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함양읍내에서 찾은 500년 전의 피비린내 나는 사화의 흔적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3. 3. 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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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벼슬아치나 선비들이 반대 세력에 몰려서 죽거나 귀양을 간 정치 파동이 사화(士禍). 조선시대에는 모두 네 번의 사화가 일어났다. 역사 기록인 사초(史草)가 발단이 된 첫 번째인 무오사화 원인이 함양 도심 한 가운데 있다. 함양읍내 한복판에는 군청을 비롯 경찰서,우체국,등기소와 같은 관광서와 함양초등학교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본래 이 일대는 읍성의 중심지로써 수많은 객사와 부속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일제강점기 때 모두 없어져 버렸다. 지금 남아 있는 군청 바로 앞에 있는 학사루’(學士樓)뿐이다. 이 학사루에서 500여 년 전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92호인 함양 학사루는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다. 고운 최치운 선생이 함양 태수로 있을 때 이곳에 올라 시를 자주 지었기에 학사루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관청의 객사(客舍) 자리인 현 함양초등학교 안에 있었던 것을 1979년 현재 위치로 옮겼다. 이전 당시에 발견된 기록에 따르며 조선이 임진왜란이라 낮춰 부른 동북아국제전쟁 때 불탄 것을 1692(숙종 18)에 중수했다고 한다.

    

 

 

 

원래 학사루는 객사의 부속 건물로 함양 읍성(邑城)의 중심에 위치했다. 일제 강점기 학사루를 제외한 객사를 비롯한 다른 중요 건물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 누각은 정면 5, 측면 2칸의 비교적 큰 2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그런데 화려한 건물은 아니지만, 누의 아래와 위, 지붕의 비례가 대단히 조화롭고 안정되어 있다. 조선 시대 관청에서 지은 누각 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건물에서 무오사화의 악몽을 잉태되었다. 김종직(1431~1492)은 평소 유자광(?~1512)이 남이 장군을 무고하여 죽인자라고 멸시했는데 함양 군수로 있을 때 학사루에 걸려 있던 유자광이 쓴 시를 철거했다. 이런 일들이 사적인 원한으로 발전, 1498(연산군 4)에 일어난 무오사화의 한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학사루 건너편에 이 누각 못지않게 유명한 나무 한 그루가 함양초등학교 교정 입구 오른편에 있다학사루 느티나무라 불리는 이 나무는 어른 7~8명이 감싸 안고도 남을 만하다. 천연기념물 407호로 지정된 나무는 조선시대 전기의 성리학자로 영남학파의 종조인 김종직이 함양현감으로 부임한 뒤에 오늘날 우리가 흔히 기념식수 하듯 심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 성종 때 노모를 모시겠다고 간청해 함양현감이 된 김종직이 심은 것으로 김종직은 재임 동안 새로이 차밭을 일구게 하는 등 백성을 돌보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함양현감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 김종직은 마흔이 넘어 얻은 다섯 살 아들을 그만 홍역으로 잃는다. 어린 자식을 가슴에 담은 그는 정 3품의 통훈대부로 승진, 함양을 떠나면서 먼저 하늘로 보낸 아들을 위해 나무를 심은 듯하다. 죽은 아들 이름은 목아(木兒)였다. 아마도 천 년은 거뜬히 살 수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정성들여 심으며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훌쩍 가버린 '나무 아이', 아들의 짧디 짧은 삶을 달랬을 것이다.

    

 

 

학사루 느티나무는 높이 22.2m, 가슴높이 둘레 7.3m, 가지 뻗음은 동서 24.5m 남북 25.1m이다. 이 나무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별한 모양새가 있다. 나무의 뿌리목 가까이를 보면 마치 두꺼운 책을 옆으로 세워서 나무를 받치고 있는 것 같은 독특한 구조가 발달해 있다. 이 독특한 구조을 판자모양의 뿌리라는 뜻의 판근(板根, buttress root)이라고 하는데 일부는 땅위로 나오고 나머지는 땅속에 들어가서 옆으로 퍼짐으로써 가로수에 버팀목을 해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고 한다.

 

 

 

100년이 넘은 함양초등학교 입구에는 이 학교 졸업생이 후배들에게 권학하며 세운 동상이 있다. 이 조형물 아래에서는 책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길 건너편에서 사온 원두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며 목울대를 넘길때면 나역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책을 읽는 아이마냥 높게 올라가 500년으로 타임머신으로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듯 하다.

 

이 글은 경상남도 인터넷신문<경남이야기>와 함께 합니다.

http://eday.gndo.kr/news2011/asp/news.asp?code=0300&key=20130311.9900109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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