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거제는 제주보다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바다를 벗 삼아 느릿느릿 함께하는 풍경은 바람과 구름이 함께한다. 구석구석 사람 이야기가 숨어 있다. 거제는 사람들을 품었고 우리 역사를 온전히 담은 숨결에 바다는 더없이 넓고 깊다. 어머니 품처럼 넓고 깊은 품에 안기고 싶어 거제로 어머니와 함께 10월 25일 길을 나섰다.
어머니 품처럼 넓고 깊은 품에 안기고 싶어 어머니와 함께 10월 25일 경남 거제를 찾았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덕분에 경남 거제는 훨씬 가까워졌다. 아침 7시에 경남 진주에서 출발했는데도 아침 8시가 못돼 통영을 지나 견내량에 이르렀다. 한산대첩의 출발점인 견내량을 건너는 거제대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돌았다.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길가에서 먼저 반긴다. 구름은 한가로이 푸른 하늘을 붓질하고 있다. 둔덕면 사무소 소재지 못 미쳐 코스모스가 무리 지어 핀 곳에 잠시 차를 세웠다. 코스모스밭 뒤편 산으로는 충혼탑과 6·25와 월남참전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꽃다운 나이에 순국한 둔덕면 출신 젊은이들의 넋을 기리는 비문과 헌시, 송가가 새겨져 있다. 잠시 고개 숙여 넋을 기리고 햇살 가득한 남쪽을 보았다. 훅하고 그냥 가버릴 가을을 붙잡는 양 푸른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울긋불긋 코스모스를 에워싸고 있다.
거제시 둔덕면 사무소 소재지 못 미쳐에 훅하고 그냥 가버릴 가을을 붙잡는 양 푸른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울긋불긋 코스모스를 에워싸고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 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행복(유치환의 시 중에서)>처럼 함께 오지 못한 아내에게 편지한 편을 보내고 싶었다. 풍경을 사진에 담아 카톡으로 대신 보냈다.
언제 가도 나를 위로해주는 내 고향 같은 거제
코스모스를 떠나 2분도 되지 않아 다시 차를 세웠다. <청마고향시비동산>이 걸음을 붙잡았다. 이곳이 청마 유치환 선생의 고향임을 드러낸다. ‘~아아 나도 나이 불혹에 가까웠거늘/ 슬플 줄도 모르는 이 골짜기 부조의 하늘로 돌아와/ 일출이경(日出而耕)하고 어질게 살다 죽으리’라는 <거제도 둔덕골> 시가 새겨져 있다.
고향에 돌아와 해 뜨면 나가서 밭을 갈며 자연과 역사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고 싶었던 유치환의 시를 새긴 시비 뒤로 고려 무신 정권에 쫓겨 거제로 온 패왕이 살다가 폐왕성(廢王城)을 품은 우두봉이 멀리서 에워싸고 있다.
유치환 시인의 고향 거제 둔덕면에 있는 시비 동산
시비 동산을 지나자 해안가 갯벌에서 조개 캐는 아낙과 밭에서 작물을 심는 아낙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바닷가를 따라 굽이굽이 도는 길은 풍경과 함께 일렁인다. 얼마쯤 올라갔을까. 온통 푸른 빛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빨간 기와지붕들이 잇달아 있는 언덕에 차를 세웠다. 풍경에 숨 고르고 눈을 깨끗이 씻었다. 발아래는 기름나물이 5장의 흰 꽃잎으로 작은 꽃을 뭉쳐서 우산처럼 펼쳐 웃는다.
온통 푸른 빛인 하늘과 바다의 풍경에 숨 고르고 눈을 깨끗이 씻었다.
언덕을 넘어가자 해안 길을 벗어나 왼쪽 외간마을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외간초등학교 옆에 있는 마을회관과 경로당에는 공깃돌 모양의 큰 바위 아래에 <장군돌 유래>가 적혀 있다. 약 170여 년 전에 효령대군의 후손인 이학규 장군이 가지고 놀던 돌이라고 한다. 건장한 남자 혼자 들기도 버거울 정도로 큰 바위가 가지고 놀던 돌이라니 놀랍기도 하고 거름 운반용으로 장군 받침돌로 쓰였다는 쓰임새도 재미나다.
거제 <외간리 동백나무>는 동서로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일명 ‘부부 나무’라고도 불린다.
