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성심원-우리도 아이유, 박보검처럼 “폭삭 속았수다”

우리도 아이유, 박보검처럼 “폭삭 속았수다”
– 산청 성심원 봄 소풍
설렘으로 여기서 '톡', 저기서 '톡'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앞다퉈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입니다. 고양이 걸음처럼 슬며시 다가온 봄을 맞이하기 위해 부활절이 끝나고 4월 23일, 산청 성심원 어르신들은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촬영장인 전북 고창 청보리밭과 전남 영광으로 봄나들이를 떠났습니다.

오전 8시. 관광버스 한 대가 가정사 3동 앞 예수상 앞에 섰습니다. 출발 시각을 1시간여 앞두고 일찍 나와 계셨던 어르신들이 하나둘 차에 오릅니다.

엄삼용 원장께서 올라와 배웅합니다.

유의배 신부님의 기도와 함께 설렘 안고 떠납니다. 이번 성심원 봄 소풍은 전북 고창 청보리밭을 거쳐서 영광 법성포에서 굴비 정식으로 점심을 먹은 뒤 영광성당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었습니다.

차는 강천산 휴게소에 이르러 멈췄습니다. 휴식 시간 30분이지만 <대박>이라는 조형물도 보지 않으시고 다들 화장실만 휭하니 다녀오셨습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고 무장읍성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 사이로 몇 번을 지나자, 목적지인 고창 학원농장, 청보리밭에 이르렀습니다.

오는 동안 차 안에서도 본 유채꽃이지만 이곳에 내려서 맞이하는 유채꽃과 청보리밭은 바다 인양 반갑게 우리를 맞이합니다.

보리밭 사이를 걷습니다. 보리피리를 붑니다. 문득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가 떠오릅니다.

“보리피리 불며 / 봄 언덕 / 고향 그리워 / 피-ㄹ 닐리리 //~” 한하운 시인이 걸었던, 고향을 등지고 소록도로 가면서 한센인으로 상처 입은 어릴 적을 떠올렸겠지만, 이제는 차별과 편견의 벽을 허물고 세상 속으로 나와 즐겁게 다닙니다.

일행 중 비교적 건강한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보리밭 사이를 물고기처럼 다닙니다.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남는 그것은 사진 뿐이라고 합니다. 걸음도 제대로 못 걸을 때 이날을 떠올리기 위해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고 하십니다.

놀멍 쉬멍 걸으며 넷플릭스 드라마 속 주인공 아이유(오애순 역)처럼, 박보검(양관식 역)처럼 유채꽃밭에서 달달하게 포즈를 취하기도 합니다.

공유(김신 역)와 김고은(지은탁 역)이 주인공을 맡았던 드라마 <도깨비> 촬영 장소 앞에 선 긴 줄도 지나고 유채꽃밭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어르신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얼굴이 덩달아 황금빛으로 물듭니다.

마음과 달리 걸음이 따라주지 않는 어르신들은 벤치에 앉아 보리밭과 유채꽃들과 어울려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합니다. 일부 남자 어르신들은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여유도 누리십니다.

기분 좋은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고 지납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영광 법성포로 향했습니다.

“여기가 어디야, 온통 굴비만 보이네.”
굴비로 유명한 동네에 이르렀습니다.

넓적한 방에 들어갑니다. 차려진 상에 여러 가지 맛난 음식들이 올려져 찾은 우리를 반깁니다.

얼음 둥둥 띄운 녹차물에 ‘킁큼한’ 보리 굴비를 올려 먹습니다. 우메보시나 명란을 올려 먹는 일본의 오차즈케와 비교할 수 없는 맛입니다.

전라도 잔칫집에 빠지지 않는 홍어삼합이 나왔습니다. 1인당 1점씩 맛보라 올려진 상차림이지만 홍어삼합을 즐기는 어르신들은 따로 앉아 별도의 홍어삼합을 먹습니다. 홍어삼합을 드시지 못하는 이들은 추가된 보리굴비를 드셨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배를 채우자 다들 먹었던 굴비를 찾아 나섰습니다. 굴비가 천지삐가리인 동네에 어딜 가도 굴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굴비를 삽니다. 여기 추억을 담습니다.

마치 고향 찾아 먼 길 떠나는 길손처럼 두 손 가득 굴비 두름을 들어 버스에 오릅니다. 당분간 성심원 가정사에는 굴비 반찬이 올라올 듯합니다.

버스는 곧장 영광성당으로 향하지 못합니다.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우리네 살아온 인생길을 닮은 굽이 굽은 길을 따라갑니다. 남해와 달리 서해는 갯벌이 많아 바다가 탁합니다. 하늘도 옅은 연무와 미세먼지로 말깐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오가는 바람이 달곰하게 우리를 반겨줍니다.

걸음이 빠른 분들은 벌써 노을 종각에 이르러 종을 울렸습니다. 함께하지 못한 이에게 휴대전화 너머로 소리를 전해줍니다.

여기도, 찰칵. 저기도 찰칵.
찍사 따로 없습니다. 타칭(他稱) 공주라 불리는 직원이 무수리보다 분주하게 여기저기 어르신들의 추억을 열심히 붙잡고 있습니다. 찍는 사진마다 추억이 영급니다.

버스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영광지역 특산품인 모시송편 파는 가게 앞에서 멈췄습니다. 오늘, 이 소풍을 함께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모시송편을 선물로 샀습니다. 덩달아 버스 안에서는 송편을 맛봤습니다.

모시송편을 오물쪼물 먹노라니 영광성당입니다. 성심원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수녀회>가 여기에서도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1971년 산청 성심원에서 일하자는 작은형제회(주 꼰스탄시오 신부)의 요청으로 현재까지 성심원에서 어르신 곁을 함께하는 수녀회가 1989년 이곳 영광성당에 첫 진출했습니다.

순교자의 문을 지나자 반갑게 맞이하는 수녀님의 안내를 받아 88년 역사의, 순교자 성당인 성당에 깃든 영광성당에 영성을 가슴에 담습니다.

일정과 달리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예정된 남원 광한루원은 아쉽게도 일정에서 제외했습니다. 남원 맛집으로 곧장 향했습니다.

남원 하면 추어탕. 추어탕을 먹습니다. 점심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실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은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술이 술술 들어가듯 추어탕을 후후 불어서 먹노라니 잠시의 시름도 내려놓습니다. 함께하지 못한 이웃을 위해 따로 추어탕 포장 팩을 사기도 했습니다.

배도 채우고 다시금 버스에 올랐습니다. 왔던 길을 돌아 보금자리로 향했습니다.

봄 나들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박민영 부원장께서는 흥이 많은 어르신들을 위해 가수 박서진을 초대해 보겠노라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보금자리가 가까워집니다. 유 신부님의 마침 기도를 끝으로 성심원 봄나들이는 막을 내립니다.

버스가 출발했던 예수상 앞에 이른 시각은 오후 7시 30분. 사방에 어둠이 밀려옵니다. 버스 짐칸에서 추억을 끄집어 갑니다. 봄에 취한 하루입니다. 평생 숨 가쁘게 달려온 어르신들에게 하늘이 준 달곰한 선물입니다. 군침 도는 봄날 마중을 떠난 하루입니다.
※ 어르신들의 허락을 받아 사진을 게재합니다. 소중한 사진을 제공해 주신 어르신과 직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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