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야기

예산 수덕사 여행, 천리길 진주에서 잘 왔다 싶었던 숲길과 수덕여관 이야기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2026. 5. 7. 12:41
728x90

 

 

초록 숲길이 먼저 마음을 받아 준 예산 수덕사

 

모처럼 이어진 연휴가 아니었다면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을 길입니다. 노동절날 가족여행으로 충남 예산 수덕사를 찾았습니다. 경남 진주에서 충남 예산 수덕사까지는 가까운 길이 아닙니다. 아흔 살 장모님을 모신 길이라 마음도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덕숭산 숲이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절 입구에 즐비한 상가들을 지나니 본격적으로 숲의 맑은 기운이 우리를 감쌌습니다. 초록 잎은 하늘을 낮게 덮었고,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잘게 부서졌습니다. 길은 생각보다 아늑했습니다. 그 순간 천리길 진주에서 참 잘 왔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먼 길의 피로보다 숲이 먼저 마음을 받아 주었습니다.

수덕사로 오르는 길에는 연등이 바람을 따라 흔들렸습니다. 붉고 노랗고 푸른 빛이 길 위에 번졌습니다. 장모님을 모신 휠체어는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오르막에서는 걸음이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밀어 주는 손, 옆에서 살피는 눈, 잠시 멈추는 숨이 함께 길을 만들었습니다. 여행은 빠르게 많이 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속도에 모두가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그 속도 안에서 수덕사는 더 깊게 보였습니다.

수덕사는 그저 오래된 절이 아니었습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에 자리한 사찰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수덕사를 백제 말 창건 사찰로 설명하고, 백제 승려 혜현의 법화경강경과 독송, 백제 부흥운동 때 승려 도침의 활동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다만 창건 연대와 창건 주체는 전승의 성격이 강해 확정 사실로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수덕사는 충남도청이 자리한 내포 지역의 불교 기억이 오래 머문 자리입니다. 백제 불교, 고려 건축, 조선 후기 불상 신앙, 근대 선불교의 시간이 층층이 쌓인 곳입니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니 연등 그림자가 둥글게 내려앉았습니다.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인 1308년에 지어진 국보입니다.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려의 나무와 수덕여관의 시간이 함께 남은 길

가까이서 본 대웅전의 나무는 오래 버틴 몸 같았습니다. 기둥과 처마, 공포와 벽체는 서로의 무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정면도 단정했지만, 옆으로 돌아가 본 처마 선과 측면 벽체가 더 깊었습니다. 장식으로 압도하기보다 구조로 말을 거는 건물이었습니다. 고려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은 덧붙임보다 견딤에 가까웠습니다.

법당 안에는 금빛 불상이 어둠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 석가여래삼불 좌상과 복장유물은 2003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중앙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배치한 삼세불 구도입니다.

1639, 곧 조선 인조 17년에 수연을 비롯한 7명의 비구가 참여해 조성했다고 합니다. 건물은 고려의 나무로 서 있고, 그 안의 불상은 조선 후기 신앙의 시간을 품고 있습니다. 한 법당 안에 고려와 조선이 함께 앉아 있는 셈입니다.

대웅전 뒤편에 잠시 앉았습니다. 오가는 바람이 참 달곰했습니다. 린네스덜꿩나무 꽃이 하얗게 피었고, 모란은 붉은빛을 곱게 품었습니다. 그늘에 앉으니 몸도 마음도 한결 시원했습니다.

수덕사에는 대중가요 수덕사의 여승도 따라옵니다. 이 노래는 수덕사를 대중의 기억 속에 오래 남긴 곡입니다. 다만 노래 속 여승이 특정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노래는 수덕사를 사랑과 이별, 출가와 침묵이 겹친 장소로 느끼게 합니다.

대웅전 뜨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안겼습니다. 담장에는 담쟁이가 초록으로 번졌고, 오래된 돌담 아래에는 봄꽃이 피었습니다. 장모님은 휠체어에 앉아 천천히 둘러보셨습니다.

수덕사는 근대 불교사에서도 큰 이름을 품고 있습니다. 경허와 만공으로 이어지는 덕숭산 법맥, 덕숭총림의 수행 전통, 비구니 수행사의 흔적이 이 산에 붙어 있습니다. 수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며, 1984년 덕숭총림이 되었습니다. 총림은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 등을 갖춘 종합 수행 도량입니다.

 

대웅전을 뒤로하고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갔습니다. 이번에는 일주문 못 미쳐 있는 수덕여관으로 향했습니다. 낮은 초가와 오래된 소나무가 마당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흙벽과 나무 기둥, 볏짚 지붕만으로 충분히 따뜻했습니다. 한국 근대 여성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혜석을 비롯해 김일엽, 이응노에 관한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수덕여관은 단순한 옛집이 아니었습니다. 시대와 예술과 상처가 잠시 몸을 눕힌 자리였습니다.

 

수덕여관 바로 아래에는 수덕사선미술관이 있습니다. 들어서면 고암 이응노 화백 암각화 탁본 전시가 먼저 우리를 반겼습니다. 수덕여관 바위에 새긴 암각화를 떠낸 탁본이라고 합니다. 1969년 동백림 사건 이후 옥고를 치르고 난 뒤, 이응노가 수덕여관에 머물며 암각을 제작했다고 안내되어 있었습니다. “삼라만상의 성쇠를 만들고 있네라는 문장은 돌처럼 무거웠습니다. 한 예술가가 고통을 지나 다시 세계를 새기려 한 몸짓처럼 느껴졌습니다.

 

미술관을 지나 나오는 길에도 숲은 여전히 아늑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예산 수덕사는 한 번에 다 보려고 하면 오히려 놓치는 곳입니다. 대웅전의 처마, 연등의 그림자, 수덕여관의 오래된 나무문, 숲길의 초록빛을 천천히 받아야 제맛이 납니다. 백제의 기억을 품고, 고려의 나무로 서 있으며, 조선 후기 불상 신앙과 근대 선불교의 숨결까지 이어온 덕숭산의 오래된 수행처였습니다. 진주에서 먼 길을 달려온 하루였습니다. 돌아서는 길에도 마음 한쪽에 조용히 남은 말은 그대로였습니다. 참 잘 왔습니다.

 

함께 다녀온 충남 가족여행 식사 기록도 곁들입니다. 수덕사 숲길을 걷기 전, 홍성 일미옥 불고기에서 장모님과 따뜻한 한우 불고기 점심을 나누었습니다.

 

홍성 일미옥 불고기, 장모님과 함께한 따뜻한 한우 불고기 가족 점심

https://blog.naver.com/haechansol/224273904723

 

 

수덕사

- 주소: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

- 관람료: 수덕여관, 수덕사 미술관 포함 무료

- 주차: 수덕사 입구 주차장 유료 이용

- 관람 동선: 일주문숲길대웅전수덕여관·선미술관 순서가 무난. 휠체어 동행 시 오르막 구간은 천천히 이동하는 편이 좋음.

 

#예산수덕사 #수덕사여행 #충남예산가볼만한곳 #덕숭산수덕사 #수덕사대웅전 #수덕여관 #수덕사선미술관 #나혜석 #이응노 #수덕사의여승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