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박자 느리게 걷기 좋은 의령 봉수면
이름난 경관은 없습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 한적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대접받고 쉴 수 있는 곳이 의령 봉수면 소재지입니다.
의령의 북쪽에 자리한 봉수면은 국사봉을 경계로 합천군과 남으로 만지산, 장등산을 경계로 궁류면과 유곡면, 동으로 부림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한 박자 느리게 깊고 느린 풍경을 여유롭게 구경하기 좋습니다.
면 소재지인 죽전마을에 들어서는 길가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줄지어 환영하는 듯 서 있습니다.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를 비롯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룹니다.
나무줄기 껍질은 온통 초록색 이끼로 물들었습니다. 나무의 정령이라도 나와 과거 이야기를 전해줄 듯합니다. 나무는 또한 버섯을 품고 있습니다.
맞은편으로는 벽화들이 오가는 이들을 별천지로 이끄는 형상입니다. 담벼락에 그려진 나무와 숲의 그림들이 산수화 속 신선으로 이끕니다.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숨을 고릅니다. 일상을 벗어난 풍성함이 좋습니다. 오가는 바람이 시원하고 맑습니다.
아름드리나무를 지나 마을로 향합니다. 의령문화원에서 펴낸 <의령의 지명>에 따르면 죽전(竹田)마을의 전래 지명은 ‘돌애비, 석합’ 등입니다. 마을이 봉산 아래에 있으면 봉(鳳)을 대밭에 살아야 하는 것이라 하여 ‘죽전’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체통 앞 꽃무릇들이 우체통과 단 체티를 입은 듯 붉습니다. 어떤 이야기 하나 적어 보내고 싶어집니다.
허물어질듯한 지붕 위로 닭의장풀 꽃이 진한 남색으로 반깁니다. 녀석의 꽃말처럼 ‘순간의 즐거움’이 밀려옵니다.
신반천으로 향했습니다. 둑길을 거닙니다. 눈을 감고 땅의 기운을 느껴봅니다. 온몸으로 녹색의 물줄기가 쏟아집니다. 샤워를 한 듯 정신이 맑아집니다.
구석구석 짭짤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백합니다. 하천의 담담한 풍경이 아늑합니다.
신을 벗고 지압보도를 걷습니다. 발바닥으로 밀려오는 압력이 통증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아프지 않은 아픔이 주는 압력이 좋습니다. 덕분에 발은 모처럼 주인공처럼 대접받은 기분입니다.
꽃무릇의 붉디붉은 빛이 곱습니다. 망울마다 톡톡 가을이 피었습니다. 살랑살랑 가을 바람맞으며 가을 꽃길을 걷습니다.
한 박자 느리게 여유롭게 걸었습니다. 샤워한 듯 온몸이 개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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