장군 돌을 뒤로 하고 좀 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두 그루의 나무가 아름드리 서 있다. <외간리 동백나무>다. 높이 7m가량의 동백나무는 동서로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일명 ‘부부 나무’라고도 불린다. 혼례 상에 동백나무를 올려 부부가 평생 함께할 것을 약속하는 징표로 삼았다는 동백나무는 효령대군의 9대손인 이두징이 이곳에 정착한 기념으로 심었다고 전해지는 300여 년이 넘는다. 3월 말이면 붉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다고 하는데 가히 미루어 짐작이 간다. 통째로 꽃송이 채로 떨어진 동백꽃의 불은 물결을 보러 다시 오자 다짐하며 휴대폰 달력에 동그라미 친다. 주위는 깔끔하게 잘 정리돼 있고 긴 의자들이 쉬어가도록 여러 개 놓여 있다.
신선이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해 떠날 줄 몰랐다고 해서 붙여진 노자산에서 바라본 바다.(왼쪽부터 장사도, 비진도, 죽도, 용초도)
가을 햇살에 숨 고르며 해금강으로 가기 위해 지름길 지방도 1018번 도로를 따라 노자산을 넘었다. 노자산은 중국의 성인인 노자의 이름을 딴 산인데 신선이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해 떠날 줄 몰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565m의 산을 넘으면서 나무수국들이 줄지어 함께 달리는 풍경 사이로 오른편으로 바다가 더불어 넘는다.
거제 쌍근에서 시작해 저구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무지개길
쌍근에서 시작해 저구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무지개길이 설핏설핏 들어온다.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세웠다. 멀리 장사도와 비진도, 죽도, 용초도가 보인다. 푸른 빛의 하늘은 구름에 뒤덮여 간간이 비를 뿌리고 하늘을 담은 바다도 푸른빛에서 회색빛으로 색을 달리했다. 하지만 두 눈에 파노라마처럼 담기는 풍광은 색으로도 감출 수 없었다. 느릿느릿, 두리번두리번, 그리고 깊은 들숨으로 저 바다와 풍경은 나를 물 들인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무지개길을 걷고 싶어 다시금 휴대폰 달력에 메모를 남긴다.
세상 어디에도 거제 바다 같은 풍경은 없다
거제 <바람이 부는 언덕>
풍경에 취해 길을 가다 <바람이 부는 언덕>으로 더 유명한 도장포에 이르렀다. 이름처럼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드문드문 흩뿌리는 바람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자 하는 열정은 막지 못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벼랑 사이사이로 띠들이 바람 부는 대로 몸을 부드럽게 따라 움직이며 춤추고 구절초들이 덩달아 바람에 분홍빛 그림을 그린다. 털머위들도 이에 질세라 노랗게 회색빛 하늘과 바다에 색을 더한다. 산책로 발아래는 노란 괭이밥이 걸음을 조심조심 옮기게 한다.
어지간한 인내가 아니면 이 아름다운 경치를 자신이 가져온 카메라와 휴대폰으로 찍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다. 언덕 한쪽에 심어진 동백나무는 마을로 이어진 둘레길을 만들고 터널을 이룬다. 거제는 왜 이리 걷고 싶은 길이 많은지 날 좋은 날 걷고자 메모하고 언덕 긴 의자에 어머니와 앉아 외도를 바라보았다.
거제 신선대
외도 다녀온 어머니는 ‘아름다운 꽃동산, 꽃 대궐’이었다고 그때를 떠올린다. 물살을 가르며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어선 하나 지나간다. 풍경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돌아 도장포 입구에 있던 신선대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은 잘 가꿔져 허리 굽혀 걷는 어머니도 걷기 힘들지 않다고 한다. <바람의 언덕>에 가려져 덜 알려진 덕분에 한적하니 거닐기 좋고 어머니와 도란도란 바람결에 이야기 나누기 좋았다.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에 뿌리박고 하늘 옹골차게 서 있다. “세찬 바람에도 참 용케 산다.” 여든을 앞둔 어머니는 소나무가 대견한 모양이다.
거제 신선대 바위에 옹골차게 서 있는 소나무.
