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부부관계마저도 소원해지는 요즘, 유혹에 넘어가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4. 8. 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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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턱 막힐 듯이 더운 여름이면 하얀 눈꽃 빙수를 닮은 이팝나무 꽃이 그립다. 이팝나무 꽃도 지고 난 뒤 무더위에 몸과 마음이 짜증스런 요즘. 부부관계마저 무더위로 인해 서로의 체온도 그저 뜨거운 열기일 뿐 가까이 하기에 덥다. 소원해지기 쉬운 부부사이에도 애틋한 금실과 화목을 기원하는 나무 꽃이 있다. 연분홍빛 솜털 같은 우산 모양의 꽃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리며 내게 손짓한다. 바로 자귀나무 꽃이다.

 

연분홍빛 솜털 같은 우산 모양의 꽃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리며 내게 손짓한다. 바로 자귀나무 꽃이다.

 

경남 진주에서 산청가는 국도 3호선에 드문드문 심어진 자귀나무 꽃에 반해서 차를 세우고 꽃 구경을 나섰다. 진주 집현면사무소를 지나 조비마을. 자귀나무는 마주나는 잎이 밤만 되면 어김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애틋하게 감싸듯 서로 다정하게 포개어진다하여 '합환목(合歡木)'이란 아름다운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화목한 부부애를 기원하며 정원에 많이 심었단다.

 

옛날 어느 마을에 부지런하고, 황소같이 힘 센 젊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결혼할 나이가 되어도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어 혼자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는 날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아름다운 꽃들에 정신 팔려 꽃이 만발한 집 뜰 안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한창 넋이 나가라 꽃을 구경하고 있는데 부엌문이 열리면서 어여쁜 처녀가 나타났다고.

이렇게 두 사람은 첫 눈에 반해 결혼을 해 알콩달콩하게 재미나게 살았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면 싱겁지 않던가. 어느 날 남편이 읍내로 장을 보러갔다가 그만 주막 주모에게 빠져 몇날 며칠을 돌아오지 않으며 바람을 피운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백일기도를 했는데 산신령이 꿈에 나타나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언덕 위에 피어 있는 나무 꽃을 꺾어다가 방안에 꽂아두라고 했단다.

아내는 신령의 말대로 꽃을 꺾어다가 방안에 꽂아 두었다. 어느 날 밤늦게 돌아온 남편이 꽃을 보고 옛 추억에 사로 잡혔는데 그 꽃이 자귀나무 꽃이다. 아내에게 청혼하며 바쳤던 꽃이었기 때문이다.(<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꽃 백가지> 중에서)

  자귀나무 꽃.

 

여름에 꽃이 필 때 꽃봉오리채로 채취해 말렸다가 소주에 6개월쯤 담가 어두운 곳에 두면남녀규방주(男女閨房酒)’가 된다고 한다. 잠자리 들기 전에 부부가 함께 나눠 마시면 더없이 좋단다.

 

하얀 종모양의 참깨꽃

자귀나무를 뒤로 하고 마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밭에는 하얀 종모양의 참깨꽃이 피었다. 벌이 붕붕 힘차게 날개짓하며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바삐 움직인다. 고소한 깨 내음이 나는 듯한 착각 속에 마을 정자나무인 느티나무에서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안에는 탐스런 꽃들이 담장에서 바람에 시계추처럼 흔들거리며 걸음을 세운다. 능소화다.

 

 

양반꽃이라 불린 능소화.

 

능소화를 우리나라에서는 양반집 정원에만 심을 수 있었단다. 일반 상민집에서 능소화를 심어 가꾸면 곤장을 때려 다시는 심지 못하게 했기에양반꽃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노란 빛깔에 붉은 물감을 더한 듯한 깔때기 모양의 능소화는 주위의 나무와 벽을 타고 높이 올라간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꽃 피운 동백꽃처럼 무더운 여름을 적황색 꽃에 담았다. 필때도 꽃잎과 같이 통으로 피고 질 때도 모양을 흩트리지 않은 채 툭하고 활짝핀 그대로 떨어진다. 그런 까닭인지 꽃말도 명예. 명예롭게 피다가 지는 모양이다. 옛날 장원급제자화관에 꽂는 어사화(御史花)였다.

