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봉 둘레길 안내도
2010년 경남 진주시 금산면이 주민들과 힘을 모아 조성해 만든 길이 국사봉 둘레길이다. 금호저수지보다는 금산 못이라는 말이 더 입에 붙은 금호저수지 주차장에 19일 차를 세웠다. 주차장 입구에는 팔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펼쳐놓은 좌판 사이로 부추라고 불리는 정구지를 열심히 다듬는 할머니가 연신 옆에 같이 좌판을 벌인 할머니들과 이야기꽃을 피운다. 좌판 사이로 직각으로 팔을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아줌마가 휙 지나간다. 아줌마를 따라가려다 멈췄다. 금산 못에는 아직 떨구지 못한 연꽃이 피어 있다. 연꽃에 눈길 한번 주고 연못가를 따라 걸었다. 계양제와 둘레길을 나타내는 이정표 근처에 돈 넣는 통과 함께 무인 판매대가 나타난다. 한 봉다리(봉지)에 천원이라는 무인 판매대에는 강낭콩과 상추잎 등이 천원에 맞게 한 봉다리씩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있었다.
며느리 밑씻개라고 잘못 알려진 ‘사광아재비’
무인판매대를 지나 오른편 둘레길로 걸었다. 등골나물이며 깨풀, 이질풀, 고마리, 애기똥풀, 닭의장풀, 개여귀 등이 내 걸음을 붙잡는다. 며느리 밑씻개라고 잘못 알려진 ‘사광아재비’가 작은 무리를 이루어 앙증스러운 분홍빛을 물결을 드리우고 있다. 계명대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가 쓴 《한국 식물 생태 보감》에 따르면 오늘날 ‘며느리밑씻개’로 알려진 풀 이름은 일본말 ‘의붓자식의 밑씻개(ママコノシリヌグイ)’에서 ‘의붓자식’만 ‘며느리’로 바꾸어서 1937년부터 책에 실렸다고 한다. 1921년에 나온 책에는 며느리밑씻개와 비슷한 다른 풀에 ‘사광이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1937년에 갑작스레 엉뚱한 이름이 실렸다고 한다.
사광아재비 무리를 벗어나자 금산 못과도 이별이다. 월아묘포장을 지나자 ‘월아마을, 안용심’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딱딱한 시멘트 포장길을 벗어나자 차바퀴 자국 사이로 질경이들이 한가득 길을 따라 초록 비단길을 만들었다. 사람과 차의 바퀴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에 나도 몰래 고개 숙였다. 질경이 초록비단길을 지나자 이제는 산이다.
딱딱한 시멘트 포장길을 벗어나자 차바퀴 자국 사이로 질경이들이 한가득 길을 따라 초록 비단길을 만들었다. 사람과 차의 바퀴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에 나도 몰래 고개 숙였다.
부드러운 흙길을 걸으며 ‘내림길, 오름길’이라는 안내판을 벗 삼아 걸었다. 운동 부족으로 가쁜 숨 쉬며 10 여분 올라가자 갈림길이다. 못 먹어도 고(GO)가 아니라 오늘은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국사봉으로 올라가는 흙길은 패었지만 둘레길은 풀과 잡목이 우거졌다. 우거진 풀과 잡목 사이로 이정표를 놓치기 쉽고 한낮이 덥다고 짧은 셔츠를 입고 걸으면 팔에 생채기를 입기에 십상이다. 피부에 오돌토돌한 돌기가 귀여운 두꺼비가 내 발걸음에 놀랐는지 황급히 떨어진 나뭇잎 사이로 숨는다. 붉은 점이 돌기 속에 박혀 있는 두꺼비는 내가 발걸음을 두어 걸음 더 옮기자 제 갈 길을 다시 갔다.
국사봉으로 올라가는 흙길은 패었지만 둘레길은 풀과 잡목이 우거졌다. 우거진 풀과 잡목 사이로 이정표를 놓치기 쉽고 한낮이 덥다고 짧은 셔츠를 입고 걸으면 팔에 생채기를 입기에 십상이다.
