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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데이트, 청와대 분교에서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6. 3. 2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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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촌 결혼 덕분에 3월 19일, 어머니와 청와대 분교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진주에서 결혼식이 열리는 청주까지는 2시간 30분이면 도착하지만,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기사 노릇 할 내게 출발 시각 등에 관해 묻는다. 결국, 출발 당일 아침에 일어나 부랴부랴 샤워하고 어머니 댁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7시 30분에 집을 나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결혼식장 근처에 이르니 오전 10시 10분. 마침 근처 ‘상수 허브랜드’가 보여 결혼식장에 가기 전에 구경 삼아 들렀다. 봄이 올라오는 중이라 허브 가득한 향내가 비교적 적다. 허브랜드 곳곳에 나름의 스토리텔링처럼 이야깃거리를 만들었지만, 특히 눈길을 끈게 있었다. 이른바 ‘고추공룡’이다.


자연석 하나에 담긴 ‘이야기’가 재밌다. 고추공룡은 앞에서 보면 남근형상이고 용궁(연못)에서 보면 알을 낳는 모습이고 물속에서 보면 갓 출산할 무렵인 자연석이다.



모든 사물은 “입체적으로 보고 입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냉철하게 이성적인 글이 많았다. 어느 순간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낯설지 않게 될 정도로 감성에 호소하는 글이 많다. 심지어 취업과 진학을 위한 자기소개서에도 스토리텔링,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위해 스펙을 쌓는 시대이기도 하다.

작지만 이야기를 키워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결혼식에서 점심을 먹고 참석한 마산 이모네와 근처 청남대를 다녀왔다. 1982년 대청댐이 만들어진 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대통령 별장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충청북도에 관리를 이관하면서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국도변에서 청남대로 가는 길은 한참이다. 승용차로 15여 분을 더 들어갔다. 철책을 겸한 문을 지나 가로수길 멋들어진 길을 타고 3분 정도 더 들어갔다. 매표소가 나오고 근처에 차를 세웠다. 당시의 별관은 기록관으로 바뀌어 역대 대통령들의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언제 다시 와서 보겠느냐”고 하시며 찬찬히 보신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휠체어를 빌렸다. 두 손으로 휠체어를 밀며 걷는 걸음이 어머니는 가볍다. 별관에서 대통령 역사 기록을 공부하는 기회였다. 기록관(별관)을 나와 본관을 구경했다. 우리가 본관으로 들어갈 무렵 먼저 도착해 구경한 이모네와 헤어졌다.

2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본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불편한 걸음을 고려해 설치했다고 한다. 비단 대통령뿐 아니라 아직도 많은 지체 장애인을 비롯한 몸이 불편한 이를 위한 편의 시설이 더욱 많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본관을 둘러보고 근처 산책길을 걸었다. 폐장 시각이 오후 6시니 아직 여유롭다. ‘전두환 대통령 길’이라 붙여진 산책로를 걸었다. 계단에서는 휠체어를 접고 들었다. 괜히 휠체어를 빌렸다며 미안해하는 어머니에게 씩 웃었다. 다행히 산책로에서 계단이 설치된 길은 얼마 되지 않아 봄기운 물씬 맞으며 걸었다.


양어장 건너 ‘대통령 기록관’도 들렀다. 대통령 기록화뿐 아니라 체험 공간이 지하에 있었다. 대통령 집무실, 기자회견장, 오픈카 등이 있었다. 마침 휴대전화 배터리도 다 방전되어 집무실에 앉은 어머니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다. 다행히 외국 정상과 함께하는 가상 체험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내 메일로 받을 수 있도록 있게 되어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하는 어머니 뒤편에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대통령 별장이었기 때문인지 이중철책선을 비롯해 곳곳에 감시 초소가 있었다. 삼엄한 경비가 필요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씁쓸하기도 했다. 삼엄한 경비가 필요 없는 우리 이웃 같은 대통령 별장은 없을까.


오후 2시 30분에 들어와 청남대를 나온 시각은 오후 5시 20분쯤. 3시간을 걷고 구경했다. 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8시 20분.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묻는 둘째에게 ‘청남대’ 다녀왔다고 했더니 “결혼식장에 안 가고 대학 갔다왔어요?”라고 한다. 웃으면서 그곳은 ‘청와대 분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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