눈길 머물고 발길 끄는 풍경
빗방물이 더 굵어지고 바람이 더 거세졌다. 신선대를 나와 장승포로 향했다. 동백숲 팔색조 도래지를 지나자 흑진주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학동몽돌해수욕장이 반긴다. 몽돌의 배웅을 받자 곧 망치해수욕장이 나왔다. 어머니는 웃었다. ‘망치’라는 이름이 우스운 모양이다. 그러나 망치마을은 못 박는 쇠망치가 아니라 ‘바라보는 고개’라는 뜻을 품고 있다는 마을 이름의 유래를 들려드렸다. 이곳에 정착한 김경원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양지마을 뒷산 북병산에 올라 아버지를 생각하고 자신의 호 또한 망치(望畤)라고 했다고 한다. 마을의 유래를 알고 난 뒤 어머니는 잠시 말을 잊었다. 나처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아버지가 보고 싶었을까.
거제 구조라 해수욕장
지나는 해안 길마다 해수욕장이다. 구조라, 농소몽돌, 덕원, 덕포, 명사, 물안, 여차몽돌, 와현, 학동몽돌, 함목, 함포, 흥남으로 이어지는 섬을 둘러싼 해수욕장은 경남에서 가장 많은 해수욕장을 가진 곳으로 만들었다. 두 눈에 담기에 넘치는 경치들이 멈추게 한다. 구조라 해수욕장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구경하는 어머니 위로 까마귀 한 마리 날아간다. 바닷가에서 곧잘 만나는 새가 갈매기와 까마귀다. 하늘을 마치 수영하는 듯 가르며 나르는 까마귀에 시선을 뺏겨 한참 들여다 보았다. 한쌍의 까마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변을 유유자적 난다.
거제 조선해양문화관
장승포 못 미쳐 <거제조선해양문화관>에서 차는 더 나가지 못했다. 나 역시 몇 번을 와보곤 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구경했던 추억만 나누고 점심을 먹기 위해 장승포로 향했다.
수협 옆에 있는 3대 째운영되는 ‘할매함흥냉면’을 찾았다. 6/25 전쟁 중 흥남철수 때 이곳으로 내려와 장사했다는 애절함이 냉면에 묻어 있다는 이곳을 찾았지만, 문은 굳게 닫혔다. 이곳은 대체로 10월부터 3월 초까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 말을 허투루 듣은 내 탓이다. 아쉽게도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가 싸온 주전부리로 허기를 면하고 옥포대첩기념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 왼편에 이순신 장군 조형물들이 당당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줄지어 지키고 있었다. 빗방울이 굵게 내리는 사이로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심장인 두 업체 중 하나인 대우조선소가 보였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심장인 거제 옥포만 대우해양조선소
조선산업의 심장이 뛰면, 대한민국도 뛴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처음 승전한 옥포해전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원 내 기념관에 들른 뒤 사당으로 향했다. 홍살문을 지나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털머위가 노랗게 피웠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 옆으로 판옥선과 거북선 모형이 함께한다. 내삼문을 지나자 효충사가 나온다. 문 옆에는 모과나무가 향기를 품은 채 바닥에 떨어져 있고 뜰에는 구골나무가 심겨 있다. 장군 영정에서 잠시 넋을 기리고 내삼문에서 옥포를 바라보았다. 1592년 5월 7일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경상우수사 원균과 힘을 모아 대우조선이 위치한 옥포만에서 일본 군선 50여 척 중 26척을 격침한 그 날을 되돌아본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처음 승전한 옥포해전을 기리는 옥포대첩공원에 있는 기념탑.
사당을 나와 기념탑 앞 옥포루에 올라 다시금 경치를 둘러본 뒤 20분 이내 거리에 있는 군사독재와 맞서 싸운 ‘김영삼대통령 기록 전시관’으로 향했다. 중학생부터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을 하숙방에 적어놓고 꿈을 키워온 그이의 정치이력을 돌아보았다. 기념관 오른편에 있는 청와대 기자회견장 세트장에서 대통령인 양 기념사진을 먼저 찍었다. 기념전시실을 둘러보던 어머니는 중앙청으로 쓰이기도 했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철거 과정 모형 앞에서 멈췄다. “왜 이리 좋은 건물을 부쉈을꼬. 그냥 두면 두고두고 볼건데” 어머니는 아픈 과거도 그대로 남겨 후세에 경각심으로 남겨두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중학생부터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을 하숙방에 적어놓고 꿈을 키워온 그이의 정치이력을 돌아보는 <김영삼 대통령 기록관> 전시실.
