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진주 가볼만한 곳 - 진주성, 진주지구 전승비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0. 7. 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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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 역사가 이어져 오는 진주성, 진주지구전승비

 

진주성에서 바라본 진주 남강

 

 

시간은 물과 같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그날의 기억도 사라지게 합니다. 그날의 기억이 사라지는 만큼 감사한 마음과 다짐도 잊혀갑니다. 역사 흉터를 보면 그날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경남 진주시 도심 속에 자리한 진주성은 우리에게 그날을 떠올리게 하는 역사 흉터와 같습니다.

 

진주성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진주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공북문으로 들어가면 먼저 충무공(忠武公) 김시민(金時敏, 1554~1592) 동상이 먼저 우리를 반깁니다. 공북문에서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촉석광장이 나옵니다. 광장 서쪽에 진주성 임진 대첩 계사순의단(晋州城壬辰大捷癸巳殉義壇)입니다. 제단 아래에는 임진왜란 진주성 1, 2차 전투 모습과 논개의 순국 장면이 생생하게 돋을 새겨져 있습니다

 

의기 논개가 순국한 진주 남강 의암바위

 

 

제단을 내려와 남으로 서면 강낭콩보다 더 푸른 남강이 흐르고 남강을 시원하게 바라보는 촉석루가 있습니다. 촉석루에서 바라보는 파노라마 풍경은 시원해 오가는 이들에게 청량감을 한 아름 안겨줍니다. 촉석루 바로 옆에는 의기사가 있습니다. 의기 논개기를 기리는 사당입니다. 촉석루에서 남강으로 가파른 절벽을 내려가면 논개가 순국한 의암 바위가 있습니다.

 

진주성 내 창렬사는 임진왜란 진주성 1, 2차 전투에 순절한 이들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다.  

 

서포루에서 서장대로 향하는 사이에 호국사가 나옵니다. 호국사 옆으로 야트막한 언덕에 창렬사가 있습니다. 서쪽을 바라보는 창렬사는 진주성을 찾는 이들이 애써 찾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창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충무공 김시민을 비롯해 창의사 김천일·충청병사 황진·경상우병사 최경회 등 39명의 신위를 모신 사당입니다.

 

진주성 내 3.1 독립운동 기념비(앞쪽)와 6.25전쟁 진주지구전승비  

 

호국사에서 서장대를 지나 성벽을 따라 촉석루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매점이 나옵니다. 매점 바로 못미처에 3.1 독립운동 기념비가 나옵니다. 바로 뒤에 6.25전쟁 진주지구전승비가 있습니다.

 

진주성 내  6.25 전쟁 진주지구전승비

 

 

전승비는 6·25전쟁 당시 미 제25사단의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육군 제1206건설공병단이 19681110일 이 비를 세웠습니다.

 

진주성 내 6.25전쟁 진주지구전승비에 새겨진 전투 모습.  

 

전쟁이 일어나고 북한군이 남진을 계속하고 있을 1950729일 미 제25사단 킨 기동부대는 진주지구에 쳐들어온 북한군 제6사단과 제9사단과 전투를 벌인 끝에 이를 성공적으로 격퇴했습니다.

 

진주성 내 6.25전쟁 진주지구전승비에 새겨진 전투 모습. 당시 열세 번이나 적군과 아군이 부딪힌 치열한 전투였다.  

 

미군 제25사단은 병력 2, 400여 명과 전차 101대로 킨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여 북한군 제6, 9사단과 장성점 서북쪽 무명고지를 놓고 여러 차례의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이 전투가 피의 협곡’, ‘포병의 무덤이라 불릴 만큼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내면서도 현 전선을 고수하게 됨으로써 유엔군 총반격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진주성 내  6.25 전쟁 진주지구전승비에 새겨진 비문

 

전승비 비문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습니다.

“남강은 논개의 옛 사적으로 더불어 빛나고, 진양은 이제 자유수호의 신(神)의 꽃다운 전적으로 새롭도다. 호남 일대를 유린(침해하여 짓밟음)한 괴뢰군 제6 및 9사단은 단기 4283년 7월 29일 진주지구에 진출하여 왔으므로 미(미국) 제25사단의 기관으로 편성된 ‘칸’ 기동부대도 진주 서방(西方)에서 이를 맞아 연일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특히 서부능선(구릉진 산줄기)을 물리치고 전개된 피아(적군과 아군)의 쟁탈전은 열세 번을 거듭하도록 가열하였으며, 대구 침공에 실패한 적은 마산을 점령하여 서쪽으로부터 부산에 진출하려는 새 기도 밑에 8월 31일 밤 전면적인 대공세를 취하여왔다. 초토(剿討: 적을 죽여 무찌름) 거듭하기 8일간을 계속하여 현 전선을 고수한 결과 총반격의 계기를 조성하고 국련(國聯: 국군과 유엔연합군)은 승리의 원인을 이루어왔다. 이 영웅적인 무훈을 높이 찬양하고자 이 돌을 세워 영원히 후세에 전하노라.”

 

진주성 내 6.25전쟁 진주지구전승비.  

 

무려 열세 번이나 거듭할 정도 격렬했던 전투였습니다. 이역만리 머나먼 나라에서 피를 흘린 고귀한 영웅이 있었음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비석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뒤쪽에서 본 진주성 내 6.25전쟁 진주지구전승비.  

 

진주성은 임진왜란 때 승전고도 울렸고 덩달아 6만 민관군이 항전하다 몰살당했습니다. 의기 논개가 순국으로 의()를 드높인 곳입니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3.1독립만세의 역사가 깃들었고 6.25 전쟁 때는 자유 대한을 위해 피를 쏟았습니다.

 

진주성에서 바라본 남강. 호국보훈의 역사가 면면이 이어져 오는 진주성은 임진왜란 치열했던 전투를 비롯해 6.25전쟁 때 이역만리에서 피 흘린 고귀한 넋을 기리고 기억하는 장소다.  

 

지리산에서 흘러 내려온 남강이 진주성을 감싸 안고 흐르듯 낙동강과 하나 되어 바다로 흘러가듯 호국보훈의 역사는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진주성은 우리의 역사 흉터입니다. 호국 성지에서 그날의 다짐을 다시금 다져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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