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창원 가볼만한 곳 - 창원 웅천읍성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4. 7. 18.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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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 일본 방어 최일선 기지, 창원 웅천읍성

 

 

일본 국보 '이도다완'이 탄생한 곳이 창원 진해구 웅천(熊川)입니다. 일본과 외교, 군사상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웅천 사기장들은 조선 백성이 사용하던 막사발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동아시아 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가 이도다완을 만들었습니다. 일본 해적(왜구)의 약탈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들을 막기 위한 일본 방어 최일선 기지가 창원 웅천읍성입니다.

 

 

웅천읍성 동문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화장실을 비롯한 주변 정비 공사(~2024.9.17)가 한창입니다.

 

 

당시의 첨단기술로 견고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든 성곽이 아늑한 풍광을 자아냅니다.

 

 

읍성을 중심으로 웅천역사 둘레길이 잘 꾸며져 시간여행을 떠나기 좋습니다. 고을 중심부에 있는 관아와 민가를 둘러쌓은 읍성은 지역민의 행정과 군사 중심지입니다.

 

 

태종이 1407년에 일본인들의 연안 지역에 머물며 통상을 허락한 삼포(부산포, 울산의 염포) 중 하나입니다. 일본인들의 불법 거주가 늘어나자, 고을을 보호하기 위해 웅천읍성은 세종 16(1434)에 웅천읍성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짓는 중에 읍성은 정사각형에서 현재처럼 직사각형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전체 둘레 936m의 읍성은 현재는 성의 동벽 500m 정도만 남아있는데 북쪽 성벽은 진해-부산 간 국도를 건설하면서 철거됐고, 서쪽과 남쪽 성벽은 민가와 도로 등이 들어서면서 훼손된 채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국제전쟁 때는 일본군의 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은 웅천읍성의 돌을 빼가 웅천왜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흔적을 여기서는 느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아늑한 풍광이 언제 그런 적 있는지 묻는 듯합니다.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자면 먼저 작은 개울을 지나야 합니다. 성벽 밖에 도랑을 둘러 파고 물을 채워 적의 침입을 막는 해자(垓字)입니다. 성벽 밖으로 7~12m 떨어져 있습니다.

 

먼저 동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해자를 건너기 위한 여닫이식의 다리인 <해자 조교>가 우리를 이끕니다.

 

동문루 앞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다시 한 겹의 성벽을 둘러쌓아 이중으로 쌓은 성벽 옹성이 있습니다. 옹성은 전체 지름 18m, 내벽 지름 약 13m입니다.

 

 

별도의 계단을 따라 동문루인 견룡루에 오르자 오가는 바람이 평화롭습니다.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성으로 공격하는 적을 공격하거나 감시하기 위한 치성이 보입니다.

 

 

오른편 끝에는 길이 8.4m, 너비 5.5m 규모의 동북 치성, 왼편 끝에는 너비 6.4m, 길이 10.1m이며 현재 남아있는 최고 높이는 2.25m의 동남 치성이 있습니다.

 

국제전쟁 이후에는 조선군의 대일본방어 최일선 기지로 구실을 하기도 했던 읍성은 명성황후 살해 사건(명성황후시해사건)이 일어난 고종 32(1895) 읍성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견룡루를 내려와 옛 읍성 내 마을을 걷습니다. 100년이 넘은 웅천우체국이 먼저 우리를 반깁니다. 읍성 내 마을을 사라졌지만 성내 미용실이라는 간판처럼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간판이 당시를 잊지 말라고 넌지시 일러주는 듯합니다.

 

읍성 저잣거리를 걷습니다. 벽화들이 걸음을 더욱 가볍게 합니다. 어쩌면 좋니 / 초여름 어느 날 / 웅천저잣거리 예잔함으로 / 걸었더니 / 세월 속으로 걷는 느낌 / 너무 좋은 걸// 어쩌면 좋니 / 웅천 저잣거리 끝없는 이야기 주인공은 / 나인 것을.//(정희 / 김정희 작)”

 

 

덩달아 세월 속을 걷는 기분입니다. 옛 관아터였던 초등학교 근처 아름드리나무는 넉넉한 그늘 곁을 내어주며 지나온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줍니다.

 

 

읍성 내 마을을 걷으며 만나는 풍경은 아늑하고 평화롭습니다. 읍성 내를 헤매다 보면 시간 여행자가 된 것 같습니다.

 

 

마을을 돌고 돌아 다시금 읍성으로 향했습니다. 탑돌이 하듯 걷습니다.

 

읍성을 쌓은 사람들의 이름과 출신 고을의 이름을 함께 새긴 명문석도 보입니다. <진주 정상부리>라고 적혀 있습니다. 정상부리를 책임자로 둔 진주 사람들이 와서 성을 쌓은 모양입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돌에 손을 얹고 지그시 눈을 감습니다. 뭇 백성의 숨결이 전해오는 기분입니다. 푸르른 하늘과 산새 소리··· 청량감이 가득 채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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