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20년 12월 12일 자에 실린 <‘창녀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의 질투가 만든 오명> 기사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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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73912.html#csidxe31b4226881422a9add3b4315ccb3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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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 중 성모 마리아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성인이다. 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라고 명시된 구절은 3번 등장한다. 예수 덕분에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막달라 마리아, 부활한 예수를 처음으로 본 막달라 마리아 등 세 구절이다. 이 세 장면으로 막달라 마리아의 삶을 재구성해본다면 자신의 정신질환을 고쳐준 예수를 열렬히 따른 제자였으며, 수제자 베드로도 예수를 외면하고 도망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십자가 아래에 있었던 용기 있는 여성이었으며, 부활한 예수가 자신의 모습을 제일 먼저 보여주고 다른 사도들에게 부활 사실을 전하라고 할 정도로 가장 믿었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성경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는데도 이후 막달라 마리아는 성경 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신학자 하희정의 책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들>에 따르면 1945년 12월 이집트 나그함마디 사막에서 문서 뭉치가 하나 발견된다. 바로 ‘성서 밖의 성서들’이라 불리는 13권의 <나그함마디 문서>였다. 내용을 보면 정통파 교회 입장에서는 불온하기 짝이 없다. 막달라 마리아가 왜 예수 부활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는지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예수가 가장 총애한 제자가 막달라 마리아였음을 말해준다.
<나그함마디 문서> 중 빌립복음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구세주의 동료는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녀를 나머지 제자들보다 더 사랑하셨으며, 그녀에게 자주 입맞추곤 했다(친밀함을 표현하는 그 지역 특유의 인사법). 나머지 제자들은 이에 마음이 상하였다. (…) 그들은 예수께 여쭈었다. 왜 우리들보다 저 여인을 더 사랑하십니까? 구세주께서는 그들에게 왜 내가 저 여인을 사랑하는 만큼 너희를 사랑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는 남성 제자 공동체 안에서 ‘왕따’ 신세였다. 특히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를 드러내놓고 적대했다. <나그함마디 문서> 중 토마스의 복음서 114장은 이렇게 전한다. “시몬 베드로가 여자는 구원에 맞지 않으니 마리아를 내보내자고 하자, 예수가 답하길 나는 그녀를 인도해 온전한 사람(안드로포스 Anthropos)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녀는 너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숨결이 될 것이로되 온전한 사람이 된 여자는 주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렇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으니, 예수의 죽음 이후 막달라 마리아가 철저히 배제된 건 당연한 수순 아니었을까.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 되어 교회 제도를 이루고, 부활에 의심을 품었던 사도들마저도 교회 주류 전통 속에서 왕좌에 올랐을 때, 예수의 가장 신실한 사도였던 막달라 마리아는 열두 제자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때부터 막달라 마리아는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후려쳐도 되는 대상이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 부활의 첫 증인이었고 다른 남성 제자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알린 메신저였다는 것도 못마땅한 사실이었다. ‘왜 예수는 자신이 부활한 모습을 여인에게 처음으로 보여야만 했는가’ 하는 문제는 항상 신학자들을 괴롭히는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가장 기발한 설명은 아마 중세시대에 진지하게 제기된 다음과 같은 주장 아니었을까. “소식을 퍼뜨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여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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