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강주연못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4. 7.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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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강주연못 전경.

 

경남 진주에서 사천으로 넘어가는 가기 전 왼쪽으로 고즈넉한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빠른 걸음이면 15분이면 연못을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에 위치한 강주연못의 둘레는 약 600m, 면적은 약 18,000의 자연생태공원이다. 나 역시 어릴 적 이곳으로 소풍을 왔고, 아내와 데이트 장소로 거닐었다. 결혼해 가족과 함께 즐거운 나들이를 한 곳이다. 인근 공군부대의 비행기 훈련으로 공군훈련기의 날카로운 비행기 엔진 소리도 감미롭게 잠재우는 소담한 풍경이 있다.

 

진주는 고려 때까지 강주(康州)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리적인 중요성으로 군대가 주둔했는데 지금의 강주연못이 바로 강주 진영(陣營)이 있던 자리다. 천 년이 지난 지금은 옛 군대의 흔적은 없다. 무더운 여름이면 마음이 고운 꽃이 피는 연들이 연못에 가득하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연못을 거닐었다. 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거닐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거닐며 옛 추억도 떠올려보려는 심산이었는지 모른다.

 

장마가 시작되는 유월 어느 날, 이곳을 찾았다. 아직 연꽃이 꽃을 피우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하얀 눈꽃이 내리는 500년이 넘는 이팝나무도 진 무렵이었다. 강주연못이 정확하게 언제 축조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못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5~600년의 이팝나무 4그루가 있고 팽나무, 소나무, 용버들 등으로 숲이 만들어져 있다. 2005년 공원을 만들면서 342만여 본이 수목과 야생화가 심어져 녹지공간이 넉넉하다.

 

초록의 아늑한 풍경이 일상에 지친 나를 이곳으로 끌어당겼는지 모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날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연못을 거닐었다. 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거닐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거닐며 옛 추억도 떠올려보려는 심산이었는지 모른다.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면 내가 미쳐 몰랐던 아름다운 풀꽃들을 만난다.

 

하늘은 장마철이 아니랄까 잔뜩 찌푸려 있다. 마치 일상에 지친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여느 숲길을 거니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이곳에는 걸음걸음 멈추게 하는 게 있다. KBS 사극드라마 <정도전>에서 박영규가 열연한 이인임의 정치인의 허리와 무릎은 유연할수록 좋은 법이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비단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허리와 무릎을 숙이면 더구나 이런 숲길을 산책할 때면 모르는 이름 모르는 풀들을 만난다. 찬찬히 허리 숙여 내려다보고 때로는 무릎을 꿇어 바라보면 참 감미로운 당신이다.

 

 

 

연못에는 나무 테크가 동서에 각각 있어 연못을 구경하기 그만이다.

 

한참을 허리 숙이고 무릎 꿇어 그리운 이들을 구경하는데 저만치에서 웃는 소리가 반갑게 들린다. 나무로 만든 관찰테크에서 하얀 교복을 입은 여학생 세 명이 뭐가 즐거운지 연신 웃으면서 연못을 바라본다. 나도 걸음을 옮겼다. 연못에는 연뿐 아니라 마름·풀달개비·생아가래 등의 수생식물이 자란다. 소금쟁이가 아주 넉넉한 품으로 배영을 하고 있다. 시원한 모습이 벌써 다가올 여름휴가를 더욱 그립게 한다.

 

 

 

연못 둘레길에는 곳곳에 긴의자들이 놓여 있어 가져간 먹거리를 끄집어 내면 바로 야외 카페가 된다.

 

긴 나무 의자에 앉았다. 준비해간 캔커피를 끄집어 뚜껑을 딴다. “따악~” 하는 소리가 고요한 연못에 파장을 일렁이며 지나간다. 청설모도 놀랐는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제 갈 길을 간다.

강주연못 곳곳에는 정자 강주정을 비롯해 평상과 긴 의자들이 있다. 일상의 마침표를 찍고 삶의 여유로운 쉼표를 찍는 넉넉함이 좋다. 숲 속에서 야외 운동기구로 열심히 땀을 훔치는 내일을 준비하는 청춘들이 있다. 2의 심장이라는 발을 지압하는 할머니 두 분도 구부렁 허리지만 열심히 거닌다.

 

 

 

보호수로 지정된 5~600년의 이팝나무 4그루가 있고 팽나무, 소나무, 용버들 등으로 숲이 만들어져 있다. 2005년 공원을 만들면서 342만여 본이 수목과 야생화가 심어져 녹지공간이 넉넉하다.

 

이팝나무 사이 강주정정자에 앉아 연못 둘레길 나무와 풀들이 이룬 초록의 물결을 보았다. 풍경에 반할 수밖에 없다. 강주정 뒤로는 하얀 이팝나무처럼 하얀 빙수를 만드는 카페가 있다. 가게 이름도 <이팝나무>. 눈처럼 하얀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의 지난 흔적을 떠오려 눈꽃 빙수를 사먹었다. 사각사각 거리던 얼음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는 시원하다 못해 얼얼하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강주연못. 나무와 풀이 주는 평안한 덕분에 풍경에 반하고 여운에 취한 하루다.

 

세 시간 정도 연못을 걸으니 투박하지만 넉넉한 산림의 품에 안겨 일상의 묵은 때를 깨끗이 씻어낸 느낌이다.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강주연못. 나무와 풀이 주는 평안한 덕분에 풍경에 반하고 여운에 취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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