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그립고 그리우면 떠나자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2. 1.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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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것을 털어내고 새로운 기운을 받기 위해 해돋이 명소를 찾아 떠나기 쉬운 새해 요즘이다. 오히력 오랜 시간의 정겨움이 켜켜히 쌓여 있는 곳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면 이율배반적일까. 새해 설계와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면 아니 그립고 그리우면 떠나자. 우리 대한민국의 오랜 근간이었던 유학의 숨결을 찾아 선비의 고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면 그만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사무소. 2009년 면사무소를 새로 지으면서 선비고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한옥의 형태로 지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고 정신수도는 안동이라고 곧잘 이야기 하지만 안동에 견준 말이 좌 안동, 우 함양일정도로 많은 인재가 난 곳이 함양이다. 함양은 조선시대 세종때 태어난 성리학자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과 서원 등으로 유명하다. 일두 정여창 선생은 동국 18현, 동방오현으로 알려진 분이다. 참고로 동국 18현은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을 비롯 고려시대 정몽주 선생 등 모두 유학을 발전시킨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학자를 일컫는다. 동방오현은 조선시대의 유명한 유학자를 말한다.

선생은 배운 것을 실천하는 지행일치(知行一治)를 실현한 부모에 대한 효행은 삶의 전부였고 사림정치를 근본으로 하는 왕도정치(위민정치)를 실현한 실천유학자다.

 

 

면사무소 앞에는 연지공원이 반갑게 만든다. 공원 한켠에는 조선시대 실학자 박지원 선생이 최초로 물레방아를 설치한 고장임을 드러내듯 물레방아가 여기도 있다. 물레방아의 고장이 또한 함양이다.

 

 

면사무소 앞 연지공원을 잠시 둘러보고 실개천을 건너면 지곡초등학교가 나온다. 초교 담장에는 서당풍경을 비롯한 옛 선조들의 일상을 담은 벽화로 한껏 예스러움을 더했다. 이곳 지곡면 개평마을에는 정여창 선생의 고택을 비롯해 여러 고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정여창 선생의 고택은 실제 사람이 살지 않지만 다른 고택들은 실제 후손들이 생활하고 있다.

 

 

초교 벽화를 지나 5분도 안된 거리에 정여창 선생의 고택으로 향하는 담장이 정겹다.

 

 

사람이 거닐 수 있는 담장 골목 좌우 모두 멋스러움이 가득한데 서울에서 내려와 살고 있는 선생의 종손이 살고 있는 한옥에는 메주와 씨래기가 햇살에 샤워하고 있다. 종손의 집은 선생의 집 건너에 있다.

 

 

선생의 고택. 고택 맞은 편에는 후손이 세운 명가원 홍보관이 있다. 명가원은  푸르름은 잃지 않는 소나무처의 절개와 선비의 혼으로 빚어낸 전통명주로 종가에서 전해오는 사대부 집안의 전통명주를 재현한 솔송주를 재현한 술이다. 솔송주는 솔향이 그윽한데 마치 내가 소나무처럼 겨울에도 푸른양 맑고 싱그럽다.

 

 

10여 년전에 이곳에 찾았을 때는 종부가 살아 계셨고 그분의 생활공간이기도 해 대문을 들어서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참 조심스러웠다. 종부의 허락을 받아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사진을 촬영했는데 종부가 돌아가시고 서울에서 생활하던 종손은 이제 이 집을 방문객들에게 내어 놓고 건너에 새로 집을 지어 생활하고 있다.

일두 정여창 선생 고택은 선생이 돌아간 후 후손들에 3,000여 평의 대지에 17동(현 12동)중건된 남도지방의 대표적인 양반고택이다. 지금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 드라마 촬영지로 경남 하동 평사리가 더 알려져 있지만 1987년 KBS드라마 토지의 최참판 댁 촬영지가 이곳이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직행하면 안채로 들어가는 일각문이 있고 동북으로 비스듬히 사랑채가 눈에 들어오는다. 'ㄱ'자형 평면에 내루가 앞 쪽으로 달린 전출구조다.

 

 

안채로 향하는 일각문. 세월의 흔적들이 나무 사이사이에 때묻어 반짝그린다.