산 속인가 싶었더니 나를 경계하며 개들의 앙칼진 소리가 들린다. 용심마을이다. 흰 머리 하나 없는 할머니 한 분이 “순둥아, 순둥아~”하며 개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자 동네가 갑자기 조용하다. 손자에게 할머니가 떡을 먹여주는 것처럼 정겹다. “저 길을 따라 쭈욱 가다 고개 넘으면 둘레길이요” 할머니의 길 안내에 따라 마을 시멘트 포장길을 지나 산으로 갔다. 고개 넘어갈 무렵에 긴 의자가 나온다. 땀을 훔치고 가져간 간식을 먹었다. 지나온 용심마을과 함골, 월아 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옛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장날이면 장터에 가고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간 길이다. 옛길을 따라 걷자 작은 메밀꽃밭이다. 시원한 메밀국수 생각에 입맛을 다실 즈음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읽었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흔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렇게 환한 낮인데도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데 달빛 받은 메밀밭은 오죽할까 싶다. 트럭을 세워 놓고 돗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대숲으로 성큼 성큼 들어갔다.
대숲을 지나가면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연구소에서 국가 산림을 시험 연구 목적으로 만든 시험림이 나온다.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연구소에서 국가 산림을 시험 연구 목적으로 만든 시험림이 나온다. 임도를 따라 작은 동산을 위에 올라가자 산사나무를 비롯해 모과나무, 주엽나무, 오갈피나무, 산수유 등을 심은 특수임산유전자원보존원 약용수 단지가 나온다. 약용수단지는 남부지역 소득 임산물 현장 연구기지와 특수임산물 유전자원 연구 등을 위해 11.3ha에 12수종 60산지를 심었다. ‘건강한 숲 풍요로운 산림’은 후손에게 물려 줄 아름답고 귀중한 유산’이라는 푯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숲에서 길을 찾는 내 인기척에 놀랐는지 청설모가 후다다다닥 나무 위로 올라갔다.
월아산 정상인 국사봉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이곳에서 임도를 벗어나 용심마을로 내려갔다. 길이 없다. 아니 길을 잃었다. 숲에서 길을 찾는 내 인기척에 놀랐는지 청설모가 후다다다닥 나무 위로 올라갔다. 길을 잃어도 지나가는 차 소리가 들리고 저만치 사람들 소리도 들린다. 겁이 나지 않았다. 반듯하고 이정표가 안내하는 길을 벗어나자 오히려 숲에 더 집중했다. 마음이 평안해졌다. 용심마을 지나자 다시 금산 못이다. 금산 못 제방에 심어 놓은 울창한 송림 사이에 앉았다. 출발해서 여기까지 3시간여.
경남 진주시 금산 못.
금산 못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신라 때 형성된 자연 못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 눈에 못 전체를 다 보지 못할 만큼 크다. 평균 수심 5.5m로 수심도 깊어 어종이 풍부해 낚시터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금산못이 워낙 깊어 명주실구리 3개가 들어갔다는 전설도 있을 정도다. 전제면적 20만 4937㎡의 금산못은 둘레만 5km로 굴곡이 많아 한눈에 못의 전부를 볼 수 없다.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금산 못을 둘러봤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안 둘러봤다”고 하면 게으른 놈이라고 벌을 내린다고 한다. 금산 못에는 또한 용과 관련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하늘에서 착한 청룡과 나쁜 황룡이 한데 엉켜 치열한 싸움을 벌리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그 싸움을 본 한 장사가 용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싸움하지 마라!”는 고함소리에 깜짝 놀란 청룡이 장사를 내려다보는 순간, 홍룡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청룡의 목에 비수를 찔렀다. 칼에 찔린 청룡이 땅에 떨어지면서 꼬리를 치니, 용의 꼬리를 맞은 자리는 크게 쓸려나가 그 자리에 큰 못이 생겼다고 전한다.
또한, 이 연못에 월아산의 두 봉우리인 국사봉과 장군대봉이 비친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림 같은 풍광을 바라보며 가져간 과자와 커피를 가방에서 꺼내 마시는데 톡하고 하늘에서 떨어졌다. 저기도 톡, 여기도 톡. 근처 큰 떡갈나무들이 도토리를 떨구고 있었다. 발아래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웠다. 겨울 양식으로 삼은 청설모와 다람쥐를 생각해 근처 송림 사이로 다시 던졌다.
경남 진주시 월아산 국사봉 둘레길 이정표를 놓쳐 길을 잃기 쉽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국사봉 둘레길은 마을 길이고 산길이다. 산길이면서도 고즈넉한 금산 못이 함께하는 길이다. 둘레길은 투박하다. 그래서 이정표를 놓쳐 길을 잃기 쉽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나짐 히크메트 <진정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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