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나 진주사람 리영달 ‘나의 고향’ 사진전 9월 22일까지 진주 ‘루시다’에서
에나 진주사람 리영달 ‘나의 고향’회고전 포스터
역시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진솔하게 살아온 진주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흔적을 남기고자 아직도 사진 활동을 멈추지 않는” 에나(‘참’, ‘진짜’라는 뜻을 가진 진주지역 말) 진주 사람을 만나러 간 그곳에서 보았다.
9월 6일, 진주 상평교를 건너 진주역 방향으로 가다가 편의점 맞은편에서 멈췄다. 여느 카페처럼 생긴 문을 열고 ‘루시다’로 들어갔다. 밝은 방을 뜻하는 라틴어 ‘루시다’와 달리 갤러리 루시다 안은 다소 어둑하다. 문 열자 오른편에 여느 카페처럼 탁자와 의자가 놓인 곳이 있다. 왼쪽 갤러리로 곧장 들어갔다.
진주 호탄동에 있는 갤러리 루시다
직사각형의 갤러리 가운데에서 언제나처럼 나를 뛰게 하는 사진이 먼저 반긴다. 관람 방향에 상관없이 ‘남강교 1963년’이란 작은 설명이 대신하는 사진 앞에 섰다. 남강을 건너가는 말에게 웃통을 아예 입지 않은 야윈 사내가 수레 위에서 오른손을 번쩍 들어 채찍을 내리치는 사진이다. 말의 두 눈은 흘러가는 잔잔한 남강처럼 덤덤하다. 둘 뒤로 배경처럼 남강 다리가 있다. 왼쪽에 공사장에 쓰이는 비계 재료가 있다. 다리로 건너지 않고 남강으로 들어가 일이라도 벌이는 모양새가 마치 배경의 다리와 경쟁하는 느낌이다.
리영달 ‘남강교 1963년’ 작
‘진주 사진의 재조명- 사진의 계명성(鷄鳴聲)’이라는 주제로 여는 릴레이 사진전 중 첫 번째 전시회인 리영달 선생의 ‘나의 고향’전시회가 끝나면 같은 장소에서 김삼경·김우태 선생의 사진전이 20일씩 릴레이로 전시될 예정이다. 닭 울음 소리(鷄鳴聲)가 어둠을 몰아내지 않았다. 어둠이 물러나고 밝은 아침이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울었을 것이다. 새벽을 여는 닭 울음소리처럼 진주지역에 사진문화를 이끈 리영달 선생을 비롯해 김삼경, 김우태 사진가의 사진전이 열릴 예정이라 진주 문화와 사진을 좋아하는 처지에서 반갑고 고맙다.
리영달 ‘대평 1968년경’ 작
몇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흑백 사진 속에서 등장하는 산과 길, 그리고 사람의 향기는 내게로 이어진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편안하게 사진을 구경했다. 아이를 목말 태운 아빠가 소꼬리를 잡아당겨 보지만 다리난간에 고삐 묶인 소는 고개를 돌려 애써 외면한다. 송아지가 맘껏 젖을 물도록 오히려 뒷다리는 굳건하게 내디디고 있다. (‘대평 1968년경’ 작)
리영달 ‘장대동 1969’ 작
걸음을 옮겨가면서 찬찬히 사진을 구경하며 나 태어나기 이전의 시간 속 진주 풍경으로 들어간다. 지금은 음악 분수대가 마련된 서장대 아래 백사장에는 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진주성 언덕까지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승부는 끝났다. 이미 싸움에서 진 소가 마치 씨름판에서 패대기쳐진 선수처럼 모래밭에 들어누웠다. (‘서장대 아래 1969’ 작)
연도 미상의 남강에서 찍은 사진에는 빨래하는 엄마 옆에 큰 양철 대야에 들어간 아이를 붙잡으며 빨래하는 아줌마가 보인다. 등에 엎힌 아이는 누나와 대치를 이루며 고개를 아래를 떨구고 자고 있다. 책을 읽는 누나는 동생이 반대편에 기울도록 책에 빠져 있다. (‘장대동 1969’ 작) 플라스틱 대야에 살포시 작은 몸을 구긴 아이가 잠이 들었다. 엄마는 곁에서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1964년경 진주시내’ 작에 나온 엄마와 아이다.