군내 조직인 하나회 제거와 금융실명제 시행, 전두환·노태우 구속 등과 같은 개혁을 엿볼 수 있었다. 다만 아들 김현철의 국정개입과 외환위기 같은 잘못한 점은 개혁과 민주투사 이력에 숨어있어 아쉽다. 기념관 2층을 지나 연결된 길을 따라 생가로 갔다. 어머니는 마치 집을 사기 위해 찾아온 사람처럼 구석구석 생가를 둘러본다. “어장집 아들이라 집 좋네~” 라면서도 집 앞 감나무에 걸음을 멈췄다. “감나무는 더 좋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가슴으로 배우는 곳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지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김영삼기념관을 나와 아름답지만 외롭고 아팠던 섬, 거제의 속살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향했다. 6·25 한국전쟁 때 이곳에 포로수용소가 들어선 이유는 섬이었기 때문이다. 인민군 15만 명, 중공군 2만 명 등 포로 17만 명을 수용했다. 표를 끊고 탱크전시관을 통해 공원으로 들어갔다.
이승만, 김일성, 트루먼, 스탈린 등 전쟁 속 주요 지도자들과 참전국 깃발을 지나자 포로수용소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바라보이는 전시실이 나온다. 전시실을 나오자 소국이 해맑게 웃지만 이내 포성이 울린다. 3·8선을 넘어 침략하는 북한군 전차에서 뿜어내는 포성이다. 끊어진 대동강 철교를 타고서라도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는 피란민 조형물에 전쟁의 슬픈 상처가 고스란히 베여난다.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지 공원에 재현된 끊어진 대동강 철교.
“우리 동네 철교도 전쟁 때 저렇게 끊어졌다.” 의령이 고향인 어머니는 의령의 관문인 의령 철교가 전쟁 때 폭격으로 끊어지고 동네 뒷산으로 피난 갔던 당시를 떠올린다. 전시실을 옮기는 사이사이 털머위가 함께 따라온다.
사상 때문에 일으킨 전쟁은 수용소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반공과 친공 포로의 격렬한 충돌은 반공 포로 105명이 숨지고 소용소장인 미국 도드 준장이 구출되면서 막을 내리지만 결국 반공포로와 공산 포로는 다로 수용되었다. 당시를 재현한 시설과 포로 생활상을 둘러보고 나오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늦었고 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라 근처 유명한 멍게비빔밥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집으로 돌아왔다.
거제는 세월이 바람과 머물다 간다. 거제, 그 넓고 깊은 품에 안기 하루다. 구조라해수욕장 전망대에서.
오전 7시에 집을 나와 오후 4시까지 온종일 거제를 둘러보았지만 하루 만에 다 보기에는 애초에 무리다. 그러나 다음 기회에는 요모조모 살뜰히 살피며 즐겨보자 다짐했다. 거제 바다는 종일 바라만 봐도 좋다. 거제는 세월이 바람과 머물다 간다. 거제, 그 넓고 깊은 품에 안기 하루다.
▣ 이밖에도 거제 가면 꼭 가봐야 할 곳
외도 – 천연 동백숲과 수 많은 종의 아열대 식물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섬이다.
조선해양문화관 – 남해안 어촌의 변천사와 조선산업의 역사성을 주제로한 어촌민속전시관과 조선해양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칠천량해전공원 – 조선 수군이 유일하게 패했던 쓰라린 해전의 역사 속에 아픔을 가슴 속에 새길 수 있다.
해금강 – 바다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명승지
우제봉 – 해금강유람선 터미널에서 배편 1시간 여유 있다면 높지 않은 산길을 따라 깊고 넓은 거제 바다와 해금강, 대병도 등을 바라볼 수 있다.
지심도 – 동백섬이라는 별칭처러 동백꽃이 피는 12월부터 4월까지 섬은 온통 붉은 카펫을 거니는 기분이다.
대우조선 / 삼성조선소 견학 – 인터넷에 3~4일전에 예약 접수하면 조선산업의 심장 뛰는 소리를 느낄 수 있다.
▣ 거제 가면 꼭 먹어봐야 할 맛
어디 하나 버릴 것 없는 어장으로 둘러싸인 거제 바다는 수산물이 풍성하다. 이중에서도 멍게·성게비빔밥, 굴구이, 대구탕, 생선회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