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3일 저녁, 저는 진주교육지원청 쪽에 차를 세우고 진주대첩광장 호국마루로 걸어갔습니다. 대첩광장 지하주차장이 있지만, 그 시간에 제 차를 편히 들일 자리는 넉넉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행사는 오후 6시 30분에 시작했습니다. 제가 도착한 시각은 6시 10분쯤이었습니다. 낮에는 봄날처럼 따뜻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찬기운이 금세 몸을 감쌌습니다. 패딩 조끼를 입고 나왔더니 두 팔이 먼저 시렸습니다. 몸이 자꾸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미 행사장에 나와 있었습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거나 서서 조용히 시작을 기다렸습니다.
해 질 녘 호국마루에 먼저 내려앉은 빛

서녘으로 넘어가는 해가 길 위에 고운 빛을 풀어 놓았습니다. 건물과 가로수 사이로 낮게 걸린 햇빛이 인도 위에 긴 그림자를 밀어냈습니다. 잎을 틔우지 못한 나무들은 검은 선처럼 또렷했습니다. 길 가장자리의 소나무와 겨울빛이 남은 풀밭도 저녁 햇살을 가만히 받아냈습니다. 봄은 아직 다 오지 않았는데, 빛만 먼저 계절을 앞질러 온 듯했습니다.


호국마루에 들어서니 풍경이 또 달라졌습니다. 넓은 계단식 광장이 저녁 빛을 받아 안고 있었습니다. 무대 뒤 검은 현수막은 낡은 태극기 이미지를 크게 내걸고 있었습니다. 빈 연단과 단상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말과 아직 터뜨리지 않은 함성을 기다리는 듯했습니다. 햇살이 서서히 식는 동안 무대 위 푸른 조명이 먼저 바닥을 적셨습니다. 낮의 빛과 밤의 조명이 짧은 시간 서로 자리를 바꿨습니다.

오후 6시 30분, 사회자가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은 국민의례를 올렸고, 사회자는 참석자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광장에는 여러 이름이 울렸습니다. 그 무렵 진주성은 또 다른 얼굴을 내보였습니다. 촉석문에 조명이 켜지자 진주성이 더 또렷한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성벽 아래로 따뜻한 주황빛이 길게 흘렀습니다. 큰 나무들은 잎 없는 가지를 하늘에 펼쳤습니다.

호국마루 난간 유리는 시가지 불빛과 성곽의 어두운 선을 한 장면 안에 겹쳐 담았습니다. 그 사이로 김시민 장군 동상이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진주대첩의 기억과 이날의 함성이 한 화면 안에서 맞닿는 듯했습니다.

축사가 끝나자 사람들이 결의문을 읽었습니다. 이어진 순서는 제게 시낭송처럼 다가왔습니다. 무대에 선 이들이 한 줄 한 줄 또박또박 말을 읽었고, 광장은 그 목소리를 차분히 받아냈습니다. 시민들은 계단마다 자리를 채웠습니다. 손마다 작은 태극기가 들렸습니다. 사람들은 무대 한가운데로 시선을 모았습니다. 누군가는 서서 듣고, 누군가는 앉아서 듣고, 누군가는 휴대전화로 그 시간을 붙들었습니다. 말은 무대에서 울렸지만, 행사의 무게는 그 말을 받아 듣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더 또렷해졌습니다.
태극기 물결 속에 되살아난 진주의 만세

본격적인 재현극이 시작되자 호국마루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시민들이 객석과 계단을 빼곡히 메웠습니다. 무대는 푸른 조명 아래 차갑게 빛났습니다. 한 시민은 태극기를 어깨에 두른 채 계단 위에 서서 무대를 바라봤습니다. 그 뒷모습이 오래 남았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기생으로 분한 배우들이 줄을 맞춰 섰습니다.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 옅은 자줏빛과 갈빛 치마가 푸른빛 위에서 선연하게 살아났습니다. 뒤편 현수막의 낡은 태극기 이미지와 무대 바닥에 번지는 조명이 서로 겹치자, 장면은 설명보다 먼저 기억으로 다가왔습니다. 객석의 태극기 물결도 그 장면에 힘을 보탰습니다. 몇 사람만 재현극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민들도 함께 그 장면을 완성했습니다.

1919년 3월 25일 자 《매일신보》를 떠올렸습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는 “진주 기생이 앞서서 형세 자못 불온”이라는 제목 아래, 진주 기생의 한 떼가 구한국 국기를 휘두르고 노소 여자가 그 뒤를 따랐다고 적었습니다. 총독부의 눈에는 불온이었겠지만, 제 눈에는 그 문장이 오히려 진주 기생들이 만세의 앞줄에 섰다는 기록으로 읽혔습니다.

다른 자료는 진주 기생 한금화가 손가락을 깨물어 흰 명주 자락에 혈서를 썼다고 전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날 재현극을 단순한 행사로 보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마음이 양반이나 지식인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자리로 보았습니다. 걸인과 기생이 함께 만세를 불렀다는 사실은 독립의 뜻이 신분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진주는 동아시아 국제전쟁(임진왜란) 때 김시민 장군을 비롯한 민관군이 성을 지킨 도시(진주대첩)입니다. 1862년 농민항쟁이 일어난 도시이기도 합니다. 저는 1919년 진주가 장터의 사람들, 걸인들, 기생들까지 앞세워 다시 제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이 행사의 뜻을 읽었습니다. 107년 전의 만세를 오늘 다시 불러내는 일은 과거를 흉내 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진주가 어떤 도시였는지를 몸으로 기억하는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위가 더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오래 서 있었더니 콧물이 흘러내릴 듯했습니다. 오후 7시 10분쯤, 저는 재현극이 본격적으로 무르익는 시각에 주차한 곳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다시 본 진주성은 더 깊었습니다. 차들이 지나가며 도로 위에 불빛을 흘렸습니다. 주황빛 조명은 돌담을 따라 길게 흘렀습니다. 나무 그림자는 성벽 위에 검게 기대어 있었습니다. 광장의 목소리는 멀어졌지만, 성은 더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저는 추위에 먼저 돌아섰지만, 마음만은 끝까지 그 광장에 두고 왔습니다. 내년에는 더 따뜻하게 입고 그 함성 곁에 조금 더 오래 서 있고 싶습니다.
▣ 제107주년 진주 기생·걸인 독립만세운동 기념식과 재현행사
- 일시: 2026년 3월 13일 오후 6시 30분
- 장소: 경남 진주시 남강로 626 진주대첩 역사공원 호국마루
함께 읽어보면 좋은 글
진주 걸인⸱기생 독립 만세 재현 행사
https://blog.naver.com/haechansol/221494006865
#진주대첩광장 #호국마루 #진주기생걸인 #진주만세운동 #진주삼일운동 #진주성 #촉석문 #김시민장군 #진주역사여행 #경남가볼만한곳
'진주 속 진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진양호 하모의 숲, 아이들 웃음이 먼저 오는 곳 (0) | 2026.03.16 |
|---|---|
| 남강 라이딩 글이 진주시 공식 블로그에 소개됐습니다 (0) | 2026.03.15 |
| 삼일절 진주, 교육지원청 앞 평화 기림상을 기억하다 (1) | 2026.03.13 |
| 진주역 맛집 김유부밥, 가볍게 먹기 좋은 김밥과 물국수 (4) | 2026.03.12 |
| 진주 매화숲, 고양이처럼 다가온 봄 (3) | 2026.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