 

 

우물과 하나와 안마당이 있는 안채. 우물물을 길어 가족들 위해 밥짓고 물 마셨을 생각에 아파트에서 사는 내가 마치 새장 속의 새처럼 갑갑해져 온다.

 

 

사랑해가 보이는 담장너머로 푸른 소나무가 푸른 절개의 선비처럼 서 있고 마침 저녁노을 햇살이 곱게 내려 더욱 빛난다. 요즘 걷기 열풍과 함께 개평마을 주위로는 정여창선생의 산책로라는 이름의 길이 조성되어 마을을 둘러보기 편하다.

 

 

선생의 고택을 지나 남강의 지류인 남계천을 지나면 선생을 모신 남계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남계서원은 1552년 건립되었다. 대원군의 사원철페령에도 경남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었다. 매년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서원입구에 세워진 홍살문. 홍살문에서 서원까지 휑하다.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서원의 땅에서 살던 이들을 이주시키고 집들을 헐었기 때문이다.

 

 

홍살문을 지나면 정문격인 풍영루가 오랜 시간을 오롯이 견뎌낸 무게를 더해 반긴다. 누각에는 연꽃을 비롯한 갖가지 꽃무늬 장식과 그림을 볼 수 있다.

 

 

 

정문인 풍영루를 지나면 좌우로 연못이 있다. 선생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연꽃을 심기 위해 조성했을 듯 하다.

 

 

풍영루에서 바라본 서원의 전경이다. 좌우로 영매헌(사진 왼쪽, 서재)과 묘정비가 있고 동편에 애련현(동재) 자리잡고 있다. 선생이 좋아했던 연꽃에서 이름딴 애련헌이 있는데 애석하게 겨울이라 연꽃은 연못에도 없다. 선비들의 고결한 인품을 닮아 사랑받은 애련헌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매화나무는 애초 없어 아쉬움을 더한다.

 

 

일종의 강당인 명성당. 이곳에서 선생을 기리는 후학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니 삼가 엄숙해진다.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은 높다른 언덕에 위치해 있다. 사당 좌우로 큰 배롱나무(일명 나무 백일홍)가 심어져 있다.

"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게 아니라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는 도종환 시인의 시 <백일홍>으로 꽃지고 난뒤의 앙상함을 대신했다. '떠나난 벗을 그리워한다'는 꽃말의 백일홍처럼 선생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겨울철 뜨거운 여름을 기다리는 마음을 백일홍으로 달랜다.

 

 

사당에서 바라본 서원과 남계천. 그 너머에 선생의 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선생의 유적을 찾아 안의면으로 향하다보면 선생이 안의현감으로 재직하며 중건한 광풍루를 만난다. 

 

 

안의면은 또한 조선 실학자 박지원 선생도 현감을 지내면서 면소재지에서 자동차로 120여분 거리에 있는 용추계속에 물레방아를 처음으로 설치해 이고장을 물레방아골로 전해져 오게 했다. 용추계곡은 겨울이라 꽁꽁 언 큰 고드름 형상이지만 조용히 올 한해를 구상을 하기에는 사색의 공간으로 딱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함양은 산이 깊어 먹을 것이 많지만 안의면 시장에 자리 잡은 할매순대집의 순대국밥은 6,000원으로 참 착한 가격에 맛도 있어 그곳에 가면 종종 들른다. 안의갈비찜도 그만이고 남계서원에서 가까운 곳에 수동메기집도 메기찜과 국이 맛나 주위 여러명과 함께 찾을 때면 가곤한다.

 

맛과 함께 조용히 지나온 내 삶의 흔적과 살아갈 날을 생각하기에는 함양 지곡 정여창 선생 고택만한 곳은 드물다. 세종때 태어나 연산군때 부관참시를 당한 선생의 이름은 사극 등에서 곧잘 나오지만 배운 것을 아는 것에만 머물지 말고 실천하라는 말씀은 텔레비전을 박차고 나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전하는 바가 크다.

 

이곳을 찾기는 참 쉽다. 왜냐면 대전-통영고속도로 지곡나들목에서 나오면 금방이다. 경남 진주- 거창구간의 국도 3호선에서도 쉽게 만난다. 서울 동부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자주 있다. 다만 기차는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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