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내 삶의 엔돌핀, 활력소...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1. 9.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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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3일은 가뿐한 기분이었다.

당장 크게 불렀던 배가 작아지고 몇시간의 진통 속에서 해방된 느낌이지만 둘째날 퇴원후부터 밤새도록 아기 울음소리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가슴부터 시작해서 배, 회음절개부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훗배앓이라해서 자궁이 수축되면서 오는 진통또한 견디기 힘들정도였다.

새벽3시정도 되어서 대변을 보았다. 무거운 몸으로 아기를 안고 엉기적 거리며 한시간을 달래어도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직은 미숙한 엄마,아빠를 알아보나 보다. 아기가 젖을 빨지 않아 손으로 젖을 짜서 먹였지만 이내 늘어난 인대와 관절은 용납을 하지 않았다. 손등과 손목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손붕대로 팔목과 손목을 감싸고 묶고 5일정도 젖을 짜서 먹이고 인공수유(분유)만 먹이기도 했다...

 

 

이렇게 적은 일기는 지금 초등학교 5학년과 4학년 그리고 1학년에 재학중인 아들만 셋인 우리 가족 육아일기다. 그중에서도 첫째 큰애가 태어나고 난뒤에 아내가 적은 일기다.

아직 큰애가 세상에 나오기4개월 전인 육아일기 첫 장은 이렇게 적혀 있다.

 

나의 사랑하는 아기에게

먼저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고 싶구나. 처음 엄마가 되는 일이 무척이나 서툴고... 하지만 엄마는 열심히 인내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아기가 5개월을 훨씬 넘어선 날이구나. 아기에게 편지를 늦게 쓰게 되어 미안하구나.

아빠는 사랑해달라 엄마한테 자주 응석을 부린단다.

10월 26일쯤에 우리아기가 첫 움직임을 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엄마는 아빠에게 얘기를 들려줬단다.

아빠는 귀를 열심히 기울이고 들었지만 우리 아기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단다. 단아한 단풍빛깔도 내년이면 볼 수 있겠구나.

사랑하는 우리아가 튼튼하게 자라거라.

내일은 아빠에게 이솝우화를 꼭 들려달라고 해야겠다...

이 육아일기장에는 비단 아내의 글만 있지는 않다. 아빠인 나의 글도 있었다. 또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빙자해서 아내에게, 또는 남편에게 투정(?)과 바람을 적기도 했다.

 

 

때로는 그날의 벅찬 감동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렇게 육아일기장은 아이와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비단 글로만 적힌 육아일기는 감동을 담아내기에 부족했다. 임신한 아내의 부른 배를 찍기도 하고 분만실에 들어가 분만과정을 촬영하기도 했다. 이 사진 덕분에 두고두고 아내에게 핀잔을 받았다. 카메라를 잡은 손으로 분만 중인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다면 산통이 덜했을거라며... 다음에는 내 머리채를 잡아 뽑아버릴거라고 위협하기도...

 

 

아이들의 성장과정이 담긴 사진에 간단한 메모를 통해 우리 가족사의 중요한 일을 기록해나갔다. 사진촬영을 좋아한 까닭에 육아사진앨범은 거의 내 몫이었다.

이때 비로써 학교다닐때 사진을 배우고 동아리활동을 한게 엄청이나 값진 보람으로 남았다.

 

물론 앨범에는 기쁘고 즐거운 일만 담겨 있지 않다. 병원에 입원해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사진도 있다.

 

동생의 배위에 올라고 손가락을 동생입에 집어 넣은 큰애의 장난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 나는 너무 즐겁고 신났다. 가끔 짜증나거나 아이들에게 버럭하면서도 이때의 사진을 보면서 씨익 웃는다. 때로는 아이들이 내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진을 들이밀며 아빠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셋이지만 육아앨범은 큰애가 상대적으로 제일많다. 접착식 앨범으로 3권, 둘째가 2권, 막내는 한권...

 

세상에 내게 아빠라는 값진 자격을 부여한 큰 애지만 초보아빠와 초보엄마를 만나 한없이 고생도 무지 했다. 연년생인 둘째는 첫째의 경험으로 좀더 유연하게 잘 대응했다고 싶지만 헤매기는 매한가지다.

 

둘째와 3년 터울인 막내는 그나마 숨을 돌리고 여유를 뿌렸다. 덕분에 긴장이 떨어져 사진도 적다. 그래서 막내에게 미안하다.

 

 

지구에는 55억의 지구인들이 살고 있다. 그중의 절반인 남과 여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 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부모가 쉽게 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된다는 것.

힘들고 어렵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즐거웠던 총각때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또한 결혼하고도 아직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둘이서 맘껏 사랑도 나눌 그때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빠로 승진시켜준 아이들은 분명 보람을 주고 기쁨을 준다.

물론 자식이 내게 보람을 주고 기쁨을 주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지만 함께 성장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속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을 내게 안겨준다.

 

책장에 꽂혀 있는 육아일기와 앨범은 내게 삶의 엔돌핀을 주는 활력소다. 우리 살아있는 가족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고 본다...

"밤 새우지 말란말이야~"라고 철지난 개그가 귓등을 스쳐울어도 나는 오늘도 밤 새워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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