꽃말과 다르게 능소화에는 애틋한 그리움이 녹아내린 전설이 있다. 능소화의 궁녀가 임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변해 꽃으로 변했다는 애틋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소화라는 궁녀가 임금과 하룻밤을 지내고 후궁이 되었지만 그 뒤로 임금이 어떤 이유인지 한 번도 그를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 임금님을 기다리다 지쳐 소화는 죽었다. 눈을 감기 전에 나를 담장 가에 묻어라. 혹 내일이라도 님이 오시면 기다리고 있겠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단다. 유언에 따라 구중궁궐 담장 밑에 묻었다. 궁녀 소화가 죽은 여름이면 아름답게 꽃을 피워 담장 밖으로 넘어간다하여 능소화라는 이름이 붙였단다.

(<우리나라 나무이야기> 중에서)

 

경남 진주 명석면 용호정원.

 

능소화 핀 골목을 지나자 7기의 송덕비가 나온다. 부를 과시의 수단이 아니라 나눔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박헌경(朴憲慶) 선생(1872~1937)을 기리는 송덕비다. 선생은 이재민들에게 집과 땅을 나눠 주고 소작인의 부채를 탕감해주기도 했다. 감동 받은 사람들은 감사의 표시로 공덕비를 세웠다. 이런 공덕비가 하나둘 모인 게 7기다. 그리고 진주 이현동에 있던 1기까지 포함하면 8기다. 송덕비를 지나면 용호정원이다.

 

용호정원은 1922년 당시 거듭되는 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생이 재산을 털어 중국 쓰촨성[四川城] 동쪽에 있는 무산(巫山) 수봉(秀奉)을 본떠 만든 공원이다. 600여 평 규모의 원형 연못인 용호지(龍湖池)가 있고 연못 주위에는 고분을 연상하게 작은 산봉우리 12개가 있는데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으로 만든 12개의 가산(假山)이다. 수련이 심어진 연못 속에는 팔각정자인 용호정(龍湖亭)이 세워져 있다. 용호정은 연못 안에 초석을 놓은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은 구조를 하고 있어 물 속에서 솟아난 듯 착각을 가지게 한다. 정자의 8개 추녀 끝에는 태극문양이 있는데 서슬퍼린 일제 치하에서 태극문양기와를 사용하는 것은 보통의 담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었다. 선생은 이 일로 며칠간 옥살이도 당했다.

 

용호정원은 소유주 개인을 위한 정원이 아니라 마을공동의 정원이다. 논과 정원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담장도 없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다. 정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개방적이다. 연못에는 정자까지 줄로 연결된 작은 배 하나가 묶여 있다. 줄을 당기면 배를 타고 용호정에 오를 수 있다.

 

 

용호정원 한 켠에는 노리랑가시비가 세워져 있다.

 

용호정원 한 켠에는 노리랑가시비가 세워져 있다. 2008년 진주문화원에서 박헌경 선생의 아드님인 청랑 박봉종 선생의 향토문화창달과 보전에 힘쓴 공을 기려 공이 노래했던 노루묵 언저리에 시비를 세웠다.

 

노리랑가는 민족의 고난과 함께 했던 대표적인 노래, 아리랑. 사랑도, 삶도, 슬픔도 함께 했던 노래였던 아리랑 곡조에 겨레의 애환을 담은 노래 시다. 더구나 노리랑가는 일제 강점기 나라 없는 설움과 고향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노리랑가(()

청랑 박봉종

 

노리랑 노리랑/ 노라리오

노리목 고개로 넘어오소

 

용산사에서/종소리나고/정화수천변에 너 기다린다

 

용호정지에/원앙새 쌍쌍/ 실버들 휘날려 님 생각이오

 

같은 마음 열두 봉우리(如意十二峰)/바위틈 기슭/ 꽃들만 피어서/ 가슴만 섧소

 

노리랑/노리랑/노라리오

노리목 고개로 넘어오소

 

 

 

일상의 번잡도 짙푸른 산림이 주는 평안함에 묻혀 시간조차 증발했다.

 

3번 국도를 지나는 차들의 시끄러운 소리마저도 순간 음소거로 변한다. 오로지 녹색의 목소리만 나에게 들린다. 일상의 번잡도 짙푸른 산림이 주는 평안함에 묻혀 시간조차 증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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