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성심어울림축제 마지막날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5. 6. 7. 23:34
728x90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유의배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다짐이 6월 7일, 작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고향 스페인의 부모님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지만, 한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낮은 자로 멸시받았던 한센인 곁에서 함께하겠다는 산청성심원 한센인과 약속을 지켰던 유 신부님의 팔순 잔치가 <성심 어울림 축제> 중에서 한센인들과 함께 펼쳐졌습니다.

팔순 잔치에 앞서 성심 어울림 축제는 마을공동체 비전 세미나로 6일,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축제 이튿날이자 마지막 날인 7일 대성당에서 산청성심원 설립 66주년 축하 미사가 천주교 마산교구장 이성효 리노 주교님의 주례로 있었습니다.

마을 맨 위쪽,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대성당으로 보행기에 의지해 올라가는 어르신이 보였습니다. 하느님께 의지한 삶은 이제 일상입니다.

어르신을 따라 성당에 들어서자 유의배 신부님의 초상화가 우리를 먼저 반겨주십니다.

성당 안에는 주교님이 미사에 앞서 성가대와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성가대의 노래가 하늘에 닿을 수 있도록 “단디” 하라고 격려하십니다.

미사를 기다리며 자리한 산청성심원 어르신들과 장애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정각 10시. 주교님이 성당에 입장하셨습니다. 성당이 더욱 거룩해집니다.

교구장께서는 강론에서 45년 동안 성심원에서 함께한 유 신부님의 삶을 잠시 우리에게 들려주시자, 뒤편에 앉은 유 신부님은 부끄러우신지 내내 고개를 아래로 하고 계십니다.

주교님은 “우리의 부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라며 “우리를 위한, 나의 부활도 잘 준비하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성당 유리창 너머로 납골묘원이 보입니다. 육신의 탈을 벗어버리고 하느님 곁에 가신 이들이 오늘 우리와 함께하는 기분입니다.

영성체가 끝나고 인애원에 거주하는 노봉순 어르신이 주교님께 꽃다발을 전했습니다. 꽃 향이 성당에 덩달아 퍼지는 기분입니다. 아울러 성심원 어르신들께 치과 봉사를 하시는 이한우 의사 선생님이 주교님을 그린 초상화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영성체를 받은 뒤 프란치스코회 관구장과 이승화 산청군수의 축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축하 인사말들이 끝나자 모두가 잠시 뒤편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초상화가 걸려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두 손을 머리에 얹고 사랑의 하트를 만들었습니다.

성당에 사랑이 넘실거립니다. 사랑이 넘실거리는 성당에서 주교님은 색소폰을 집어 음악을 들려주십니다. ‘사랑의 찬가’가 울립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사랑으로 물듭니다. 퇴장하시면 함께한 이들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미사를 마치고 언덕을 내려와 경호강 변이 내려다보이는 카페 나루터로 모두 걸음을 옮겼습니다. 카페 나루터 개장 축하 커팅식이 열렸습니다.

카페가 마을의 구심점이자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엄삼용 알로이시오 원장 수사는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차 한잔하러 들른 이곳에서 한센인과 장애인에 관한 편견을 줄이는 열린 공간이 되도록 많이 찾아 주길 부탁”했습니다.

이어서 어제 제1회 풍현마을 파크골프 대회가 열리기도 했던 성심 파크골프장 축하 시타도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강당에서 팔순 잔치의 막이 올랐습니다. 팔순 잔치가 부끄럽다 참석하기를 주저하시는 유 신부님의 뒤에서 직원이 은근슬쩍 밀어서 입장을 시키십니다. 쑥스러워하시며 엉거주춤 들어오시면서도 휠체어를 타신 어르신이 맞아주자 어르신 손을 마주치며 반가워하십니다.

보통 수도자들이 2~3년을 주기로 부임지를 옮기지만 유 신부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산청성심원에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한센인들이 있었기에 자신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모님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고 산청성심원 한센인들 곁에서 45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습니다.