리영달 ‘진주성 서장대 1967’ 작
‘진주성 서장대 1967’ 사진은 질투가 날 정도로 아주 흥겹다. 장단 맞춰 춤을 추며 함박 웃는 할머니 옆으로 또 다른 할머니를 아주 가슴뼈가 으스러지도록 꼭 껴안고 입맞춤하는 할아버지 사진은 꽃피는 춘삼월처럼 유쾌하다. 젊은 연인들보다 더 멋들어지게 사랑 표현하는 할아버지는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의 취기에 용기를 얻었을까.
카페를 겸하는 갤러리 루시다는 차 한잔의 여유와 함께 사진을 구경하기 좋다.
사진은 큰 게 A3 정도이고 A5~A4 용지 크기만 한 사진도 있다. 허리를 숙이고 좀 더 가까이 다가서면 보이는 사진 너머의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갤러리를 나오면 카페다. ‘펑’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을 것 같은 옛 사진기 뒤로 사진 관련 책들이 꽂혔다. ‘사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묻는 책제목에 이끌려 의자에 앉았다.
리영달 선생이 전시 중인 자신의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의자에 앉자 탁자 너머에서 두 눈 크게 부릅뜨고 싸우는 사진이 내려다본다. 가쁜숨을 몰아쉬는 투우장의 숨소리가 들린다. 돌잔치 상에서는 아이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는 가족들의 바람이 들리는 듯하다.
책을 펼치자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구매한 거래명세서가 양장표지 뒤편에 붙어 있다. 거래명세서에 적힌 책 3권 모두가 사진 책이다. 책 읽은 이의 밑줄 따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진가들은 대부분 비밀스러운 관찰들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다. ‘누군가의 삶이 누군가에겐 풍경이 되고, 여행길에서 만난 인연은 추억이 되고, 때론 눈에만 스쳐도 아픈 모습을 만나 셔터조차 누르지 못한 순간도 만나지만 이러한 성장통 속에 우리는 더 강해질 것이다.’라는 구절이 쓰인 사진집에서는 무릎을 쳤다.
‘아픈 아버지를 업고 약방으로 가는’ 리영달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살아온 선생의 이력을 엿볼 수 있었다.
사진집을 읽으며 쉬고 있을 때 리영달 선생과 사모님이 갤러리로 오셨다. 덕분에 기념사진도 남기고 작품 설명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은근슬쩍 “집사람이~”로 시작하는 사모님 사랑을 엿듣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픈 아버지를 업고 약방으로 가는 사진 속에서 자연스러운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살아온 선생의 이력을 엿볼 수 있었다. 몇 번이고 찾아가 친분을 나눈 뒤에야 카메라를 들고 촬영했다는 선생도 요즘의 ‘초상권’은 피해가지 못했다. “이제 나 죽고 나면 풀이 친구가 될 거라”라며 너털 웃는 선생은 요즘 연꽃과 연잎 사진에 빠져 있다. 구수한 사진 이야기에 아쉽게도 ‘진주성 서장대 1967’ 작의 촬영 당시를 물어보지 못했다.
진주 호탄동 갤러리 루시다에서 열리는 ‘나의 고향’ 사진전에서 리영달 선생과 함께
선생은 1919년 진주 걸인·기생 만세운동과 망진산 봉수대 복원처럼 진주문화사랑모임을 통해 진주문화를 지키고 알리는 데 앞장섰다. 에나 진주사람, 그의 회고록이 또한 기다려진다.
‘나의 고향’ 사진 속에서는 삶의 향기가 펄떡인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투박하다. 삶의 터전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묵직한 이야기가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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