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이후의 내 일상을 미리보다
쉬는 날, 출근하듯 집을 나섰다. 목적지에 가기 전에 근처 편의점에 먼저 들렀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라는 ‘얼죽아’는 아니지만 아이스아메리카노 하나를 받쳐 들고 나왔다.
오전 7시 40분쯤 진주시립 연암도서관에 도착했다. 벚나무 터널이 싱그럽다. 봄이면 멀리 진해군항제 벚꽃 구경하러 갈 필요 없을 정도로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분홍분홍 꽃들을 피우는 벚나무 터널이다. 그만큼 연암도서관이 흐트러짐 없이 이곳에서 우리를 반겼다는 즐거운 증거다.
지하 1층 노트북 실에 마치 히말라야산맥을 올라가는 산악인처럼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노트북을 중심으로 가방에서 따라 나오는 게 한둘이 아니다. 마우스, 마우스패드 등이 고구마 줄기처럼 나와서 자리를 잡으니 여느 사무실이 부럽지는 않다.
진용을 갖춘 뒤 작은 다이어리 수첩에 오늘 할 일, 목표를 적었다.
글쓰기 3편, 책 읽기 1권. 기획안 제출.
먼저 단체 카카오톡에 7월 기획안을 제출했다. 가끔 카톡으로 피드백도 받고.
오전 8시 50분쯤 글 한 편을 마무리하고 송고했다. 글 제목은 "통영야경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동피랑을 느리게 걸어보시라"
잡문이라 힘들지는 않다. 도서관 주위를 거닐었다. 싱그러운 풍광이 넉넉하게 토닥여준다.
다시금 베이스캠프인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오전 10시 20분 두 번째 글 "통영야경을 품다-통영 충무교"를 마무리하고 메일 전송했다.
밖으로 나와 도서관 주위 나무 아래를 거닐었다. 초록 물빛이 뚝뚝 떨어질 듯하다.
10여 분의 산책을 마치고 들어가서 집에서 가져온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중에서 경향신문을 먼저 읽었다. 정독하듯 맨 마지막 면의 사설부터 역순으로 1면까지 기분 좋게 읽었다.
이번 글은 앞선 글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오후 12시10분쯤 마감하고 송고한 글 제목은 "조선군 일본 방어 최일선 기지, 창원 웅천읍성"이다. 역사 현장이라 좀 더 긴장한 듯하다.
이어폰을 끼고 말뚝에 묵인 개처럼 도서관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귓가에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 들렸다. 힘이 전해지는 기분이다.
교향곡이 끝나자 들어와서 <소현세자는 말이 없다>를 읽었다. 며칠 전 퇴근길 진주문고에 들러 산 책이다. 200쪽 분량의 말랑말랑한 분량이면서도 어렵지 않게 쓰인 까닭에 나른한 오후를 잘 이겨내며 오후 2시50분쯤 책 읽기를 끝냈다.
도서관 바깥으로 나가는 데 냥이 한 마리가 오가는 이에게는 무심한 척 차 앞에 드러누워 햇살에 샤워 중이다.
녀석을 지나 벤치에 앉아 유튜브를 시청했다.
자리로 들어가 집에서 구독 중인 신문 중 남은 조선일보도 마저 읽었다. 신문 읽기가 끝나자, 노트북으로 인터넷 세상을 들락거렸다.
오후 5시 30분, 퇴근하듯 도서관을 나섰다. 정년 이후의 내 일상을 미리 본 하루다. 글로 생활하는 글로자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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