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서 더욱 아쉬운 가을,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면 쌍계사 십 리 길이 딱이다. 하동군 쌍계사 십리 벚꽃길은 가을에도 아름답다.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가장 먼저 단풍을 드는 벚나무가 만든 풍경이 정겹다.
면 소재지를 벗어나 쌍계사에 이르는 신작로에 심은 벚나무 1000그루가 넘는 나무들이 벚꽃 터널을 이루는 십 리 벚꽃길은 봄이면 사람들로 붐비다. 화려한 벚꽃이 진 뒤 한산하다. 그럼에도 이 길은 잠시 걸어도 좋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길가 안내판을 따라 걷는데 란타나꽃이 진분홍빛과 노란빛으로 반긴다. 때마침 내리는 가을비에 받쳐 든 우산 너머로 차밭에는 싱그러운 초록 물결이 일렁인다.
담백한 풍경들이 걷는 나와 함께 한다. 늘 익숙하던 패턴에서 잠시 빠져 나와 새로운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 가을 남자로 만든다.
물기 머금은 낙엽은 뒹굴지도 자박자박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저 시간과 멈췄다. 덩달아 멈춘 내 주위로 온 세상 고운 빛이 여기 다 모인 듯 반짝인다.
가는 길가 곳곳에는 녹차와 커피를 파는 가게들이 발길을 유혹한다. 범하마을에서 길이 아래와 위로 갈라진다. 일방통행로을 따라 시간이 멈춘 벚나무터널 속으로 걷는다.
마을 정자에 올라 비도 피하고 숨을 고른다. 두 눈 가득 들어오는 풍광이 가쁘게 살아온 나를 위로한다. 졸졸졸~ 박자 맞추듯 내려가는 화개천 물소리가 경쾌하다. 거울같이 맑은 물에 비친 건너편 바위가 추상화 같다.
다원에 들렀다. 녹차의 엷은 녹색 물빛이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준다. 상쾌한 듯 떫은맛이 입안에 평화와 함께 퍼진다.
나무터널 사이로 가을비 따라 살짝살짝 바람이 일렁인다. 마음속 깊은 곳 꼭꼭 숨겨 놓은 묵은 찌꺼기가 날려간다. 내리는 빗물에 씻겨 나간다.
무르익은 가을이 말을 걸어온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가을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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