁인다. 덩달아 내 안도 맑아진다. 고운 최치원이 신라의 거문고를 튕기며 기울어가는 신라왕조에 대한 시름을 달래던 학사대에 섰다. 그가 거꾸로 꽂아 두었다고 전해지는 전나무가 지금까지 살았다는 전설이 바람처럼 들려온다.

 


고운 최치원이 신라의 거문고를 튕기며 기울어가는 신라왕조에 대한 시름을 달래던 학사대

 

근처 북카페에 들렀다. ‘무엇 때문에 바쁘십니까라는 책 제목이 죽비처럼 묵직하게 내를 깨운다. 참된 모습이 그대로 유리 너모로 비친다. 냉커피 한 잔과 함께 다시금 바람 불면 다시 오리라다짐하며 나왔다.

 


사부작사부작 해인사를 거니는 동안 마주한 풍경은 한 편의 영화고 한 폭의 그림이다.

 

사부작사부작 해인사를 거니는 동안 마주한 풍경은 한 편의 영화고 한 폭의 그림이다. 봄이 깊숙하게 들어와 농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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