다시금 주교님께서 색소폰을 연주하시며 팔순을 맞으신 유 신부님과 성심원 어르신들을 축하합니다. 주교님께서 연주자 기회로 유 신부님의 애창곡 <타향살이>을 연주하시자 신부님은 화장실로 가셨습니다.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화장실에 여러 사람이 신부님을 찾으러 갔습니다. 이윽고 색소폰 연주하는 주교님 앞에 선 유 신부님은 검은 갓을 쓴 채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셨습니다.

주교님의 색소폰 연주에 신부님은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아려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타향살이>를 부르십니다. 강당이 애절한 듯 흥겨운 트로트로 가득합니다.

주교님께서 바쁜 일정으로 먼저 자리를 뜨셨지만, 잔치의 여흥은 여전히 강당을 울렸습니다. 유영진 루카 신부님의 축가뿐 아니라 성가대의 축하 노래와 알프스 요들송이며 디스코 트로트 메들리가 연이어 울렸습니다. 서로 엉덩이를 실룩이며 춤을 춥니다. 이곳은 한센인도 장애인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강당의 열기 덕분에 여름 한낮의 뜨거움도 잊었습니다. 해가 지리산 웅석봉 자락에 걸릴 무렵 매점 앞 풍현마당에는 초여름 밤의 음악회에 앞서 식전 행사가 열렸습니다.

마을에 사시는 김용덕 어르신이 "소외된 이들 바라보고 손 내밀어주는 모든 분께 감사”하다며 노래를 들려주십니다. 덕분에 성심원 뜨락이 다시금 축제의 열기로 달아오릅니다. 식전 행사가 열리는 동안 강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어루만집니다. 달곰합니다. 시원합니다. 바람이 지나고 기념식이 간단하게 열렸습니다.

성심원은 과거 배척과 애한이 머문 장소였지만 엄 원장은 “사회적 약자만 아니라 여러분의 터전으로 거듭나고자 한다”라며 관심을 부탁했습니다. 마을 주민을 대표해 배창택 이장은 즐기고 어울리는 자리에 오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간단한 기념식이 끝나자, 강봉준의 서예 퍼포먼스가 펼쳐집니다. 그가 넓디넓은 하얀 종이에 까만 먹을 붓으로 잇자, 글귀가 만들어졌습니다.
<마을공동체 사람살이 도란도란 행복 가득 웃음꽃 피는 마을을 꿈꾸다>
우리의 꿈이 여기서 꿈틀꿈틀합니다. 마을공동체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올랐습니다.

초여름 밤의 음악 축제가 열리자 시 낭송을 배운 어르신들이 시를 읊습니다. 박후경 어르신이 ‘성심원 시립대(시로 일어서는 대학)’이란 자작시를 들려줍니다. “~이제 내 안의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하자~” 힘겨웠던 지난 삶이 시에 묻어 객석에 자리한 이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십니다.

 

어르신들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르친 김태근 시인도 모두가 사랑하며 살아가자는 마음으로 시 낭송을 하였습니다.

시 낭송이 끝나고 바람이 불어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유리상자>의 노랫말이 어둠 속에서 퍼져나옵니다. 노래가 일상 속 딱딱하게 굳은 긴장을 풀게 합니다. 사랑하기 좋은 날이란 <유리상자>의 말은 메아리가 되어 객석을 울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마을 성심원을 울립니다.

음악 공연이 끝나갈 무렵 사람들은 흥을 참을 수 없어 손가락을 하늘로 찌르고 돌립니다. 때아니게 풍현마당은 춤추는 콘서트장으로 변했습니다.

유월의 초여름 밤, 산청성심원은 살랑살랑 부는 바람 따라 아름다운 선율에 흠뻑 젖습니다. 초여름 밤, 음악과 함께 낭만이 깊어져 갑니다.

벌써 내년 산청성심원 축제가 기다려집니다.

#산청성심원 #성심어울림축제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